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3.12.4 월 22:01
> 뉴스 > 환경/문화 | 그날, 나의 영화
   
내가 이해 못한 어머니의 지금 모습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김선주 / 『수프와 이데올로기』(양영희 감독 | 2022)
2022년 11월 14일 (월) 15:01:02 김선주 pnnews@pn.or.kr

* 글 곳곳에 영화 스포일러가 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고려해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생각해보니 양영희 감독님의  이전 영화 <디어평양>(2006),  <굿바이, 평양>(2011) 모두 극장에서 봤었습니다. 제가 감독님의 굉장한 팬이다 뭐 그런것은 아니지만(하지만 이렇게 글을 쓸 정도면 팬이네요^^),  ‘조총련’이라는 단어 뜻도 잘 몰랐으면서 당시 영화 평이 좋다는 이유로 봤었던  <디어평양>, 그리고 5년후 개봉했던 <굿바이, 평양>속 카메라 렌즈에 담긴 가족에 대한 애정어리면서 한켠에 묻어나오는 슬픔같은 시선이 은은하게 퍼지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앞의 두 영화가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평생 조총련 활동을 하신 부모님과 제일동포 북송사업으로 평양으로 이주한 세 오빠들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에 개봉한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감독의 어머님이신 강경희 여사님의 삶의 행적과 여사님의 노년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혹 앞의 두 영화를 보지 않으셔도 영화속에서 아버지와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니 혹 영화를 못 보셨더라도 감독님의 가족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으실 겁니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양영희 감독 | 2022)

생전 나이가 들도록 결혼하지 않은 막내딸이 걱정되지만 일본인과 미국인은 절대 안된다고 하셨던(심지어 미국에 사는 교포도 안된다고 하셨던) 아버지였는데, 역시 사람 인생은 모른다고 한 어른들의 말처럼 감독님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카오루씨는 일본인입니다.

어머니는 사위가 될 카오루씨에게 인삼과 마늘을 팍팍 넣은 수프(닭백숙)를 준비합니다. 첫만남이라 덥고 습한 오사카 날씨임에도 양복을 입고 첫인사를 드린 카오루씨는 결국 편안한 티셔츠와 바지를 갈아 입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등장하는 수프, 이때는 어머니와 카오루씨가 함께 장을 보고, 함께 마늘을 까며 어머니표 수프 만드는 과정을 카오루씨는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리고 세번째 등장한 수프, 이제는 능숙하게 생닭을 사고 수프를 준비하며 노인에 대한 예의 없는 어떤 일에 대한 항의 전화를 하는 카오루씨의 모습을 담습니다. 이렇게 같이 수프를 먹으며 마늘에 있는 좋은것이 닭고기에 스며들게 하듯 서로에게 스며들어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되는 모습을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20년은 더 정정하게 사실것 같았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라고 합니다. 서서히 기억을 잊으시면서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것도 잊고, 아들들도 북으로 보낸것도 잊고 집 2층에 있는줄 알고, 아침 일찍 외출해서 눈앞에 안보이는 줄 아십니다. 

왜 어머니는 제주도를 떠나 다시 일본으로 오게 되었고, 아버지와 조총련 활동을 헌신적으로 하면서 아들 셋과, 함께 제주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동생가족들까지 북으로 보내고 노년이 된 지금까지도 본인 빚도 잘 못갚으면서 매달 북에 사는 가족들 생활비를 무리하면서 까지 보내려고 하셨던 걸까요. 애초에 북으로 보내지 않으면 되었을텐데 말이죠.

감독님도 부모님들이 제주4.3을 피해 일본으로 넘어온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따금 목소리 낮춰 얘기해주셨던 제주4.3때 본인이 겪고 들었던 일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주 4.3이 70주년이 되던 해, 어머니께 임시 발급된 여권으로 함께 제주에 오고 4.3평화기념관에서의 그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들과 기념관에 기록되지 못하거나 기록되기를 거부한 어머니의 집안 사람들과 약혼자의 이름을 통해 '왜?'라며 어머니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이해하지 못했던 그 지점들을 비로서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아, 어떤 이가 살아가는 가운데 감당하기 힘든 너무 큰 고통을 겪게 되면 그 경험은 남은 그의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걸까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4.3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말해서도 안 되었던 수십년의 삶이 섬안이나 섬밖이나 마찬가지구나 싶어 감독님처럼 그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지금 한국사회가 과거에 비해 살기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분단국가라는 사실과, 아직도 어떤 사안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빨갱이'로 낙인찍어버리는 것들을 보며 괜히 한숨만 쉬게 됩니다.

가족들이 죽었고, 제주를 떠날때 보았던 시신들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임에도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하나하나 기억들을 휘발시킵니다. 눈앞에 있는 딸도 못 알아보게 합니다. 이는  노년에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 된 질병일까요, 아니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거의 스트레스 대해 부담을 느낀 뇌의 작용 인걸까요? 우리의 기억은 결국 휘발되고 나이가 들면서 그 순간만 남고 그 세세한 맥락들은 흐트러질 수 밖에 없기에. 그러다 기억할래야 기억할 수 없는 순간이 올 수도 있기에. 그래서 더 늦기전에 고통의 현장의 기록을 남기는것의 소중함에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 (사진 외쪽) 10월항쟁 76주기 위령제(2022.10.1.달성군 가창면 위령탑 /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제72주기 합동위령제(2022.10.28.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인턴기자

대구10월항쟁, 가창골, 경산 코발트 광산, 문경 석달마을 등 수많은 학살현장에서의 아픔을 용기내어 증언한 생존자 분들, 유가족 분들의 아픔에 공감한다고는 했지만 나는 그래봤자 얕게 공감하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이 더 휘발되기 전에  조각조각 모아 기록으로 남긴 기록자분들에 대해서도 더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길 포스터를 다시 찬찬히 보았습니다. 포스터 속 어머니의 모습에 다시 눈물을 글썽이게 됩니다. 집에 가는 길 생닭을 사서  마늘, 인삼 듬뿍 넣어  4~5시간 푹 고와 삼계탕을 만들어 먹고 싶어졌습니다.(글은 이렇게 썼지만 영화를 본날 저녁 저는 집에 계신 엄마와 냉장고에 남은 반찬들로 밥을 먹었네요.) 그리고 집에 계신 부모님이  더 늙기전에 어르신이 혹시나 마음 깊숙히 묻어두고 얘기 못하신 것은 없는지 계속 뭔가 물어보고 싶어지고, 조카가 좀 더 크면 꼭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 싶습니다.

 
   
 








 [그날, 나의 영화] ②
 김선주 /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팀장

 
     관련기사
·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빨치산 아버지, 뭉클한 인간의 향기
· 평화의 길, '선을 넘어 생각하자'· "동백이 피엄수다"...대구에서 열리는 '제주4.3'과 '여순항쟁' 전시회
· 대구 10월항쟁 76년, 아버지 잠든 가창댐에서..."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 72년..."부모님 흔적이라도 찾아달라"
· 대구 가창골·코발트, 진실화해위 10년 만에 재조사..."뼈 한 조각이라도"· "쌀을 달라"...대구 10월항쟁의 비극, 그림은 말한다
· 대구 10월항쟁 75년...1만명 원혼 깃든 가창댐서 '국가의 책임'을 묻다· 국가보안법 73년..."야만의 악법 폐지, 민주당 결심만 하면 될 일"
김선주의 다른기사 보기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본 신문에 게재된 기사, 링크에 대한 모든 법적권리와 책임은 기사작성자 평화뉴스 에게 있습니다.
* 평화뉴스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제호 : 평화뉴스 * 편집.발행인 : 유지웅 * 창간.발행일 : 2004년 2월 28일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대구 아00010 * 정기간행물 등록 연월일 : 2007년 3월 14일
(우)41266 대구시 동구 국채보상로 155길 54 (상가동 202호) | 대표전화 053-421-6151 | 팩스 0505-421-61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지웅
Copyright 2008 평화뉴스. All rights reserved. 전자메일 pnnews@p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