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금력 앞에 움츠러드는 교수사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윤상 칼럼] 부끄럽지만 그래도 희망이 없지는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내가 과거에 쓴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필자도 40년가량 대학교수로 재직한 탓에 자연히 관심이 간다. 우선 간략히 경위를 요약해보자.

연구 부정 조사에 관한 국민대의 이상한 대응

의혹의 당사자는 2008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학위 논문을 포함한 몇 논문에 대해 표절 등 연구 부정 의혹이 제기되었다.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는 2021년 7월 예비조사에 착수하였으나, 박사학위 논문 검증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를 들어 본조사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대가 검증시효 제도를 이미 폐지했었다는 반론이 나오자 11월에 재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재조사위원회는 국민대 교수 5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조사위원 전체에서 외부인의 비율이 30% 이상이어야 한다”라는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어긋난다. 이후 8개월이나 시간을 끌다가 박사학위 논문이 연구 부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의혹이 가라앉지 않자 국민대 교수회가 대학 본부와는 별도로 다시 검증할 것인지를 검토하였고, 전체 교수가 투표한 결과 찬성이 38.5%에 그쳐 부결되었다.
 
사진 출처. KBS 뉴스 <국민대 교수회 "김 여사 논문 자체 검증 반대 61.5%">(2022.8.20)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 뉴스 <국민대 교수회 "김 여사 논문 자체 검증 반대 61.5%">(2022.8.20) 방송 캡처

국민대의 대응 가운데 필자는 교수회에 더 주목했었다. 대학 본부는 조직의 관리자로서 부실한 학사 운영의 실상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고 사립대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자의 눈 밖에 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교수회는 지성인의 집단이고 학교 운영에 직접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다를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도 부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경북대 교수사회도 다르지 않았다

국민대 사태를 보면서 필자가 경북대에서 재직하면서 겪었던 일이 떠 올랐다. 1980년대는 대학생들이 희생을 무릅쓰고 전두환 정권에 맞서던 시기였다. 1986년에는 각 대학의 교수들도 학생들의 저항에 힘을 실었다. 후임 대통령 선거 방식으로 소위 ‘체육관 선거’를 유지하기로 한 전두환 정권의 결정에 반대하여 직선제 개헌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교수들이 발표했다. 30대의 소장 교수였던 필자도 참여하여 소위 ‘서명교수’가 되었다.

어느 학교에서든 교수 총원에 비해 서명교수 비율은 높지 않았다. 당시는 서명교수가 되면 모든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서명교수를 응원하는 교수가 적지 않을 것으로 필자는 예상했었다.

그러나 서명교수가 정보기관과 학교 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자 불똥이 튈까 봐 서명교수를 슬슬 피하는 교수도 있었다. ‘서명에 참여하지 않는 게 교수의 양심’이라고 정신승리를 선언하는 교수도 있었다. 심지어 정권과 밀착하는 교수도 있었다. 필자는 대학교수가 학문만이 아니라 대의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가졌을 것이라고 기대했었지만 이후에는 기대를 접고 말았다.

경북대 교수회가 제정한 교수헌장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교수가 정부를 비판해도 크게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연구업적 평가가 엄격해지면서 자발적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는 교수가 많아졌다. 심지어 ‘논문 쓰느라 연구할 시간이 없다’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있었다.

이런 풍토를 염려한 경북대 교수회는 권력과 금력에 고개를 숙이지 말자고 다짐하는 교수헌장을 제정하기도 했다. 교수회는 2014년에 교수헌장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2년 후인 2016년에는 교수회와 대학 본부가 협력하여 학교 정문에서 가까운 교정에 교수헌장비를 세웠다. 교수헌장의 머리말 일부를 인용해보자.
 
경북대 교수헌장비 / 사진 출처. 김중락 경북대 교수 블로그(https://blog.naver.com/ktyhbgj/221371923955)
경북대 교수헌장비 / 사진 출처. 김중락 경북대 교수 블로그(https://blog.naver.com/ktyhbgj/221371923955)

<우리는 과거 국가권력이 양심의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과 학생들을 재갈 물리기 위해 대학을 탄압했던 쓰라린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대학은 어떤 형태로든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대학 담장을 넘어오는 것을 거부한다. 세상은 바뀌어 지금 대학은 시장만능주의, 경쟁지상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 위협은 교묘하고 은폐된 형태로 진리의 추구와 양심의 발로를 제한하고 있다. 세계화와 경쟁 담론이 지배하는 21세기에도 대학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교수는 어떠한 상황에도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수호하고 사회적 양심을 지키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 경북대 교수헌장>

마침 이 무렵은 경북대 교수들이 권력의 횡포를 실감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학내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총장 후보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임명을 미루는 바람에 2년 동안이나 총장 직무대리 체제로 지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헌장에 대한 공감이 다른 때보다는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희망이 없지 않다

다시 국민대 문제로 돌아가면, 국민대 교수회마저 제대로 된 검증을 포기하자 전국의 14개 교수단체로 구성된 범학계 국민검증단이 구성되었다. 2007년 제정된 과학기술부 훈령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기준으로 논문을 검증한 결과 “내용, 문장, 개념, 아이디어 등 모든 면에서 표절이 이뤄진, 수준 미달의 논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별도 검증 안건이 국민대 교수회에서 부결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38.5%의 교수가 찬성했다. 현실에서 정의와 원칙의 편에 서는 의인은 소수에 그치는 게 보통인데 그런 기준으로 볼 때 38.5%는 적지 않은 숫자이다. 범학계 국민검증단과 함께 국민대의 38.5% 교수는 바로 경북대 교수헌장이 기대하는 교수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김윤상 칼럼 121]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