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명 의장님께 드리는 마지막 인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욱(6.15 대경본부 집행위원장)


2024년 2월 18일 15시 35분 지난 날 의장님과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의장님을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4일 간의 장례기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늘에서는 슬픔에 잠긴듯한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최근 의장님의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저의 곁을 떠나셨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장례기간동안 왠지 모르게 눈물은 참아야겠다는 이유로 의장님이 환한 미소로 웃고 계시는 사진 한 장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추모의 밤 행사 때 상영할 영상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장례가 끝나고 홀로 책상에 앉아 의장님께 드리는 마지막 인사를 적기 위해 지난 날 의장님과의 추억을 떠올리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한 세기 동안 의장님이 살아오신 생에서 저와의 인연은 20여년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의장님이 주신 가르침은 저의 가슴에 평생토록 남을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한기명 의장님...(사진 왼쪽) 2010년 8월 13일, 대구2.28공원 '광복 65돌 기념식 및 통일노래자랑' / (사진 오른쪽) 2012년 9월 13일, 대구지방경찰청 앞 ''범민련 대경연합 한기명 의장 자택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김영화 기자
한기명 의장님...(사진 왼쪽) 2010년 8월 13일, 대구2.28공원 '광복 65돌 기념식 및 통일노래자랑' / (사진 오른쪽) 2012년 9월 13일, 대구지방경찰청 앞 ''범민련 대경연합 한기명 의장 자택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김영화 기자


의장님! 혹시 저와 어떻게 인연이 맺어졌는지 기억하시나요?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제나 대오의 맨 앞장에서 우리들을 이끌어주셨던 실천의 현장, 투쟁의 현장에서 의장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당시 저는 학생운동을 하고 있어서 지역운동에 대한 주인의식이 그다지 크지 않은 상태에서 의장님을 뵙고 인사드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장님은 아름다운 미소로 악수를 하면서 손을 꼭 잡아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나 대학생들을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던 의장님. ‘우리 젊은 대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힘이 난다’고, ‘대학생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해서 조국 통일의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던 의장님이셨습니다. 한해한해 지날수록 의장님의 걸음걸이와 움직임은 느려지시고, 식사 시간도 늦어졌지만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의장님의 의지는 그 누구보다 굳건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의장님은 스스로 주인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개인의 삶이 누군가에게 지배당하여 살아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시면서, 자신은 민족의 주인으로 우리 민족은 외세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 남과 북이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면서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시던 의장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주인으로 자본과 권력의 탄압에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늘 걱정하시면서 투쟁의 현장, 실천의 현장에서 동지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언제나 시대의 주인으로 살아가시며 개인으로는 미약한 힘이지만 우리가 힘을 모아 단결하면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다는 신심으로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누구보다 조국과 조직에 기여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평생의 보람으로 생각하신 의장님이셨기 때문에 그것을 제가 감히 막아 서는 것 같아서  의장님의 거동이 불편하셔도 먼저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쉬라.’, ‘오늘 일정은 안 나오셔도 된다.’ 라는 이야기를 못 꺼냈습니다.

"강제징용 사죄 않고 경제보복 협박하는 파렴치한 일본, 아베 정권 강력 규탄한다"...대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위하시는 한기명 의장님.(2019.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강제징용 사죄 않고 경제보복 협박하는 파렴치한 일본, 아베 정권 강력 규탄한다"...대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위하시는 한기명 의장님.(2019.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항상 건강 관리에 철저하셨던 의장님. 그토록 건강관리에 철저하신 이유는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조국을 위해서였고, 조직을 위해서였고, 동지를 위해서 였습니다. 통일운동을 하는 일꾼으로 조국과 조직, 동지를 위해 조그마한 일이라도 더 하기 위해, 투쟁의 현장에 나가 동지들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하셨습니다.

나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니라 조국의 몸, 조직의 몸이라고 생각하시며 일생을 조국과 조직에 그 몸을 바치셨던 의장님. 어쩌면 의장님의 생의 마지막 날이 2월 18일인 이유도 조직을 위해서 스스로 선택하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젊은 나이라고 자기 몸을 혹사하고 자신의 건강을 맹신하며 관리하지 않았던 저에게 실천으로 몸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 의장님도 세월이 지나다보니 기력과 기운이 급격히 떨어지셨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의장님 댁을 자주 찾아뵙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장님은 저의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니가 있어서 힘이 난다.’, ‘참 미안하고 고맙다.’ 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순간 차오르는 목메임을 꾹 누르고, 괜찮다며 또 연락하라고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추모의 밤'(2024.2.20. 대구전문장례식장) / 사진 제공.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추모의 밤'(2024.2.20. 대구전문장례식장) / 사진 제공.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추모의 밤'(2024.2.20. 대구전문장례식장) / 사진 제공.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추모의 밤'(2024.2.20. 대구전문장례식장) / 사진 제공. '자주민주통일전사 한기명 의장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

일제와 미제의 수탈과 탄압, 박정희 전두환의 서슬퍼런 군부 독재를 겪으시며 이에 굴하지 않고 싸워오신 인고의 세월로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의장님의 길을 제대로 배우고 따라가진 못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의장님의 곁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리고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은혜를 계속해서 보답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합니다. 이제는 그것보다 의장님이 걸어오셨던 길 중에 가장 험난했던 자주민주통일의 길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제 그 길로 가야하는 것 같습니다.

의장님과 단둘이 가진 시간이 참으로 많았는데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둘이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습니다. 참으로 원통하고 송구합니다. 의장님의 환한 미소와 함께 사진 한 장 찍어보지 못한 게 후회스럽습니다.

비록 의장님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그 정신은 저의 가슴 속에서 의장님을 느낄 수 있도록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 주세요.

의장님께서도 참 잘 싸우셨습니다. 이제는 의장님의 평생 소망이셨던 통일조국의 세상을 만들도록 제가 더 잘 싸우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미소로 웃고 계실 그 통일조국의 세상을 생각하며 편히 주무십시오.


[기고] 이창욱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구경북본부 집행위원장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