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진보진영의 자기성찰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진보진영 내에서 각 정파의 차이를 배척만 하지 말고 인정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공유하는 것이 바로 연대이자 단결이다"
17대 대선 이후 진보진영의 위기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대구경북 진보운동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좌담회가 열렸다. 11일 오후 대구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좌담회는 <대구경북진보연대(준)>가 주최했으며 지역 진보운동 단체 및 시민단체 관계자 16명이 참가했다. 이날 좌담회는 올해 정세와 대선 이후 진보운동의 위기감 고조에 따른 문제와 방향을 진보진영 주체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좌담회는 오규섭 진보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 추진에 관한 비판과 발제, 이명박 정권의 노동, 환경, 교육, 통일정책, 대선 이후 지역 진보진영 과제에 대한 자유토론으로 진행됐다. 오규섭 진보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다층적으로 일어나는 진보운동의 여러 가지 접점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어떻게 정세를 분석하고 나아가 대구경북 진보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모색해 나갈 것인가라는 부분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좌담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정파 뛰어넘어 우리가 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대영 <한미FTA저지대구경북본부> 집행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주도할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관건"이라면서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 내부 종북논쟁을 비롯해 각 정파를 뛰어넘어 우리가 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구도 구체적인 답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함께 공유하고 고민해야 한다"면서 "결국 진보라 표현되는 지역 진보단체들의 단결과 연대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은 '큰 싸움'을 예고했다. 김대용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지난해 '현장대장정'을 통해 조직력 복원에 힘을 쏟았는데 대선을 거치면서 계급의 조직력이 약화됐다"면서 "올해는 비정규직 문제, 사회 공공성 문제, 빈부격차 해소 문제, 신자유주의 및 한반도 평화 문제 등 4대 핵심 요구안을 내걸고 총파업도 불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는 지역 공동투쟁대책위원회를 꾸려 산별노조 전체가 참여하는 6~7월경 총파업 동참 계획을 굳힌 상태다.
"이명박, 대운하 억지논리 만들기에 치중"
공정옥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대운하는 이명박 당선자측에선 이미 기정사실이고 제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환경과 생태파괴 가능성 등 시민사회단체가 우려하는 목소리를 없앨 수 있는 억지논리 만들기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정옥 사무처장은 또, "6~7월경 대운하 특별법을 제정, 국회에 통과시켜 추진하겠다고 하는데, 만약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수개월 동안 진행되는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대운하가 이명박 정부 임기 안에 완공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대안.비판 없이 '대운하 띄우기'에 띄우기에 급급한 매일.영남"
대부분의 국책사업에서 발생하는 사업비 증가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대운하 건설비용을 약 15조로 보고 있는데 대운하 역시 나중에 가면 처음 계획된 사업비보다 3~4배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추진과정에서 상수원보호법과 대운하 특별법의 충돌 가능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밖에도 대선 이후 검증과 비판 없이 대운하 '띄우기'에만 급급했던 매일신문과 영남일보 등 지역언론을 향한 일침도 나왔다. 공정옥 사무처장은 "환경적 측면으로만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고, 가치적 측면 등 광범위한 방향으로 접근해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시키고, 결국엔 대운하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가 진보진영의 과제"라고 말했다.
박신호, "이명박 교육정책 대응방안 만들어야...시민운동 5년간 유연한 사고 가져야"
박신호 전 전교조대구지부장은 수성구에 국제학교 설립 추진 계획을 비롯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했다.
박 전 지부장은 먼저 대선 이후 최근의 상황을 전교조의 ‘위기’로 규정했다. 그는 “진보단체 뿐 아니라 시민단체들이 정책권한이 있는 시도교육청에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반한 대안을 제시하고, 고민의 지점에 대해 결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면서 “이런 과정 속에서 전교조가 이명박 교육정책에 대응하는 방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이기도 박 전 지부장은 시민운동과 관련해, “향후 5년간은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대구참여연대는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면서 좀 더 진보적인 운동을 하고 대안을 제시할 계획인데 그것이 개개인의 회원들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 부문 발제에서 백현국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통일로 가는 길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백 상임대표는 “이명박 정부도 북미 관계가 나아져 가는 미국 대북정책의 기조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남한사회 냉전 기득권 세력의 요구에서도 벗어나지 못해 반통일적인 정책도 나타날 것이다”고 했다. 또한 그는 “민간통일운동 부문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기층운동과 손을 잡는 의식 속에서 방안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범민련대구경북본부> 한기명 의장은 “한국 전쟁 전후해서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을 위한 추모제를 진보진영이 올해부터 해마다 주최하자”고 제안했다.
"진보진영, 실력이 없는 게 아닌가?"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진보진영 내 정파를 뛰어넘은 단결과 연대, 자기반성에 한 목소리를 냈다.
김대용 민주노총대구 수석부지부장은 “보수를 택한 대선을 보면서 국민이 바뀐 게 아니고 우리 진보진영의 실력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세력들, 대통합민주신당에서부터 한국사회당까지 각각의 세력들이 단결을 이뤄내지 못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에는 모두 반대했지만 정치적으로 단결할 수 있는 지점이 없었단 소리다. 이게 결국 우리의 실력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함 의장은 이어 "이명박 당선자 개인이 위험하다. 스탈린과 히틀러 등에서 알 수 있듯 한 개인이 전권을 흔들면 위험하다. 이 당선자는 모든 권력을 자기집중화 시키고 있다. 한 개인의 폭력으로 민중들은 더 고통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신호 대구참여연대 운영위원장과 오택진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구경북본부 사무처장은 “진보운동 사회의 매몰된 경직성을 나무라고 통합시킬 수 있는 어른들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무원 사회보다 낮은 도덕성...관성화가 문제"
특히, 오택진 사무처장은 진보운동 사회의 낮은 도덕성도 꼬집었다. 그 예로 그는 “공직사회에서도 음주운전을 하면 승진에서 제약을 받는데 우린 그런 제재가 없다”면서 “이는 진보운동 사회의 도덕성이 공무원 사회보다 낮다는 걸 뜻하는데 이런 관성화가 지속돼 온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대구참여연대> 박근식 편집위원장은 “단결 자체가 다수파의 논리일 수 있기 때문에 소통과 연대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끝으로 백현국 상임대표는 “지금은 연대적인 시점이다. 과연 내 생각이 절대적인 것인가? 이를 되물어보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결국 서로의 차이를 배척만 하지 말고 같이 갈 수 있는 부분은 같이 하는 것이 이 시점이 필요로 하는 연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 그 진보의 위기 속에서 지역 진보진영은 혁신과 단결, 그리고 연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지역 진보진영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할 지 지켜볼 일이다.
한편 대구경북진보연대(준)는 여성과 인권, 환경 등 진보적 의제를 자기 과제로 하는 연대체로 오는 4월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결성될 예정이며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전농경북도연맹, 민주노동자전국회의대구경북지부 등 11개 단체가 참가하고 있다.
글.사진 평화뉴스 남승렬 시민기자 pnnews@pn.or.kr / pdnams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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