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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하지만 아름다운 애씀
[정은정 칼럼] 지구 위에 오래 공존하기 위한 비법
2020년 09월 21일 (월) 15:36:36 평화뉴스 정은정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처음으로 인터넷에 악플을 달았다. “말 같은 소리를 하세요.”라고. 실용적인 생활 노하우를 알려주는 동영상 채널에서 “아이스팩 처치가 곤란이라고?!-아이스팩 활용 꿀팁”이라는 영상을 본 후였다. 노하우가 아니라 눈속임일 뿐이었다. 동영상을 본 4분여의 시간조차 아까웠다. 골치 아픈 숙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무너져 허무한 마음과 애초 안될 일을 될 것처럼 꾸며 말하는 속임수에 화가 나서 인생 처음 악플을 달았다. 속마음은 “헛소리 집어치워!”였다.

영상에서 알려주는 꿀팁은 아이스팩을 냉동실에 넣어두면 냉기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전기가 절약된다는 것, 내용물을 다른 용기에 담아 오일이나 향수를 뿌려두면 두면 방향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장기간 집을 비울 때 화분 위에 올려두면 수분을 유지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 냉·온 찜질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아이스팩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종량제 봉투에 넣어버리면 된다는 것이었다. 오마이갓!!

여름 내내 쌓이는 아이스팩에 골치가 아팠다. 나도 무엇엔가 쓸 일이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냉동실 한 칸 가득 채워두고, 냉장실에도 몇 개 넣어두었다. 혹시 더 많이 필요할 때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용도실 서랍 한 칸에도 채워뒀다. 그래 봤자다. 사나흘에 한 번씩 배달되어 오는 각종 식품들에 어김없이 따라오는 아이스팩은 나의 필요와 비상 대비를 훨씬 초과한다. 어쩌지 못하고 며칠 쌓아두었다가 결국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버린다. 그럴 땐 내 양심도 조금 버려지는 기분이 든다. 아이스팩과 같이 버려지는 것 같은 양심을 지키고 싶었지만 인터넷 꿀팁 동영상은 결국 내 알량한 양심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한국의 쓰레기 분리수거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시민들 스스로 쓰레기를 세심하게 품목별로 분리하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국민들은 쓰레기 분리 수거도 열심히 하고, 장바구니도 들고 다니고, 지구의 날에 전기도 끄고, 조금 형편이 나으면 유기농 농산물을 사먹고,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제기하며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고, 배출량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단연 지구촌 기후 악당이라고 한다. 이름만 거창한 꿀팁 동영상을 보고 느낀 허무함은 이 사실 앞에서 귀여운 투정일 뿐이다.

   
▲ 전국 200여개 사회단체의 연대기구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의 기후비상집중행동...서울역 인근 윤슬광장에서 '기후위기를 넘는 행진'의 의미를 담은 신발 퍼포먼스. 코로나 영향으로 집회와 행진을 진행하지 못하는 대신, 시민들이 기증한 신발들(약 3천 켤레)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행진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2020.9.12) / 사진 제공. 환경운동연합

환경을 위한 개인의 노력은 이윤을 위해 화석연료를 쓰고, 이윤을 위해 플라스틱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이윤을 위해 육식을 권장하고, 이윤을 위해 미래의 자원까지 남김없이 끌어다 쓰는 시스템 안에서는 양심의 공회전일 뿐이라는 냉정한 사실에 무릎이 꺾인다.

당면한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 개인에게 과도한 도덕적 태도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윤과 성장을 위해 사람의 목숨까지 제물로 바쳐지는 사회체제와 그 수호자 정치에 책임을 묻고 역할을 요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당신과 내가 이 지구 위에서 오래 공존하기 위해 체제의 근본에서부터 변해야 한다는 절실함과 더 과감한 정치적 상상력, 실천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거대한 사랑과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내 안에서부터 온다고 확신한다. 당장 유용하지 않지만 무던히 애쓰는 마음에서 온다고 믿는다. 귀찮음을 견디며 철저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보고, 어딜 가나 에코백 하나는 들고 다니며 비닐봉투 사용을 줄여보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유혹인 자동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타고 걸어다니고, 오래 길들여진 입맛과 싸우며 과도한 육식을 줄이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시간과 마음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마음과 몸을 써보아야 절실해질 수도, 과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무용하나 아름다운 우리의 작은 애씀을 따뜻하게 격려하고 싶다.

끝으로 친구들께 제안 하나 드린다. 우리가 널리 전하고 싶은 선한 가치가 쓰레기로 남지 않는지 같이 고민해보자.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서,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서, 더 좋은 정치를 위해서, 여러 가지 좋은 뜻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현수막, 펼침막, 1회용 코팅 종이 피켓, 뺏지, 텀블러, 에코백, 부채, 비닐 파일, 충전기... 각종 기념품을 이제 그만 만들지 말자. 공짜로 그만 나눠주자. 우리부터 필요한 사람(만)이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필요한 만큼을 소유하면서 “필요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과잉생산을 멈추라”고 외치자!

   







[정은정 칼럼 11]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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