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처럼 의료사고보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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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환자와 의료계 모두를 위한 제도를


입원 중 코로나에 감염

코로나19 국내 감염자가 2020년 1월 20일에 확인된 후 누적 확진자 수가 국민의 반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무사했다. 정년 퇴임한 처지여서 사회적 접촉이 별로 없었고 정부에서 맞으라는 백신도 다 맞은 덕일 것이다. 그러다가 22년 10월 충수염(속칭 맹장염)으로 대구의 어느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 수술 후 1주일이 지나도 열이 떨어지지 않자 병원 측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코로나19 양성이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당시에는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보호자는 외부 출입을 못 하고 병동 내에서 상주해야 했다. 그런데 필자는 수술 직후부터 보행도 가능했고 식사 등을 혼자 해결할 수 있었으므로 보호자 없이 혼자 지냈다. 의료진 외의 다른 사람과 접촉한 일도 물론 없었다. 그런데도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니, 아주 당황스러웠다. 바로 퇴원을 요청하고 집에서 1주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런 원내 감염은 누구의 책임일까? 환자 입장에서는, 병원 규칙을 다 잘 지켰는데도 감염되었으니 병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 병원 입장에서는, 코로나19의 잠복기는 최장 2주일이므로 입원 시 음성이었다고 해도 원내 감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학자로서 좋은 사회제도를 위해 연구해온 필자는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이런 의료사고를 어떻게 처리하는 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할지 탐색을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병원 측에 어떤 제도가 있는지 문의해보았다. 병원 측의 답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본원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원내 감염 예방을 위해 질병관리 본부 지침과 본원의 코로나19 지침을 근거로 하여 원내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원내 보상 절차의 경우 인과관계가 명확한 사안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원내 감염에 대한 조치 사례는 없었다. 환자의 코로나19 확진의 경위와 병원 측의 귀책사유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입원 중 코로나19 확진에 대한 보상은 어렵다.'

즉, "병원 측의 귀책사유"가 명확하게 입증되어야 병원이 환자에게 보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의 과실을 환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병원 측의 귀책사유에 관한 입증을 환자, 병원, 제3의 기관 중 누가 하는 것이 좋은 제도일까? 그래서 이번에는 보건복지부에 이렇게 문의하였다,

'병원 측의 답변에는 귀책사유가 병원 측에 있음을 환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병원 사정이나 의료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환자 측에 입증책임을 지운다면 환자에게 너무나 불리한 제도가 아닐까? 또 원내 감염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했는지도 문의하였는데 가입하지 않았다는 답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정한 의료정책이 있는지.'

이 민원은 그 후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대구지역 보건소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질병관리청에서 답변을 보내왔다. 요약하면 이렇다. ‘의료법에서는 의료기관에서 준수해야 할 사항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의료 관련 감염 예방을 위해 자체 규정을 마련하고, 해당 규정을 이행하고 관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답변에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해결책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외래 접수·수납창구와 응급실 / 사진. 평화뉴스
대구의 한 대학병원 외래 접수·수납창구와 응급실 / 사진. 평화뉴스

그래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을 찾아보았다. 2014년 가수 신해철 씨가 수술 도중 사망했을 때 의료사고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끓어오르자 개정되어 ‘신해철법’이라는 별명이 있는 법률이다. 이 법에 의하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에서 의료기관의 동의 없이 분쟁 조정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 경우는 의료사고로 사망 또는 1개월 이상 의식 불명 등의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로 제한되어 있다(제27조 제9항). 즉, 현행 제도상으로는 대부분의 의료사고에서 민사소송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대한의사협회의 ‘의료배상공제조합’이 있으나 이것도 의료사고로 민사소송이 제기되는 경우에 대비하는 제도일 뿐이다.

산재보험처럼 의료사고보험을 도입하자

민법에서는 ‘과실책임원칙’을 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쪽에서 상대방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타당한 원칙이다. 그러나 필자가 겪은 사례에 이런 원칙을 적용하면, 환자 측이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병원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므로 승소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과실이 입증되지 않아도 책임을 지는 ‘무과실책임원칙’도 제도화되어 있다. 잘 알려진 예는 사회보험의 하나인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제도이다. 산재보험에서는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한 경우에는 사업주의 고의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 산재보험을 참고하면 의료사고 보상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은 건강보험료를 일반 국민이 부담하고 그 혜택은 진료비 급여에 국한되어 있다. 여기에 의료사고보험을 추가하여,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건강보험공단 또는 의료중재원의 심사를 거쳐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면 좋겠다. 보험료는 산재보험처럼 의료기관이 내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의료기관의 수입이 의료수가 정책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국가가 공동 부담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또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료사고보험에 가입한 의료기관이 민형사 책임을 면제받도록 하면 의료계의 반발도 크지 않을 것이다. 빨리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윤상 칼럼 131]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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