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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짊어진 무게, 악착같은 청춘의 삶...
LPG 가스 배달기사 / 10대 때부터 생업에, 노숙의 고통도..."마음먹기 달렸다"
2013년 01월 24일 (목) 13:36:05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식당 옆 작은 쪽문 길고 컴컴한 좁은 틈에서 가스통을 어깨에 들쳐 멘 사람이 나왔다. 가스통이 벽에 닿아 '지익'하고 쇳소리를 낼 때마다 통이 떨어지지 않도록 벽을 짚고 나오는 모습이 위태롭다.

겨울비가 내리던 23일 오후 5시. 대구에서 4년째 LPG(액화석유가스) 가스통을 배달하고 있는 김모(37.동구 불로동)씨는 파란색 1톤 트럭에 LPG 가스통을 가득 싣고 동구 동촌동에 있는 한 식당에 내렸다.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져도 우산 쓸 시간도 없다. 그는 13kg, 20kg짜리 가스통 39개가 가득 찬 짐칸에서 20kg 가스통 하나를 들쳐 메고 빠른 걸음으로 식당 옆 쪽문으로 들어갔다.

   
▲ 동촌동 한 식당 옆 쪽문에서 가스통을 배달 중인 김모씨(2013.1.2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들어차는 좁은 틈 사이로 그는 무거운 가스통을 지고 빠르게 이동했다. 오른 손은 어깨에 있는 가스통을 꽉 잡고 왼손은 벽면을 짚고 있어 얼굴에 흐르는 빗물을 닦을 수도 없다. 식당 가장 깊은 곳 구석에 가스통들이 나타나자 그는 새 가스통으로 교체하고 헌 가스통을 어깨에 메고 트럭으로 돌아왔다. 한 번 더 같은 일을 반복한 뒤 판매대장에 '식당'이라고 적힌 곳에 검정 볼펜으로 줄을 그었다. 이미 다른 23곳에도 줄이 그어졌다. 2곳만 남았다. 

다음 배달 장소는 지저동에 있는 분식점. 김씨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빗길을 달렸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다. 특히, 난방을 많이 하는 겨울에는 더 그렇다"고 김씨가 말했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헐렁하다"며 "다른 날은 식사하거나 말할 시간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비가 오면 남들보다 더 걱정이 된다. 위험한 쇳덩이를 옮기는데 사고라도 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 지저동 분식점에 가스통을 배달하는 김모씨(2013.1.2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0분 정도 달려 지저동에 있는 한 분식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분식점 주변에 몰린 사람들을 보고는 "좀 있다 와야겠다"며 핸들을 꺾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배달하기 부끄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가스는 겨울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한다.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일이 힘든 만큼 인정받고 존경받는 직업은 아니다. 내가 잘안다"고 씁쓸히 말했다. "가끔 이렇게 자격지심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4년째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김씨는 동구 불로동에 있는 ㅇㅇ가스에서 LPG 가스통 배달 일을 하고 있다. 함께 일하던 직원이 관둔 이후에는 사장과 김씨 단 두 사람만이 배달을 한다. 새벽이나 저녁 늦게도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을 가야할 때도 있다. 한 달 휴무 2번을 빼면 대부분 시간을 가스통과 함께 트럭에서 보내는 셈이다. 때문에, 사고에 대비해 언제나 트럭에 소화기를 갖고 다닌다.  

   
▲ 김씨 트럭에 가득 담긴 LPG 가스통들(2013.1.2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다행히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큰 사고가 난적은 없지만 올 겨울은 눈에 미끄러져 몸이 다친 적이 많다. 한번은 2층 주택에 배달을 갔다 계단 눈에 미끄러져 가스통과 함께 떨어졌고, 얼음길을 가다 넘어져 가스통을 든 채 손목이 꺾이기도 했다. 갈비뼈가 다치거나, 발목이 부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게다가, 용기까지 합하면 40kg에 육박하는 가스통을 하루에도 수백 번 들다보니 양쪽 손목 인대는 늘어날 대로 늘어났다. 때문에, 통증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주사를 맞아가며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4대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모든 병원비는 김씨가 지불한다. 그는 "가스 배달기사들이 갖고 있는 직업병"이라며 "캐리어에 싣고 이동하면 시간이 많이 걸려 사람이 직접 옮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의 사회생활은 10대 때부터 시작됐다. 공사장, 식당, 신문 배달, 포장마차 등 그 동안 많은 일을 전전했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고등학생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누나와 단 둘이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씨는 "성공하고 싶다. 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는 이유로 고등학교도 자퇴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누나도 돈을 벌기위해 서울로 떠났다. 혼자 남은 김씨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 가스통을 어깨에 짊어지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김모씨(2013.1.2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김씨는 검정고시를 치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다. 군대까지 제대한 그는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방송국 카메라 기자'가 되고 싶어 전문대학교 사진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등록금, 교재비, 학원비, 장비 값은 큰 부담이었다. 현실이 그의 꿈을 발목 잡았다. "20대 후반이 돼서야 꿈을 이루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힘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목돈을 모아 장사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다시 여러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그러나, 고생해서 번 전 재산은 사기를 당해 모두 날렸다. 김씨는 길거리를 헤멨다. 지하철역에서 노숙도 했다. "고통이 뼈에 사무친다는 말을 절절히 느꼈다. 잊었던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원망보다 면목이 없어 죄스러웠다"고 김씨는 털어놨다. 

이후, 김씨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생활했다. 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0년 사귀던 여자 친구와도 이별하고 재기에만 매달렸다. 그때, 아는 사람 소개로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를 소개 받았다. 일은 힘들었지만 덕분에 2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는 안정적인 직장인이 됐다. 빌린 돈도 갚고 있고 전세로 작은 아파트도 구했다.

   
▲ 불로동 가스통 창고에서 가스통들을 교체하는 김모씨(2013.1.2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씨는 "가스통 짊어지는 일이 고달프지만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 뿐.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말했다. "지금은 구석에 박힌 가스통처럼 현실도 어둡지만 나도 언젠가 내 가게를 열고 가정도 꾸릴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오후 6시쯤 그는 불로동에 있는 가스통 창고로 이동했다. '화기엄금'이라고 적힌 철문을 열자 80여개의 LPG 가스통이 나타났다. 김씨는 트럭 짐칸을 대고 헌 가스통을 내려놓고 새 가스통을 트럭으로 옮겼다. 그리고, 지저동으로 이동해 분식점 가스통을 교체했다. 저녁 7시 30분쯤에는 동서시장에 도착해 한 포장마차에 가스통을 배달했다. 헌 가스통은 땅에 '데구루루' 굴려 트럭에 싣고 벨트로 고정시켰다. 판매대장을 꺼내 '포장마자'에 줄을 그었다. 모든 배달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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