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조심, 또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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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112 전화도 의심하고 원격제어용 앱도 경계해야

드디어 봄이 왔지만 필자의 오랜 친구인 A 선생 마음속의 얼음은 아직 녹지 않았다. 지난 1월 중순 보이스피싱을 당해 본인의 저축액 및 보관 중이던 공금까지 다 털렸기 때문이다. 극심한 후회와 자책,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시달리면서도, A 선생은 필자에게 사건 경위를 소상하게 설명해주었다. 다른 분들의 피해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피해자를 홀리는 사전 공작

1월 어느 날 A 선생이 낯선 번호(031-504-2563)의 전화를 받았다. 경기도 어느 농협지점이라고 하면서 고객이 A 선생 명의의 통장으로 돈을 인출하려고 하는데 위임한 적이 있느냐고 했다. A 선생은 당연히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이틀 후 010 번호로 비슷한 내용의 전화가 걸려 왔기에, 이번에는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후 02-112 번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기는 서울경찰청 김종민 수사과장(이하 ‘과장’)인데, 대규모 금융사기 사건(사건번호 형제1458)을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과장’은 대포통장의 명의자인 A 선생이 피의자로 되어 있다고 하면서, 여러 사람이 연루된 큰 사건인데다가 수사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어 철저히 보안을 지켜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된 악성 앱이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 A 선생으로 하여금 휴대전화에 원격제어용 앱과 금융정보 보안앱(CleanMasterX)을 깔도록 했다.

‘과장’은 A 선생이 피의자로 명시된 검찰청의 공문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과장’ 카톡 대문에는 명의자가 ‘KIM종민’이고 정복 경찰관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는 검찰청으로 전화(1301)하여 담당 부장검사에게 사정을 설명하라고 했다. 또 금융 피해를 확실하게 방지하기 위해서는 A 선생의 예금을 자기앞수표로 찾아 금융감독원에 맡겨야 하며, 맡긴 수표는 금융감독원에서 관리하다가 수사가 종결되면 며칠 내로 모두 원상으로 회복시켜준다고 했다.

공익 수사에 협조한다는 착각

A 선생은 공익을 위한 수사에 며칠간 협조한다는 마음으로, ‘과장’이 알려준 부장검사와 통화도 했고 예금도 수표로 인출했다. 또 자신의 통장에 적혀있는 개설지점의 전화번호로 지점장과 통화해서 관련 사실을 확인도 했다. 예금을 그대로 둔 채로 보호조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인출해서 보관하는 방식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걸려 온 전화번호가 02-112이므로 통상적인 경찰청 업무의 일환이라고 믿었고, 인출자의 신분이 드러나기 마련인 수표로 맡기는 데다가 지점장과 확인 통화도 했으니 피싱이라는 의심은 별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 출처. 금융감독원 보이스피싱지킴이 '보이스피싱 그만' 유투브 영상 캡처
사진 출처. 금융감독원 보이스피싱지킴이 '보이스피싱 그만' 유투브 영상 캡처

A 선생의 이런 설명을 듣고 필자가 검색해보니 발신 번호 거짓 표시 사례가 적지 않은 듯했다. “거짓 표시된 발신번호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관이라는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있었다. 또 서울중앙지검이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 운영하는 ‘찐센터’(010-3570-8242)의 안내에 이런 문구도 있다. “신고할 때는 다른 사람의 휴대폰이나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게 좋다. 악성 앱이 휴대전화에 설치돼 찐센터 번호로 걸어도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 선생이 받은 02-112 번호는 조작된 것이고, A 선생이 건 검찰청과 은행지점의 전화는 피싱범이 자기네 쪽으로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과장’은 사건이 중한만큼 은행지점장이 직접 A 선생에게 와 수표를 받아 안전하게 보관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은행 마감 시간 무렵에 그 지점장이 전화로, “일이 밀려 부득이 직원을 보내니 협조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A 선생이 미심쩍어하니까 ‘과장’이 지점장 명함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었고 또 수표 전달 후 보관 금액이 표시된 금융감독원의 확인 공문, 금융감독원의 ‘특별보호계좌’라고 찍힌 은행 통장도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명함, 공문, 통장은 모두 조작된 것이었다. 특히 공문은 부실한 점이 많아, 냉정하게 점검했다면 허위 문서임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의심의 시작: 맡긴 금액에 따라 보상금을 준다고?

‘과장’은 A 선생이 맡기는 금액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을 보상금으로 받게 된다고 하였다. 특이한 제도라고 여긴 A 선생은 금융 관련법을 검색해 보았지만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과장’에게 구체적인 법조문을 알려달라고 요구했고 ‘과장’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는 답이 없었다. A 선생의 아파트까지도 노리던 피싱범 일당은 이 단계에서 A 선생을 더 이상 속이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수표는 이미 피싱범이 처리한 후였다.

얼마 후 A 선생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초기화되었다. 또 맡긴 금액을 원래 계좌로 복원하여 통장 등을 은행지점장을 통해 돌려주기로 한 약속 시간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A 선생이 은행에 전화해보니 지점장의 이름이 ‘과장’에게서 받은 명함의 이름과 달랐다.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이 은행에 확인한 결과 수표는 이미 다 현금으로 인출된 상태였다. 그 후 경찰에서는 수표 거래자 일부를 찾았으며 수표 전달에 동원된 ‘직원’을 체포했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A 선생의 최대 관심사인 피해액 회복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한다.

A 선생 사례를 통해, 피싱에 대한 종래의 상식에 추가하여 알게 된 주의 사항을 세 가지만 지적해 두고 싶다. 독자 여러분께 도움이 되면 좋겠다.

◎ 112 번호의 전화가 걸려 와도 경찰이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 원격제어 앱이 유용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금전과 관련된 경우에는 경계해야 한다. 일단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앱을 깔았다면 경찰 신고나 타인과의 의논 등은 다른 전화로 해야 한다.

◎ 현금 아닌 수표도 피싱 수단이 될 수 있다. 대구경찰청 앞의 피싱 경계 안내판에는 “범죄에 연루되었다며 자금이체·현금전달 요구”라고 되어 있다. 수표가 명시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김윤상 칼럼 137]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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