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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다 들었고, 다 알고 있다
정은정 /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 | 2023.2)
2023년 03월 21일 (화) 12:54:40 평화뉴스 정은정 칼럼니스트자 pnnews@pn.or.kr

지난 3월 7일 저녁, 독립영화 전용관 오오극장에서 민주노총 대구본부 부설 노동상담 주최로 <다음 소희> 공동체 상영회가 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 40여 명이 함께 영화를 보고, 콜센터 노동자와의 대화 시간도 가졌다. 나도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영화 상영 후 진행되었던 콜센터 노동자와의 대화에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대구콜센터분회 우가영 분회장과 나눴던 이야기를 전한다. 우 분회장은 첫 소감으로 "진상 고객은 이 영화에서보다 더한 경우도 많다. 진상 고객한테 당하고 나면 힘들지만, 동료들이 같이 욕해주고 퇴근 후 맥주 한잔하면서 위로해주면 마음이 풀린다. 더 힘든 건 그런 고객보다 무리한 회사의 실적 목표와 인센티브 상대평가로 서로 경쟁을 시키는 것, 실적 하위자라고 관리자에게 불려 가 개별 면담하면서 무능력하고 한심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이것 때문에 많은 동료가 우울증 진단도 받았고 약도 많이 먹는다"라고 했다. 현실은 언제나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래도 노조가 생기고 나서 그나마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생겼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보건(생리) 휴가도 연차도 쓸 수 없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한 사람 이상 자리를 비우면 안 되기 때문에 아무리 급해도 한 사람이 갔다 와서 자리에 앉아야 다음 한 사람이 일어날 수 있었다. 메신저에 미리 화장실 가겠다고 표시하고 승낙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필요할 때 휴가 사용이 가능하고 화장실도 보고 없이 이용하고 있다. 진상 고객을 혼자 감당해야 했는데 이제는 'help'를 요청하면 관리자들 휴대전화로 알람이 가고 도움이 필요한 사원에게 바로 달려가 전화를 받아 주도록 되었다. 전문적인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감당해야 하는 현장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며 "사회 초년생에, 노조도 없던 소희에게는 모든 어려움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 | 2023.2)

특성화고 3학년 소희가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 인터넷 해지를 원하는 고객을 ‘방어(방해? 저지?)’하는 부서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기업 취업을 ‘뚫었다’며 고무된 교사의 말을 듣고 소희도 ‘사무직’이 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지만 실제로는 하청 업체인 데다 ‘서비스 해지를 방어’하는 고강도 업무를 담당해야 했다. 첫날부터 고객님의 욕설과 마주한 소희는 언어폭력과 성희롱이 만연한 그곳에서 실적과 등수로만 방치되었다.

영화를 본 후 나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 영화에는 교사, 콜센터 관리자, 교육청 장학사, 부모 등 많은 어른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희가 그렇게 죽었지만, 누구도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고, 책임져야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학교는 "저희 입장에서는 업체 쪽 눈치도 보고 그래야 다음에 또 애들도 보낼 수 있고... 거기 제가 어렵게 뚫은 거예요”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3일 출근정지 징계를 당하고 학교에 간 소희가 교사에게 "선생님은 제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아시냐?"고 묻는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교육청은 "이게 현실입니다. 신입생 모집률, 대학생 취업률..."이렇게 답하고, 심지어 장학사는 "그런 애를 그런 곳에 보내서 그런 일이 생겼다"며 소희 때문에 소희가 그렇게 되었다고, 결국 소희 죽음의 책임은 소희 자신에게 있다고 몰아세웠다. 부모도 소희의 살려달라는 신호를 외면한다. 차 뒤 칸에 앉은 소희가 "엄마, 나 회사 그만둘까?" 하고 물었는데 앞칸의 엄마는 "응, 뭐라고?"라며 못 들은 척한다. 소희는 "치, 다 들었으면서..."라며 슬픈 얼굴로 머리를 숙인다.

소희의 부모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살기 빠듯한 형편에 제법 큰 아이가 제 용돈이라도 벌어 쓰면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아이가 조금 힘들다고 못 견디고 그만두고 앞으로도 자꾸 그러면 어떡하나 얼마나 걱정되었을까? 못 들은 척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심정이 백 번, 천 번 헤아려진다.

교사라고 큰 잘못을 한 건 아니다. 어차피 취업하고 제 밥벌이는 해야 하는 아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취업시키고, 어지간히 힘들어도 견디라고 하는 게 정상이다. 취업률 높여서 인센티브 받고, 학교 평가 잘 받으려고 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장학사마저도 다른 시도 교육청과 경쟁해야 하는데 어쩌겠는가? 그런 어른들의 어쩔 수 없는 형편 속에서 어린 소희는 자신을 차가운 저수지에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 | 2023.2)

많은 어른이‘나도 어쩔 수 없었다.’라고 구조 뒤에 숨었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았다. 단순한 자살 사건을 빨리 끝내라는 경찰 상부의 압력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왜 아이가 일하다가 죽어야 했는지 집요하게 파헤치는 사람,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분통을 터트리며 책임을 묻기 위해 세상과 싸우는 어른. 오유진 형사가 있었다.

오유진은 소희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에게“누구한테라도 말해. 나한테라도 말해. 괜찮아, 경찰한테 말해도 돼”라며 아이가 기댈 언덕이 되어준다. 그 말을 들으며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이야기는 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다음 세대들 앞의 어른이라면!  

오유진만큼 집요하고 거침없이 싸울 수 없을지는 몰라도, 오유진의 100분의 1, 10분의 1이라도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함을 안다. 내가 곧바로 오유진일 수 없지만 100명이, 1,000명이 1명의 오유진 몫을 담당해야 한다. 역으로 내가 곧바로 소희의 팀장, 교사, 장학사는 아니라도 내가 100분의 1, 10분의 1만큼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 탓이오'라고 하는 것이 아무 힘이 없고,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역할을 가리고 구조 탓만 한다면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된다. 내가 하는 나쁜 역할을 조금씩 가능하다면 제대로 줄여나가 나 같은 사람 100명이 모이고, 1,000명이 모여도 그런 사람 1명이 되진 않아야 한다.

영화가 보여준 것이 많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다 들었고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외면하고 있었다. 이제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각자 자기 몫의 권한과 책임이 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다음 소희는 차가운 저수지에 자신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른이라면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며 그날 소희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른 태도로 살며 다음 소희에게 희망을 전해야 한다.

 
   
 






 [그날, 나의 영화] 6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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