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비 사회보장, '선 인출 + 후 정산' 보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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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코로나19 위기는 근본적인 성찰의 기회


코로나19가 초래한 위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기회가 되고 있다. 특히 경제 성장을 위해 자연 파괴를 당연시해온 데 대한 반성, 민간영역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면서 공공영역을 축소해온 데 대한 반성, 시장경제에 어긋난다면서 복지에 소극적이었던 데 대한 반성 등이 두드러진다. 이 글에서는 복지, 그중에서도 생계비 보장을 위한 복지제도 개혁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시장친화적 복지도 가능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생산과 소비가 다 같이 위축되고 있다. 업종별, 취업 양태별 차이는 있으나 상당수 국민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긴 눈으로 보면 경제 규모 축소가 오히려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당장 생계비를 조달하지 못하는 계층이 생겨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기업과 가계를 위해 돈을 풀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경제력 하위 70%에게 지급하기로 하니, 처음에는 매표행위라고 규탄하던 야당마저 오히려 한술 더 떠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자고 나섰다. 총선 후에 바로 그 야당이 태도를 바꾸기도 했으나 다행히도 여야 합의를 통해 5월에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게 되었다.

대구 동성로 한 매장에 붙은 '코로나19 임시휴업' 안내문(2020.3.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동성로 한 매장에 붙은 '코로나19 임시휴업' 안내문(2020.3.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지만, 그동안 한쪽에서는 복지는 국민의 기본권이므로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반시장적 정책이라고 매도해왔다. 앞으로도 이런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는 좁혀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필자는, 양쪽의 주장에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보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시장친화적 복지’를 모색해왔다.

노르웨이와 알래스카의 석유기금

시장친화적이 되려면 우선 복지 재원 마련 방식이 시장경제를 제약하지 않아야 한다. 노르웨이와 알래스카의 예를 들어보자. 노르웨이는 1969년 말 해저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가 대량 발견된 후 1972년 국영기업 스타토일(Statoil)을 설립하였다. 그 후 2018년에는 기업 이름을 에퀴노르(Equinor)로 변경하면서 민영화를 추진했으나 아직도 국유 지분이 3분의 2가량 된다. 석유로 얻는 이익 중 4%만 정부 예산으로 전입하고 나머지 수익은 미래를 위한 정부연금펀드(GPFG)로 관리하고 있다. 이 기금의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2.5배에 달한다.

알래스카에서도 석유가 대량으로 발견되자 1976년 주 헌법을 개정하여 석유 투자수익의 25%를 영구기금(Permanent Fund)으로 적립하기 시작했다. 영구기금은 현재 및 미래의 모든 주민을 위해 사용한다. 다만 노르웨이와 달리 일부는 매년 모든 주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무조건 배당해왔다. 배당금의 규모는 해마다 다르지만 2018년과 2019년에는 일 인당 연간 1,600달러였다.

두 사례는 모두 미래 세대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공동 자산인 석유에서 재원을 마련하여 기금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정의롭다. 또 이런 방식은 석유의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시장 기능을 제약하지 않는다. 하지만 ‘석유가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냐?’는 의문이 들 것이다. 소유자의 생산적 노력과 무관하게 엄청난 규모로 발생하고 있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보유세로 환수하여 기금을 만들면 같은 효과가 난다.

기본소득이냐 선별적 급여냐?

국민은 누구나 이런 기금에 대해 균등한 지분을 가진다. 따라서 이 지분을 활용하는 복지제도을 설계한다면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역시 시장친화적이다. 그렇더라도 복지 급여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모든 사람에게 균일 지급하는 보편적 방식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만 골라서 차등 지급하는 선별적 방식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보편적 방식으로는 1980년대 벨기에의 필립 반 빠레이스(Philippe Van Parijs) 등이 제창한 기본소득이 대표적이다. 선별에는 비용(금전, 시간)이 들고 선별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으므로 조건 없이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주자는 것이다. 훌륭한 취지이지만 당시와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개인의 소득, 부동산, 금융자산 등 경제력 자료가 전산화되어 있기 때문에 선별 비용과 모멸감 같은 문제는 거의 없어졌다. 예를 들어, 요즘은 기차를 타도 승차권 조사를 하지 않는다. 전산화를 통해 승차권 구입 상황을 철도 당국이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본소득 방식은 선별적 복지에 비해 일 인당 지급액이 작을 수밖에 없고 지급액도 획일적이라는 약점이 있다. ‘부자에게도 돈을 뿌리느냐’는 비판과 재정 능력에 대한 우려에 대응하여 기본소득 수령액을 다음 해 종합소득세 과세에 반영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그렇다면 사후 선별을 한다는 뜻이므로 ‘기본소득’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선별적 방식에도 역시 문제가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긴급 상황이 닥치면 복지 대상자 선정과 급여액 그리고 집행 속도가 중요해진다. 정부가 전산을 통해 개인의 경제력을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이는 현재가 아닌 과거의 자료이므로 상황이 급변한 경우에는 적절하지 않다. 선별 후 실제 지급까지 걸리는 시간도 문제다.

생계비 보험, 선 자율 인출 + 후 조건부 상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모든 국민이 자동 가입되는 ‘생계비 보험’을 제안한다. 보험료는 공동기금에 대한 개인의 지분으로 자동 납부된다. 자기 돈으로 보험료를 내므로 ‘베짱이 퍼주기’라는 비판이 성립될 수 없다. 개인의 경제력이 사전에 정해둔 생계비에 미달하는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정부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미달액 한도 내에서 각자 알아서 인출한다.

자율 인출 방식을 택한다면 당연히 과다·부당 인출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우선 인출 희망자가 판단을 잘 하도록 돕는 세심한 상담 제도를 두어야 한다. 인출 후에 정부가 적정성 심사를 하여 필요 이상의 인출액이 있었다면 이자를 붙여 상환하도록 한다. 무작정 인출을 막기 위해서는 상환 이자율을 시중 이자율보다 다소 높게 책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울러 고의적인 부당 인출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적정성 심사는 1회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서 한다. 일시적으로 생계비가 부족해서 보험금을 인출했으나 나중에 경제력이 대폭 향상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 장기적 관점에서는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출한 보험금을 상환하는 게 옳다. 이러한 상환제도는 보험 제도의 취지와 시장원리에 충실할 뿐 아니라 동시에 기금의 안정성에도 도움이 된다.

‘생계비 보험’이 정착되면 현재의 복지 제도 중 생계비 보조를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와 65세 이상 중 소득인정액 하위 70%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제도가 필요 없게 된다. 고용보험과 공적 연금제도 역시 축소 내지 폐지할 수 있고 생계비 이상의 보장을 원하는 사람은 민간영역의 보험이나 연금에 가입하면 된다. 그만큼 사회보장제도가 단순해진다. 그렇더라도 ‘생계비 보험’에 대해 국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지지할 때까지는 ‘선 자율 인출’ 방식을 코로나19와 같은 긴급사태에만 활용해도 된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라고 했다.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이 시점에 사회안전망에 대한 혁신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있기를 기대한다.

* 관심을 가진 독자를 위해 복지에 관한 필자의 과거 칼럼도 참고하시도록 링크를 걸어둡니다.





[김윤상 칼럼 91]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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