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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아무도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
새해 첫 인력시장 / "대구엔 일거리가 없어...언제까지 이 일을..."
2012년 01월 03일 (화) 00:20:02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pnnews@pn.or.kr

새해 첫 날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1월 2일 새벽 4시 30분. 대구시 서구 북비산네거리 원고개시장 입구에 모닥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일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영하 5도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불을 피워놓았고, 그 주변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익숙한 얼굴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보통 새벽 5시~7시 사이에 사람들이 가장 많다"며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고 말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연령은 40대에서 60대로 집안의 가장이 많았다.

   
▲ 새벽, 북비산네거리 인력시장의 기다림...(2012.1.2 원고개시장 입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대구엔 일거리가 없어...고물이라도 주우라면 줍고"

새벽4시부터 나와 일감을 찾고 있다는 박모씨(51)는 계속 흐르는 콧물을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중2짜리 아들래미 하나 있는데 걔 생각해서라도 와야재. 마누라도 집에서 부업을 하는디..."라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박씨는 거의 20년 동안 '노가다'에 종사하며 하루치 급여로 8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10만원을 줘도 생계를 이어나가는데 힘이 드는데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한숨만 나온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대구에는 요즘 일이 없어. 그래서 안동, 광양, 상주로 많이 간다"고 말했다. 지난 해 11월 포항에서 한탕 뛰고 왔다는 박씨는 3월까지는 여기(인력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불황을 예상했다.

박씨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일이 없는데 지금 가리게 생겼냐"며 "고물이라도 주우라면 줍고, 똥지게라도 지라면 지고, 시키면 다한다"고 푸념했다.

   
▲ 모닥불 주변에 모인 사람들...(2012.1.2 대구 북비산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날품팔이 노동자인 이들에게 한 겨울은 혹독했다. 이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공사장'으로, 아파트, 원룸, 상가 같은 건설현장이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인력시장으로 인부를 구하는 봉고차가 와 사람들을 데리고 갔지만 요즘은 다르다고 한다. 먼저 인력회사에서 전화로 몇 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작업반장'쯤 되는 사람이 인부들을 모은 뒤 인력시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식으로 바뀌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인력시장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그건 오래전 얘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 날은 누구도 '인력회사'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한 겨울인 1월은 일감이 가장 없는 시기"라며 "이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고 절실하게 얘기했다.

"이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

1시간 정도 지나자 네거리 곳곳에서 가방을 둘러맨 사람들이 나타났다. 곧 모닥불과 벤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20명가량으로 늘었다. 이들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나눠 피고, 주변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모아 모닥불에 던졌다.

체구가 작은 한 남자가 갑자기 옆으로 다가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상인동에서 지하철 가스폭발 때 내 손가락 2짝(개) 날라가부렀지, 봐봐" 장갑을 벗은 오른쪽 손에는 두 마디가 사라진 검지와 중지 두 개가 반질반질하게 닳아있었다.

유성룡(53)씨는 당시 사고를 떠올리며 "산업재해를 인정받지도 못하는 시대였다"며 "그 때부터 계속 인력시장에 나와 일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엔 4만원 받았는데 지금은 10만원 받아. 실력이 있으니까"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어 유씨는 '노가다'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얘기하며 "상관없어. 난 술 담배도 안하고 로또도 안사. 이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워"라고 말했다.

"어이 기자양반, 나는 어디로 가 신고 해?"

새벽 6시가 되자 네거리는 출근을 하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소란스러워졌다. 모닥불에는 공장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합세해 30명가량으로 늘었다. 그 때 불길을 키우기 위해 누군가 어디서 떨어진 문짝을 구해와 모닥불로 던졌다. 메케한 연기가 나자 사람들은 기침을 하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 불길이 커지자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2012.1.2 대구 북비산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34년간 이 일을 하고 있다는 박모씨(63)씨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이 기자양반, 작업반장놈이 1년 전에 일한 돈을 아직도 안주는데. 그럼 나는 어디로 가서 신고 해?"하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벤치에 앉아 자기 무릎을 주무르던 박씨는 "6개월 전부터 전화도 안받아. 그 돈이라도 있어야 설이라도 보내는데"하고 애처로운 눈길로 모닥불을 보며 말했다.

떡국 아저씨와 커피 아줌마

새벽 5시 무렵. 인력시장 옆에 흰색 승합차 한 대가 선다. 곧 사람들은 반가워하며 그 차로 다가갔다. 차 안에서 키 큰 남자가 내렸다. 사람들은 그를 "떡국 아저씨"라고 불렀다. 이름을 밝히지 않길 원하는 그 중년 남자는 사비로 컵라면과 포장떡국을 가져와 이 곳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그는 "국가가 하지 않는 일을 대신할 뿐"이라며 종교나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 '커피 아줌마'...
'떡국 아저씨'가 가고 30분쯤 지나자 작은 빨간색 트럭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커피아줌마"가 나타난 것이다. 율무차, 커피, 생강차, 쌍화차를 단 돈 500원에 파는 아줌마는 20년 넘게 이 장사를 했다고 한다. "인력시장에 오늘은 누가 나왔는지, 누가 못나왔는지도 다 알고 있다"고 했다.
인력시장이 끝나는 9시 전까지 장사를 하고 집으로 간다는 아줌마는 "이맘때쯤은 일자리가 없어 사람도 없다"며 따뜻해지면 다시 오라고 웃으며 귀띔했다.


   
▲ 날이 밝아도 떠날 줄 모르는 사람들...(2012.1.2 대구 북비산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북비산네거리에 완연한 아침이 왔다. 일찍 온 사람들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그 때 뒤늦게 도착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일용직 노동자 두 명이 다가와 "사진을 왜 찍어! 기자들이 몇 번씩 오면 뭘해! 뭐가 바뀐다고! 와서 사진만 찍고 글만 쓰면 다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네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절실함을 가지고 인력시장에 나오는 그들의 발걸음이 '기자'들에겐  한낱 '기사'로만 취급되는 것이 화가 났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켜보던 '커피 아줌마'가 아저씨를 말렸고, "일거리가 없어서 그렇다. 니한테 화난거 아니다"며 "이제 그냥 가라. 다음에 와"라고 재촉했다.

이 날 새벽 4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4시간가량을 인력시장에서 보냈다. 모닥불에 모여 있던 인원은 아침이 밝아 올수록 줄어들었다. 사람이 빠진 자리로 바람이 들어왔다. 새해 첫 인력시장이 열린 날, 그들 중 누구도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 나도, 그들도 허탈하게 돌아가야 했다.

   
▲ 아침 8시가 넘어서자 가방을 메고 인력시장을 떠나는 사람들...(2012.1.2 대구 북비산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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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211.XXX.XXX.252)
2012-01-04 11:17:22
잘 살아야 합니다.~
새벽을 여는 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이 밝아왔으면 합니다.
잘 사셔야 합니다... (가슴저미는 기사네요.)
개똥어멍
(121.XXX.XXX.229)
2012-01-03 23:45:44
짠하네요~
어이쿠~ 참 짠한 기사네요... 고생했네~ 사진만 봐도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전해지네요~
전체기사의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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