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찰, '통일운동' 여든 할머니도 압수수색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09.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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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민련 한기명(84) "지팡이 없인 다닐 수도 없는데..." / "국보법 위반" vs "공안탄압"


경찰이 고령의 통일운동가 자택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인륜도 무시한 마구잡이 압수수색"이라며 비판했다. 

대구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9월 12일 아침 8시부터 오전 11시까지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 혐의로 한기명(84.달서구 신당동) '조국통일범민족연합대구경북연합(범민련)' 상임의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한 의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사하고,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회 기록'과 '민가협 총회 보고서', '대구경북진보연대 회의록'을 비롯해 편지, 수첩, 일기, 책, 서류 등 100여 가지의 물품을 압수했다. 휴대폰은 압수해 기록을 복사한 뒤 같은 날 오후 5시쯤 돌려줬다.

한기명 '범민련대경연합' 상임의장(2012.9.13.대구지방경찰청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기명 '범민련대경연합' 상임의장(2012.9.13.대구지방경찰청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당시, 자택에 홀로 살던 한 의장은 본인 생일을 맞아 떡을 꺼내 아침상을 차리고, 오전 10시 2.28기념공원에서 열리는 '북녘 수해지원 동포돕기 모금운동'에 참석하기 위해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관리자가 '아래층에서 물이 샌다'며 찾아왔고, 한 의장은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다. 그러나, 그는 관리자가 아닌 보안수사대 경찰이었고 그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자 14명의 경찰이 집을 수색했다. 

13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 10여명의 경찰들이 들어서자 한 의장은 아침 식사와 외출 준비도 미루고 침대에 앉아 수색 과정을 지켜봤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 의장이 평소 먹던 고혈압과 중풍예방 약을 복용하자 한 경찰관이 '음독'을 의심해 추궁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5월에도 대구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해체된 청년운동단체 '길동무'의 전직 간부 3명 자택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으며, 지난 4년 동안 '함께하는대구청년회' 2명,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 대구경북지부' 3명, '민주노동자전국대회 대구경북지부' 2명,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대구본부' 전직 간부 1명, 한 의장을 포함해 모두 12명의 통일.노동.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압수수색하거나 소환조사했다.      

'범민련대경연합 한기명 의장 자택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2012.9.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범민련대경연합 한기명 의장 자택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2012.9.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기명 상임의장은 지난 1993년 범민련에 가입한 뒤 20년째 통일운동을 펼쳐온 통일운동단체의 원로다. 지난 1995년 11월 29일에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 돼 이듬해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3개월가량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한 의장은 "이제는 지팡이 없으면 다닐 수도 없고, 공개적인 활동만 하고 있는 내가 무슨 국가보안법 위반이냐"며 "경찰들이 연기를 하고 개인적인 편지까지 뒤져가며 압수수색하는 것을 보니 엉뚱한 곳에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또, "국보법은 사문화된 법률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명박 정권은 공안탄압을 위해 그 법률을 칼날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대선에서는 말로만 통일을 외치는 사람이 아닌 6.15선언과 10.4 선언을 계승할 수 있는 이가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대구경북진보연대는 9월 13일 오전 대구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권과 인륜도 무시한 마구잡이식 압수수색과 공안몰이를 반대한다"며 "공안당국과 검찰, 경찰은 진보진영에 대한 공안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여든넷의 어르신까지 국보법 굴레를 씌어 압수수색을 강행하는 것은 군사독재 정권시절에나 나오는 얘기"라며 "공안당국, 검찰, 경찰은 불충분한 기소 내용에도 정권 유지를 위해 국보법을 악용해 자유를 옭죄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석준 함께하는대구청년회 대표, 천기창 민권연대대경지부 대표, 김선우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2012.9.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석준 함께하는대구청년회 대표, 천기창 민권연대대경지부 대표, 김선우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2012.9.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석준 함께하는대구청년회 대표는 "생신 맞은 어르신 집에 단체로 들이닥쳐 수색을 하는 것은 양아치나 하는 짓"이라며 "공안당국은 상식도 예의도 없는 곳"이라고 비판했다. 천기창 대구경북민권연대 대표는 "통일운동이 어떻게 국가 보안을 위태롭게 한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김선우 대구경북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은 "MB는 끝나가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통일운동가를 압박했다"며 "비이성적인 색깔론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대구지방경찰청 보안수사과 한 경찰은 "범민련은 이적단체로 판정됐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적법 절차에 따라 '국보법 위반'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더 말 할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은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지난 1990년 11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됐다. 이곳에는 범민련을 비롯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해외 여러 정당과 단체, 각계 인사들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1997년 '연방제 통일 지지',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를 내세우고 있다는 이유로 범민련을 이적단체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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