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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치는 '통일' 끝내 못보시고...'인혁당' 피해자 강창덕 선생 별세
'야성(野星)' 강창덕(94) 선생 3일 별세...평생 항일·민주화·평화통일에 헌신
일제·미군정·자유당·유신정권에서 7차례 투옥, 13년 복역..."남은 여생, 통일을 맞고 싶었다"
2021년 09월 03일 (금) 17:16:12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인혁당 조작사건' 피해자로 평생 통일의 그 날을 기다리던 야성(野星) 강창덕(姜昌德) 선생이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대구평화통일시민연대는 강창덕 선생이 9월 3일 오후 투병 중이던 영남대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 강창덕 선생은 일제치하 항일운동과 군부독재에 맞서 평화통일·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원로 인사로, 일제·미군정·자유당·유신정권에서 무려 7차례 투옥돼 13년을 복역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 시절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피해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년8개월의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특히 (사)4.9인혁재단 이사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지금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과 남북평화나눔운동본부 고문으로 이름 올리며 통일의 꿈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 사무치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끝내 눈을 감았다.

고 강창덕 선생의 삶은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로 고스란히 새겨진다.

   
▲ 5.18항쟁 37돌 대구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강창덕 선생(2018.5.1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2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고 강창덕 선생은, 1944년 17살 나이로 만주독립군 활동을 얘기하다 반일사상 고취 혐의로 구속됐고 1945년에는 일본해군지원병 입대를 피해 도피하다 구속됐다. 광복 후인 1947년에는 학생웅변대회에서는 미군정 포고령위반 혐의로, 1952년에는 평화통일을 주장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1961년에는 반공법제정반대 집회 등으로 2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이어 건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56년 영남일보 공채 1기로 입사해 정치부 기자로 사회 첫발을 내디뎌  2년 뒤 대구매일신문사로 옮겼다. 그리고 1960년 사회당 경북도당 선전·조직위원장을 시작으로 1967년 '반독재 재야민주세력단일후보추진위원회' 활동과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대구경북상임공동의장, 1993년 경산민우회 초대회장을 지내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특히 1974년에는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구속돼 모진 고문 끝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9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8년8개월을 복역했고, 2006년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아 2007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인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은 1975년 4월 8일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이 확정된 뒤 18시간 만인 다음 날 9일 사형을 집행해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불리고 있다.

고 강창덕 선생은 생전 평화뉴스와 인터뷰에서 '야성(野星)'이라는 호(號)에 얽힌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1947년 대구상업학교(현재 대구상원고) 학생이었던 강 선생은 웅변대회에서 미군을 비방해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는데, 당시 그곳에서 10월항쟁으로 구속된 감방장으로부터 '야성(野星)'이라는 호(號)를 받았다고 한다. 강 선생은 "호값한다고 한 평생 가시밭길"이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선생은 또 평생 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생전 인터뷰에서 "통일학교를 만들어 말년 여생을 보내려고 마음 먹었다. 작은 학교라도 만들어 통일 일꾼들을 키우고 싶었다. 그렇게 통일교육을 하며 후진양성을 하다 통일을 맞고 싶었다"며 사무치는 소원에 말을 잇지 못했다.   

고 강창덕 선생의 온 삶은 '야성(野星)'처럼 빛났다. 선생의 고난과 헌신이 우리 현대사와 대구경북의 역사에 고스란히 새겨지고, 평생 사무쳐 소원하던 통일을 저 세상에서라도 꼭 지켜볼 수 있기를 '통일 일꾼들'은 기원하고 있다.  

< 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선생 시민·사회장 >

빈소 : 대구전문장례식장 201호 (대구 동구 금호강변로 71)
장지 : 현대공원 제1묘원(경북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

주요일정
- 추모의 밤 : 9월 5일(일) 오후 6시 (빈소)
- 영결식 및 발인 : 9월 6일(월) 오전 8시 (빈소)
- 명복공원(화장) : 9월 6일(월) 오전 11시
- 하관 및 장지 추모제 : 9월 6일(월) 오후 1시 30분 (현대공원 묘소)

■ 유족
- 아들 강상호, 강상우, 강상구
- 며느리 김혜영, 권영애, 이희진
- 딸 조태임

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선생 장례위원회
(문의 : 임성종 010 4171 0643, 김두현 010 4895 5615, 천기창 010 9266 3268)


고 강창덕 선생 주요 약력

□ 1952년 건국대학교 정치대학 정치학과 졸업
□ 1956년 영남일보사 정치부 기자(공채 1기)
□ 1958년 대구매일신문사 정치부 기자
□ 1956년 진보당 창당준비위원(진량중학교 교사 사퇴)
   진보당 대통령후보 조봉암 경산군 선거사무장(본부장)
□ 1960년 사회대중당(대표 서상일) 경산군당위원장
    제5 대 민의원 의원 후보
□ 1967년 “반독재 재야민주세력단일후보 추진위원회” 활동
□1990년평민당(김대중총재)신민주연합당(준)통합출범 전당대회 임시의장
□ 1993년 경산민우회 창립 및 초대회장
□2006년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국무총리소속)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음
□민주수호 경북협의회 총무위원장 역임
□통일연대 고문
□(사) 4․9인혁재단(4․9인혁열사 계승사업회) 이사장(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구북구회장
□민주당 상임고문(현)
□남북평화나눔운동본부 고문(현)
□한국진보연대 중앙본부 고문(전)
□반일, 통일 민주화운동으로 7차 투옥 13년 복역
□세칭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 무기 선고(9년 복역)

(자료.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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