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공동자산' : 헨리 조지의 위대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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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누구나 자기 몫으로 자기 삶을 보장할 수 있다


토지가치는 국민의 공동자산

이 칼럼의 원고 집필을 마무리하고 있는 오늘 9월 2일은 미국의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가  182년 전인 1839년에 출생한 날이다. 필자가 헨리 조지 연구를 시작한 지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올해 생일은 다른 해에 비해서 좀 특별하게 다가온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헨리 조지의 철학에 바탕을 둔 공약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의 대표작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1879)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요약해보자.

사회가 눈부시게 진보하는데도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은 토지사유제에 있다. 생산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토지소유자가 단지 토지를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생산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에서는 생산자에게 돌아갈 몫이 그만큼 줄어들고 부당한 빈부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토지는 국민 모두의 것이다. 그러나 이미 토지 사유화가 정착된 사회에서는 굳이 토지를 몰수할 필요는 없고 지대 즉 토지가치만 환수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매년 토지의 연간 임대가치를 ‘지대세’로 징수하면 된다.

헨리 조지의 토지 사상을 ‘토지가치는 국민의 공동자산이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국민 공동자산’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게 적절할까? 크게 보아 두 가지 용도가 있다. 하나는 지대세 수입을 정부 재정에 충당하고 그만큼 다른 조세를 줄이는 방안이다. 생산적 노력의 결과는 노력한 사람에게 주고 그렇지 않은 것은 세금으로 거두어 공익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진정한 시장경제에 어울리는 멋진 세제가 된다. 『진보와 빈곤』에서는 이런 방안을 제시했다.

『진보와 빈곤』(헨리 조지 원저 | 김윤상 옮김 | 비봉출판사 | 2016)
『진보와 빈곤』(헨리 조지 원저 | 김윤상 옮김 | 비봉출판사 | 2016)

국민 공동자산과 복지제도

다른 하나는 국민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방안이다. 국민 각자가 동등한 지분을 가지는 국민 공동자산의 처리법으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이렇게 하면 누구든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공동자산 중 자기 지분으로 자기 삶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복지, 시장 원리에 충실한 사회보장이 된다. 이런 제도에 대해서는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제도’라는 비판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국민 공동자산을 국민에게 나누어 주는 방안도 두 가지 방식으로 세분할 수 있다. 모든 국민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방식과 빈곤층에게만 지급하는 선별 방식이다. 여당 대선 예비후보 중에서 이재명, 추미애 두 후보가 기본소득 방식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여 ‘기본소득’(이재명) 또는 ‘사회적 배당금’(추미애)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또 선별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한 예로, 모든 사람이 국민 공동자산의 지분으로 자신의 보험료를 낸 것으로 간주하고 누구든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부닥치면 생계비를 지급하는 ‘생존권보험’을 설계할 수 있다. 생존권보험의 내용은 필자의 다른 칼럼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생존권보험: 상상의 나라 ‘율도국’의 복지제도” 2020/6/29 <평화뉴스> 게재. 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8168)

기본소득과 선별적 복지

기본소득 방식은, 국민 중 납세액보다 수령액이 많은 ‘순수혜자’의 비율이 90% 정도 되기 때문에 토지보유세 강화에 대한 조세저항을 무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선별 방식은 같은 재원으로 1인당 지급하는 금액이 훨씬 많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경제력 하위 20%를 복지 대상자로 선별한다면 급여액이 기본소득 금액의 최소한 5배는 될 수 있다. 기본소득 금액을 높이기 위해 토지보유세를 급격하게 인상한다면 지가가 폭락하여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같은 사태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

한편 선별 방식의 단점으로,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이 많이 들고 당사자에게 굴욕감을 준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이 지적은 기본소득 주장이 대두된 시기에는 타당했지만 오늘날엔 거의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이 글 끝에 추가 설명을 부기하였다.) 그렇다면 결국, 지급액이 적더라도 조세저항을 줄이기 위해 기본소득 방식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서 지급액이 충분한 선별 방식을 택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인이 단기적인 득표 전략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기본소득 방식이 더 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세대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손을 위해서 복지제도를 설계한다고 하면 기본소득 방식과 선별 방식 중 어느 쪽을 택할까? 후손이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후손이 불운하게 될 경우에도 충분한 생계비를 보장받도록 선별 방식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의문이 생긴다. 현 세대가 자신에게는 이익이 적지만 후손을 위해 필요한 정책에 동의할까? 인류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지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바로 지금, 기후 위기에 대응하여 여러 나라에서 미래 세대를 위한 탄소중립 정책을 약속하고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국민의 관심과 합의에 따라, 그리고 정치 지도자의 능력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헨리 조지와 복지제도

마지막으로, 국민 공동자산과 복지에 대한 헨리 조지의 생각을 요약해본다.

1. 토지 불로소득을 지대세로 환수하면 빈곤이 대폭 해소되고 따라서 복지 수요 자체가 줄어든다. 애초에 사람들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일이 줄어드는 것과 같다.

2, 그래도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빈곤한 국민은 생기기 마련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 공동자산을 재원으로 삼는 복지제도를 두는 것이 좋다. 헨리 조지의 육성을 인용해 보자.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인 토지에서 발생하는 기금을 활용하면 누구에게도 굴욕감을 주지 않는 가운데, 보호자를 잃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 또는 노년에 이르러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빈곤을 막아 줄 재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헨리 조지 연설문, "빈곤은 사회의 범죄"(The Crime of Poverty), 1885)

[추가 설명] 선별 비용과 굴욕감에 대해서

선별 비용과 굴욕감은 오늘날, 특히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문제가 안 된다. 첫째, 선별을 위한 행정비용은 별로 크지 않다. 개인별 소득, 부동산, 금융, 심지어 자동차 보유까지도 이미 정부가 전산 자료로 가지고 있고, 실무적으로도 과세와 국민(지역)건강보험료 책정에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추가 행정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선별이 가능하다.

둘째, 굴욕감 역시 문제가 안 된다. 요즘 현장의 복지 활동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복지 수급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만큼 복지 수급권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인식이 바뀐 것이다. 또 정부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료를 이용하면 당사자의 신청 없이도 또 당사자가 심사를 받는지도 모르게 선별 작업을 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철도 당국이 이미 발권 자료를 다 가지고 있으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승객은 차표 조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는 것과 같다.






[김윤상 칼럼 107]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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