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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지 않은 세상에서..."불도저, 함께 타자!"
김예민 / 『불도저에 탄 소녀』(박이웅 감독 | 2022)
2022년 12월 08일 (목) 15:27:56 김예민 pnnews@pn.or.kr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김혜수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지난 11월 25일 진행된 제43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엔딩 멘트로 진행자 김혜수가 한 말이 대중의 열광적인 찬사와 함께 짧은 영상으로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

"여러분이 계속 사랑하고 함께 해 주신다면 한국 영화는 때로는 <불도저에 탄 소녀>의 혜영처럼 강렬하게, <헌트>의 정도처럼 소신있게, <범죄도시>의 마석도처럼 통쾌하게, <헤어질 결심>의 서래처럼 꼿꼿하게, 각자의 삶 속에 담긴 수많은 모습으로 항상 여러분들 곁에 함께 있겠습니다."

멘트 자체가 굉장히 의미 깊고 우아하다. 한국 영화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작품 하나하나, 주인공 이름 하나하나 호명하는 데서 드러난다. 더 중요한 것은 순식간에 영화의 중심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영화는 결국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별들의, 별들을 위한 영화가 아님을 세련되게 전달하는 멘트라고 생각한다. 따뜻하고 멋지다. 나는 그가 언급한 영화 중 첫 번째로 불린, 아직 만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를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강렬하다고?
 
   
▲ 『불도저에 탄 소녀』(박이웅 감독 | 2022)

강렬하다. 이 ‘소녀’는 불도저에 타기만 한 게 아니라 불도저 그 자체다. 그는 언제나 반말과 욕설, 고성에 몸의 대화도 마다하지 않는다. 3대 1로 싸우면서 끝내 상대를 쓰러뜨린 뒤 올라타 사정없이 따귀를 때려대고는 급기야 가위를 빼들고 죽일 듯이 살벌하게 “건들지마” 소리 지르는 액션 장면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 이후 극 중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출연자(자신의 친동생인 혜적에게만 한없이 다정하다)와 대거리하고 싸운다. 차근차근 약삭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야말로 좌충우돌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한동안 주인공에 대한 나의 입장은 ‘왜 저래?’ 였다. 굳이 억지로 친절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악다구니를 지를 건 뭐인가 하는.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신데렐라>에서 주인공인 신데렐라는 엄마에게서 배웠다며 용기를 가지고 친절하게 세상을 대한다. ‘그렇지. 용기를 가지고 친절하게!’ 필자는 사랑이 세상을 구할 것이라 믿는 입장이라 철저히 신데렐라 편이다. 그런데 신데렐라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2021년 대한민국을 살아야 하는 구혜영에게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세상이 친절하지 않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성인 중 단 한 명의 어른도 없다.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한 아빠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미성년자에게 사고 경위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네는 이가 없다. 오갈 데 없는 남매의 처지를 걱정하기는커녕 어린 동생이 혼자 있는 집에 들어와 엉망으로 부순다.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어리고 약한 모든 이에게는 ‘용기’가 아닌 ‘죽기살기’, ‘친절한’이 아닌 ‘당하지 않는’이 필요하다.

혜영은 거칠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거칠게 대하지 않는다. 혜영 말마따나 먼저 사람들이 혜영을 건드린다. 다짜고짜 반말하고, 뭐라도 된 듯 함부로 고나리질이다. 어리니까, 알바니까, 여자니까, 고분고분하지 않으니까 그 모든 '니까'들로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공격한다. 중장비 학원에서 여자는 이런 거 배워봤자라고 입을 대는 학원 강사에게 소리 지르며 나가버리는 장면이나, 혜영이 누구냐고 몇 번이나 묻는 데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하며 자기들 일 하다가 혜영이 부엌에서 중식도 들고 나와 살벌하게 휘두르며 꺼지라고 하니까 기겁하고 물러나는 일련의 장면들은 언듯 보면 혜영이 분노로만 가득찬 불량 소녀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잘 했다고 칭찬할 일은 아니지만 십분 이해가 된다.

친절하게 이야기하면 못 알아듣고 그만두지도 않으면서 되려 친절하게 헛소리, 헛짓하는 사람이 많다. 때로 준 대로 돌려 줄 게 아니라 이자 제대로 쳐서 돌려줘야 하지 않나 생각(만) 한다. 경찰서에 아버지 일을 물어 보러 왔는데 ‘또 사고쳤냐’ 며 수첩으로 머리를 툭 치는 형사 뒤를 쫓아가 책으로 뒷통수를 제대로 갈겨 버리는 것처럼. 생각만 한다고.
 
   
▲ 『불도저에 탄 소녀』(박이웅 감독 | 2022)

대부분의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혜영의 이모부가 이야기하듯이 ‘이번 한 번만 참으면 알아주겠지, 나아지겠지, 이번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하면서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을 택한다. 그러나 그것은 ‘택’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개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봤으나 소용이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아빠와 집과 동생과 궁극적으로 자신까지, 혜영이 그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오죽하면 불도저로 사람이 사는 집을 밀었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혜영은 고군분투하며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모두 놓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뇌사 상태에 빠진 아빠를 보내고, 어린 동생을 이모집에 맡긴 뒤 불도저를 몰아 자신의 집이자 가게를 부셔버린다. 이 모든 힘겨운 상황의 시초이자 탐욕과 불의한 땅주인의 집을 불도저로 부숴버리면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킨다. 부당함을 이대로 참지 않겠다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열심히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 아빠의 사망 보험금이 지급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는 혜영의 복잡한 심경이 담긴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끝난다. 그 돈으로 앞으로의 혜영의 삶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래서, 그렇게 끝? 두 가지 장면이 우리에게 그 답을 줄 수 있을 듯하다.

혜영이 세상으로부터 거칠게 내쳐질 때 혜적을 끌어안고 절망하며 서럽게 운다. 언제나 혜적을 지켜주겠다며 큰소리치던 혜영이 이제 힘이 든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함께 울던 혜적은 씩씩하게 울음을 멈추고 혜영의 팔 문신을 가리는 팔토시를 젖혀 문신을 누나와 함께 본다. 혜영이 자신을 건드리는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새긴 문신. 혜적은 ‘이게 누나야’ 라고 말하는 듯하다. 혜영은 웃음을 되찾고 일어선다.

불도저 사건 후 가석방으로 풀려난 혜영은 아빠의 사망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사고 당사자로부터 확인한다. 자신의 실수로 운전자인 혜영의 아빠가 죽었음을 들은 앳된 얼굴의 청년은 혜영에게 사실을 말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 혜영은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수 있다고. 그거면 됐다고. 혜영은 자신을 건드리는 사람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 『불도저에 탄 소녀』(박이웅 감독 | 2022)

자신이 선택하고,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진 혜영은 더 이상 문신을 가리지도, 문신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혜영이 그토록 밝히려 한 진실을 인정한 세상을 맞는다. 불도저에서 이제 정말 내려온 것이다.

혜영에게 필자는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이 만난 그 어른들과 나는 다르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불도저에 올라탈 일이 생긴다면 기꺼이 함께 올라타겠다."
물론 혜영이 나의 말을 듣고 싶다면 말이다.

덧 1.  
전체 주제와 조금 결은 다르지만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영화 초반에 3대 1로 싸워 모두를 이겼던 혜영이 영화 중반에는 입장이 바껴서 그들이 데려온 오빠에게 반항 한번 못하고 흠씬 두들겨 맞는 장면이다. 폭력은 해결이 될 수 없다. 폭력은 그 보다 더 큰 폭력으로 언제든 대체되고 결국 몸집만 불릴 뿐이다.
 
덧 2.
주인공 구혜영 역의 김혜윤은 그의 전작인 <SKY캐슬>에서 이미 그 패악질 자질을 보여준 바 있다. 일당백으로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도저처럼 몰아간다. 올해 각종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마땅하다.

 
   
 



 




 [그날, 나의 영화] ③
 김예민 / 대구여성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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