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선거철, 이상한 선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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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국민 대표성 높이는 선거 개혁이 필요하다


선출직의 국민 대표성이 너무 부족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가 지금껏 겪어온 선거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선거철이 되면 오히려 우울해진다.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뽑아봤자 당선자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과 언론이 후보의 공약과 능력을 제시하고 검증하기보다는 혐오와 대결을 부추겨 판을 오염시킨다는 점이다.

국민 대표성 문제는 현행 선거방식의 두 가지 중대 결함에서 생긴다. 첫째로, 대통령이든 지역구 국회의원이든 한 사람만 당선되는 선거에서는 낙선자가 얻은 지지표는 사표(死票)가 되고 만다. 대통령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와 지방의회 선거도 그렇다. 성, 연령, 경제력, 세계관 등 어떤 기준으로도 선출된 의원과 국민의 구성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의회가 국민의 의사와 동떨어진 결정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국민은 선거 때만 잠시 나라의 주인일 뿐이라는 냉소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거벽보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거벽보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둘째로, 지지하는 후보와 표를 찍는 후보가 다른 경우가 흔히 생긴다. 예를 들어 갑, 을, 병 세 후보가 있고 갑은 당선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을과 병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을 상정해보자. 갑의 지지자가 꼭 갑에게 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병의 당선이 최악의 결과라고 여긴다면 갑이 아니라 을에게 표를 주는 ‘전략투표’를 하게 된다. 그래서 대표성이 더 악화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약이다

국민 대표성 부족이라는 현행 선거제도의 심각한 약점을 치료하는 명약이 있다. 정당별 의석수를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정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것이다. 사표가 생기지 않고 전략투표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또 양대 정당의 독식 구도가 깨지고 실질적 다당제가 정착된다. 우리나라도 지난번 총선에서 미흡하나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동원하는 바람에 그조차도 효과를 내지 못했다.

또 양대 정당 체제에서는 상대의 감표가 우리의 득표로 연결되기 때문에 상대방 헐뜯기라는 치사한 전략이 성행한다. 그러나 실질적 다당제에서는 설령 헐뜯기가 먹혀들더라도 그 표가 헐뜯은 쪽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선거철이 우울한 두 번째 이유인 ‘혐오와 대결을 부추겨 판을 오염’시키는 행태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일부에서는 지역구마다 복수의 당선자를 내는 중대선거구제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낙선자가 얻는 표는 사표가 된다는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득표율에 차이가 있는 복수 후보가 동일하게 당선되므로 표의 등가성을 해친다는 맹점도 있다.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지방자치와 조화를 이루려면 서울 중심, 전국 정당 중심의 현행 정당법도 개정하여 지역 정당과 소규모 정당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경향신문> 2019년 12월 28일자 6면(정치)...(사진 설명)문희상 국회의장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한 것에 반발하며 의장석을 에워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집단 항의를 뚫고 선거법 개정안 투표 시작을 알리고 있다.
<경향신문> 2019년 12월 28일자 6면(정치)...(사진 설명)문희상 국회의장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한 것에 반발하며 의장석을 에워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집단 항의를 뚫고 선거법 개정안 투표 시작을 알리고 있다.

선거의회 + 시민의회의 양원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정당은 나름의 조직 이기주의를 벗어날 수 없으며 후보들도 직업 정치인 지망자에 편중될 뿐 아니라 당선된 의원들은 재선을 위해 국민의 상식을 훼손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 문제는 국민 중 무작위 추첨으로 대표를 뽑아 의회를 구성하는 ‘시민의회’ 또는 ‘추첨의회’로 해결할 수 있다. 무작위 추첨의 우연한 편중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 의원의 수는 100명 이상으로 하고 주기적으로 의원 일부를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 예를 들어, 임기가 2년이라면 6개월마다 4분의 1씩 교체한다.

시민의회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일반 시민은 국가나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없고, 경험과 지식도 없고, 공무를 돌볼 시간도 없다는 3무론(三無論)이 핵심이다. 우리나라는 공론화의 경험이 적으므로 당장은 3무론이 어느 정도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기 마련이며, 우리 국민은 교육 수준이 높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독일처럼 학교와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politische Bildung, 정치교육)을 제도화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배심원 또는 참심원을 두는 국민참여 재판의 사례나 이미 몇 나라에서 시도하여 성과를 낸 시민의회의 선례도 참고가 될 것이다.

필자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선거의회와 시민의회를 같이 두는 양원제가 좋다고 본다. 소관 업무를 적절하게 나누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건강한 조합이 된다. 보통의 안건은 직업 정치인으로 구성되는 선거의회에서 처리하되 국민의 상식을 반영해야 하는 중요 안건, 선거의회에서 의견이 심히 엇갈리는 안건, 선거의회와 의원의 이해관계가 걸린 안건은 시민의회에서 다룬다. 또 선출직만이 아니라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임명직 고위 공무원도 국민 대표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인사청문회와 임명 동의 등을 시민의회에서 담당하면 국정에 국민의 상식을 더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의회의 대표성을 이렇게 높인다면 자연히 따라오는 의문이 있다. 단 한 사람만 당선되기 때문에 다량의 사표가 생길 수밖에 없는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주의 체제의 선진국 중 대통령제를 취하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필자는 대통령제를 아예 내각책임제로 바꾸기를 희망한다. 대표성은 높이고 선거판 오염은 줄이고 선거 비용도 절약하고 1석3조 아닌가?

 
 
 





[김윤상 칼럼 113]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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