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면했던 뒷골목, 그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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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 『나쁜 친구』- 앙꼬 만화(앙꼬 지음 | 창비 펴냄 | 2012)


2012년 창비출판사에서 발간된 「나쁜 친구」는 스물아홉이 된 앙꼬가 열여섯의 앙꼬를 소환하여 그려낸 자전적 만화이다. 어느 만화평론가의 블로그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앙꼬에게 이끌려 이 책을 보게 됐고, 그에 꽂혀 앙꼬의 작품을 모조리 찾아내어 사들였다. 표지를 열자마자 첫 장부터 훅! 숨이 막히는 그녀의 이야기는 챕터와 챕터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끼워진 까만 종이처럼 먹먹하고 무겁고 어둡기만 하다.

열여섯 살의 가출, 창녀촌의 친구, 무시로 자행되는 성폭력, 아버지의 구타와 친척들의 학대, 보호망은커녕 오히려 무시무시한 뒷골목으로 아이를 내모는 학교, 교사들의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주인공 ‘진주’의 일탈은 위태롭기 짝이 없어서 책장을 넘기는 내내 마음이 우글우글 오그라붙는 것 같았다. 지옥 같은 상황을 너무나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려내는 앙꼬의 강심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작품을 그리면서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워댔을지, 원고지 위에 무수히 눈물을 떨어뜨렸을지, 단 한 칸도 그려내지 못할 만큼 손이 떨렸을지,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진주는 왜 그랬을까? 건축을 하는 아버지와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엄마와 동생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언니까지, 누가 봐도 평범하고 단란한 한 가정의 막내딸로서 그저 순탄하게 자랄 수 있었음에도, 무엇이 그토록 진주의 마음을 악마로 가득차게 만들었을까. 그것을 단순히 ‘사춘기’로만 설명하기에 열여섯 살 진주의 방황은 지나친 구석이 있어서 나는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책 전체를 통틀어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우리 가족의 화목함과 부유함이 부끄러웠다’는 화자의 한 줄 고백뿐이다.

진주의 친구들은, 조직폭력배인 아버지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든지, 1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새엄마와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운다든지, 놀고먹는 건달아버지와 집나간 엄마를 가진, 모두 하나같이 불행하고 서러운 환경의 아이들이었다. 그런 별난 사연이 그들 사이에선 ‘아무도 특별하지 않았’기에, 또래들이 가진 무게에 비해 윤택한 자신의 배경이 어린 마음에는 부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스스로를 내동댕이침으로써 비운의 친구들과 비슷해지려 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 마음 한 가운데에는 진주가 가장 좋아하고 따랐던 ‘정애’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놓여져 있었을 것이다. 어린 진주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애는 집 나간 엄마와 건달 아버지를 대신해서 동생을 돌보지만 버림받은 자신이 결국 정착할 곳은 창녀촌 밖에 없음을 진작부터 알았기에,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고 마치 세상 다 산 늙은 ‘아줌마’처럼 피해갈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을 꾸역꾸역 걸어갔다. 진주는 ‘중학교 졸업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정애의 뻔한 결말을 지켜보는 것이 두려웠고, 슬펐고, 미안했던 것이다.
 
『나쁜 친구』- 앙꼬 만화, 143p
『나쁜 친구』- 앙꼬 만화, 143p

나 역시 위태로운 성장기를 보냈던 한 명의 딸이었고 이제는 사춘기 딸아이를 둔 평범한 엄마이기에, 이 책을 보는 내내 심장이 조여드는 아픔을 삼켜내느라 정말 힘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채색 하나 없는 흑백의 그림만으로 무언가 묵직하게 던지는, 이 독특하고 날카로운 만화책을 소개하고 싶어서 몇 년 동안이나 쥐었다 놨다 주물럭대다가 겨우 오늘에 이르러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책장을 후다닥 넘기며 낄낄거릴 수 있는 쉬운 만화는 아니라서 꼭 보시라고 ‘강추’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작품은 피비린내 나는 뒷골목의 상처를 들쑤셔냄으로써 우리가 외면했던 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을 대신한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고.

앙꼬는 「앙꼬의 그림일기1,2」로 데뷔하여 단편집 「열아홉」으로 슬슬 시동을 걸다가 「나쁜 친구」로 정점을 찍고는, ‘이젠 괜찮아, 다 괜찮아’ 하듯이 「삼십살」이라는 일상만화를 펼쳐 보이며 실실 웃고 있다. 「나쁜 친구」는 2017년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제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선은, 비혼여성의 생활을 담담하고 익살스럽게 그려낸 「삼십살」부터 시작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앙꼬의 작품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일상툰'의 유행 사이에서도, 속임 없이 정직하고 세밀한 펜선 만으로 직진하는 그의 그림체가 나는 참 좋다. 무엇보다 보편성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의 ‘비일상성’을 쳐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야~ 사람이 이렇게도 사는구나'하고 말이다.

 
 
 






[책 속의 길] 136
이은정 / 두 아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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