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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많은 사람이 너무 많아 놀랍지 않은, 그 겨울의 일주일
최희정 / 『그 겨울의 일주일』(메이브 빈치 지음 |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
2018년 04월 02일 (월) 10:22:15 평화뉴스 pnnews@pn.or.kr

여름, '효리네 민박'이 시작할 때 사람들은 환호했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겨울, 눈이 펑펑 쏟아지는 효리네 민박은 러브스토리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답고 사람들은 여전히 환호했지만 나는 재미가 없다. 효리도 좋고 상순은 더 좋으나 재미가 없다. 뜬금없이, 잘 나가는 효리네 민박을 끄집어내는 까닭은 <그 겨울의 일주일>이 효리네 민박과 닮았기 때문이다. 효리네 민박과 윤식당이 이 책을 모티프로 삼았다는 말도 있다. 결론은 효리네 민박보다 <그 겨울의 일주일>이 훨씬 재밌다. 왜?

효리네 민박은 민박집에 온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특별한 효리가 주인공이어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평범한 나는 효리와 효리의 집을 동경하게 되지만 이번 생에는 불가능한 일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나는 좌절한다. <그 겨울의 일주일>에도 특별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흥미진진한데 이상하게도 어느덧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을 읽는 일주일 동안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잊고 있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이 정도면 잘 하고 있는 건가 돌아보게도 된다. 

배경은 아일랜드 서부 변두리마을 스토니브리지, 더 구체적으로는 이 마을에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식 호텔 스톤하우스. 스톤하우스는 거센 파도가 부딪혀 부서지는 절벽에 우뚝 솟은 저택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다.
 
   

“호텔이요? 진심이세요? 호텔을 경영한다고요?”
“너는 이 곳을 특별한 곳으로 만들 거야.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 말이지.”
“저 같은 사람은 없어요. 저처럼 유별나고 사연 많은 사람은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랄걸, 치키.”(33-34쪽)


호텔 스톤하우스는 지극히 소박한 곳이지만 아주 평화로운 치유의 장소다. ‘저녁식사 때는 물론 와인을 제공하겠지만 좀더 활기찬 밤을 보내고 싶은 손님들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퍼브에 갈 수도 있고, 저녁마다 열한 명이나 열두 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겠지만 인내심 테스트 같은 건 아니며, 누구도 억지로 즐거워하도록 몰아붙이지 않는’(224-225쪽) 곳. 책은 오픈 일주일간 이곳 스톤하우스에 묵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그녀의 책은 전세계적으로 4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아일랜드인이 가장 ‘사랑한’ 소설가, 2012년 72세의 나이로 그녀가 생을 마감했을 때 아일랜드 총리는 “아일랜드의 보물이 떠났다”며 애도했다. 이 책은 작가 사후 출간된 마지막 작품이다.

소설에는 열 명의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까지 서른 명도 넘는 인물들이 나온다. 이혼 경력이 있는 영국의 유명한 영화 배우, 잘 나가는 기업의 후계자, 최고급 크루즈에서 근무하는 의사부부, 유부남과 연애한 도서관 사서, 퇴임한 교장 등. 각각의 사연을 안고 아일랜드로 온 이들은 아일랜드의 흐리고 거친 바닷가를 거닐며 고민과 걱정을 정리해나가거나 새로운 인연을 만나거나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물론 변화를 거부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인물도 있다. 다들 다른 이유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이들은 이미 인연의 고리로 느슨하게든 강하게든 연결되어 있다.

소설 속 인연의 고리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우연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인연의 고리들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어쩌면 삶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버림받고 객지를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와 스톤하우스를 운영하는 ‘치키’처럼 ‘유별나고 사연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웃음도 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너’에게 ‘나’를 이입하는 공감의 과정은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누구나 삶은 유별나고 사연이 있다는 것, 유명한 영화 배우도 알고 보면 부부간 성격 차이로 갈등하고 자식 문제로 고민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은 특별해 보이는 사람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존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그 겨울의 일주일>은 특별해 보이는 사람을 평범하게, 평범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면서 삶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무심코 던진 한 마디로 해답을 주기도 한다.   

“<브렌덴 항해> 모음곡의 주제음악을 아세요?” 그가 물었다.
“그럼요. 하지만 자주 연주하지는 않아요. 예전에 런던 퍼브에서 그 곡을 연주할 때마다 사람들이 울었거든요.”

“그 곡을 들으면 저도 눈물이 나던데요.” 안데르스가 말했다.
에리카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너는 울지 않잖아.” 그녀가 말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울었어.”(307쪽)

“응, 여긴 생각하기에 좋은 장소야. 바닷가에 나가면 더 작아진 기분이 들거든. 내가 덜 중요해지는 것 같고. 그러면 모든 것이 알맞은 비율을 되찾게 되지.”(127쪽)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울고 싶어질 때면 아일랜드에 가고 싶을 것이고,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것처럼 여겨질 때는 알맞은 비율을 찾기 위해 또 아일랜드에 가고 싶어질 것 같다. 일상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매일 바쁜 나도 매일 바쁜 너도 꼭 일주일만 스톤하우스에 머물며 크든 작든 일상의 생채기를 치유할 수 있기를.

   






[책 속의 길] 134
최희정 /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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