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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마지막 '콜'은 울리지 않았다
대리기사 / 걷고 기다리고, 밤새 10시간에 4만원 겨우..."약자 중 약자"
2013년 04월 15일 (월) 11:47:29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금요일 초저녁. 번화가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리운전 기사 박모(38.대구 서구 비산동)씨는 스마트폰을 들고 '콜' 내용을 보며 손님이 있는 가게를 찾았지만 길이 복잡해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길 양쪽에 늘어선 가게들을 살피는 눈길에 초조함이 한 가득이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잘못 들어선 골목길에서 나와 스마트폰을 보고 다시 가게 위치를 확인했다. 그제야 한쪽 골목길 끝에 'oo뒷고기' 간판이 보였다. 인파를 헤치고 달려가 가게 문을 열었다. "대리 시키신 분!"

   
▲ 명덕시장 한 식당에서 콜 손님을 찾는 대리운전 기사 박모(38)씨(2013.4.1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2일 오후 6시. 대구 남구 대명5동 명덕시장 입구.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검정색 두꺼운 겨울 점퍼에 방한 바지를 입은 30대 남성이 눈에 띈다. 5년째 대구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하고 있는 박모씨다. 그는 이날 오후 5시 30분쯤 버스를 타고 명덕시장에 도착해 스마트폰 콜 수신 프로그램을 켜고 일을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은 일주일 중 가장 장사가 잘되는 날이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밤새도록 일하다보니 따뜻한 봄 날씨를 느낄 틈도 없어요. 저녁은 아직 추워요. 그래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보면 가끔 부끄럽기도 해요. 돌아보면 저만 겨울 옷을 입고 있더라구요. 그래도 감기에 걸리면 저만 손해잖아요. 돈도 많이 못 버는데 병원비까지 생각하면 어쩔 수 없죠"  

무작정 시장 입구에 서서 콜을 기다린 지 30분이 지났다. 해는 저물어 거리에는 어둠이 내렸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울리지 않는 스마트폰을 번갈아 바라봤다. 1시간이 지났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점퍼 속에 얼굴을 묻고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급한 마음에 콜 범위를 반경 2km로 늘렸다. '띵동' 소리와 함께 콜이 들어왔다. 마침 명덕시장 안이다. 다른 사람이 잡기 전 잽싸게 콜을 눌렀다.

   
▲ 명덕네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콜'을 기다리는 박모씨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콜을 받은 시간은 저녁 7시 18분 42초. 10분 안으로 손님이 있는 가게를 찾아야 한다. 1초라도 늦게  콜 프로그램에 있는 완료버튼을 누르면 자비로 벌금 3천원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벌써 콜 프로그램은 '600초'를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했다. 박씨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리운전은 촉각을 다투는 일이에요. 매일 기다리고 걷고 뛰는 일이 반복되죠. 조금만 늦으면 벌금을 내야하니까요. 그러다 간혹 취소하는 손님도 있구요. 건강한 두 다리가 전 재산인 셈이에요"

   
▲ 금요일 저녁 첫 콜 '명덕시장→칠곡3지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첫손님은 60대 남성 2명이다. 목적지는 북구 칠곡3지구. 기본 콜비 1만원에서 2천원이 더 붙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은 인사도 없이 박씨에게 차키를 넘겼다. 박씨가 운전석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자 가게 주인과 인사를 하던 손님들도 뒤늦게 옆 좌석에 올라탔다. 술, 고기, 담배 냄새가 옆에서 진하게 올라왔다.

저녁 8시 30분. 칠곡3지구에 도착했다. 콜비를 받고 그곳에서 다시 손님을 기다렸다. 20분정도 지나자 콜이 울렸다. 목적지는 북구 대현동. 손님을 싣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저녁 9시 20분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저녁보다 콜 빈도수가 많아졌다. 그곳에서 바로 콜을 잡았다. 다시 칠곡3지구로 가는 손님이다. 술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손님을 부축해 차에 태우고 다시 거리를 달렸다.

   
▲ 식당 앞에서 손님 차문을 여는 박씨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시간은 저녁 10시 30분을 훌쩍 넘었다. 칠곡3지구에서 1차를 마치고 '2차'를 위해 수성시장으로 향하는 손님들을 태웠다.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가끔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씨익 웃어주고 앞만 보고 달렸다. 저녁 11시 30분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완료 버튼을 눌렀다. 대리비(콜비)를 받고 다시 길에 서서 콜을 기다렸다.

"오늘은 진상손님이 없어 다행이에요. 가끔 술 먹고 욕하고 설교하는 손님들도 있거든요. '왜 대리하느냐'부터 시작해서 '나이는 몇이냐', '결혼은 했냐'...예전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이제는 웃어넘겨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요. 무조건 참아야지 어떡해요. 아니면 밥줄 끊기는데. 이것도 직업병이에요"

20분정도 지났다. 근처 술집에 콜이 떴다. 수신버튼을 누르고 가게를 찾았다. 쉽게 찾아지지 않아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시끌벅적한 술집 잡음이 들렸다. 만취한 손님이 어눌한 말투로 위치를 설명했다. 콜 완료 1분 전 손님을 만났다. 검은색 고급 세단이다. 살짝 긴장이 됐다. 부인이 취한 남편을 부축해 차에 태웠다. 동구 방촌동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시계 바늘이 12시를 가리켰다.

   
▲ 수성시장에서 손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하는 박씨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새벽 12시 30분쯤 손님을 내려주고 다시 콜을 기다렸다. 아파트촌에 손님이 없어 2km정도 걸어 내려왔다. '똥콜(손님 없는 곳으로 콜을 가는 경우)'을 받는 날은 많이 걸을 수밖에 없다. 저녁 9시부터 새벽 12시까지 피크 시간대가 지나자 콜 울리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40분정도 걸어 내려오자 번화가가 나타났다. 담배 한 대를 피며 손님을 기다렸다. 새벽 2시 넘어 동촌유원지로 가는 손님을 태울 수 있었다.

새벽 3시. 사람도 차도 모습을 감춘 한산한 거리에서 홀로 콜을 기다렸다. 4시까지 콜을 기다렸지만 마지막 콜은 울리지 않았다. 그는 프로그램 종료버튼을 눌렀다. 10시간 동안 6번의 콜을 받아 6만8천원을 벌었다. 건당 30%를 회사에 수수료로 내고 차비와 식비를 빼니 4만4천원정도가 손에 남았다.

"10만원은 벌고 싶었는데. 욕심이 너무 많나요? 하루 10만원 콜은 대리기사들의 꿈의 목표거든요. 그래도 어제보단 좀 더 벌었네요. 이제 콜 없으니 집에 가야죠. 퇴근할 때 되니 심란하네요"


   
▲ 콜 완료시간 1분 전 다행히 손님을 만나 차로 향하는 박씨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씨는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전선 피복 벗기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4년 만에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도우면서 베트남에서 온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결혼 이후 부부는 작은 식당을 열어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부인이 임신을 하면서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되자 박씨는 혼자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돈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혼자 가게를 감당할 수 없어 박씨는 결국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8년 직장을 찾던 중 운전면허증만 있으면 바로 일할 수 있는 대리운전 기사를 발견했다. 곧장 대리업체 2곳을 찾아가 서약서와 등록서류를 작성했다. 60만원정도의 1년치 보험료와 프로그램 사용료를 냈다. 바로 대리운전 기사가 됐다. 열심히 일하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 명덕시장에서 손님을 찾아 헤매는 박모씨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지만, 대구지역 대리운전 기사는 이미 포화상태였다. 박씨와 같은 기사들은 이미 5천여명이 넘고 그 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 달에 100만원 남짓 벌고 있지만 그마저도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매일 저녁 출근하고 아침이 다 돼서 귀가하다보니 가족 얼굴 볼 시간도 없어 미안한 마음뿐이다.   

"한겨울에는 길에서 콜을 기다리다 얼음처럼 몸이 굳어버려요. 잠깐 편의점에서 기다리는데 그것도 눈치 보여서 오래 못 있어요. 사고내거나 손님하고 싸우면 회사에서 락(콜 금지)을 걸어서 영업도 못해요.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어도 언제나 참아요. 약자 중 약자죠. 뭐랄까...말로 다 표현을 못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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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211.XXX.XXX.8)
2013-04-15 14:25:13
짠하네요~
길 위에 서민들, 에지간하면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했는데 오늘은 정말 짠하네요. 약자 중의 약자 맞는 것 같아서 마음 아파요~ ㅠㅠ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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