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평준화 + 입학 추첨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윤상 칼럼] 입시 지옥과 교육 실패에서 벗어나는 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딸이 표절・대필 등 부정한 수단을 동원하여 논문을 게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윤석열 정권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스펙 논란을 배경으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그런 새 정부의 실세인 한동훈 장관의 ‘내로남불’에 많은 국민이 고개를 젓고 있다. 필자가 우리 사회문제의 해법을 모색할 때 자주 참고하는 상상의 나라 ‘율도국’에는 이런 일이 아예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율도국의 지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율도: 한국에서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내몰리고 특히 상류층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녀의 스펙을 쌓는 이유는 소위 ‘명문대’ 입시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이겠지요. 대입 준비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너무 안타깝고, 개인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기른다는 본래 목적을 크게 벗어난 한국의 교육도 걱정입니다.

필자: 평소에는 이렇게 강한 표현을 잘 안 쓰시더니,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좀 다르시군요.

율도: 아, 그랬나요? 부동산이나 교육 문제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웃음) 율도국은 학벌‧성별‧신분과 같은 특권에 의한 불평등이 없는 나라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유리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소득은 각자 생산에 기여한 정도에 의해서 정해집니다. 인간의 능력 격차가 크지 않으므로 율도국의 소득 불평등 정도는 한국처럼 심하지 않습니다. 생산 기여 능력을 높이고 싶은 국민을 지원하는 제도가 대학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상항에서도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제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꽤 있는데, 이들은 ‘대학 진학 자격시험’을 거쳐 자신이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지원하게 됩니다. 이 시험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격시험’이므로, 한국의 수능시험과 달리 점수나 등급을 매기지 않습니다. 합격자는 여러 곳에 지원할 수 있고 지원자가 정원을 초과하면 추첨으로 합격자를 정합니다.

필자: 한국과 사정이 상당히 다르군요. 그중에서도 추첨 선발은 아주 생소합니다.

율도: 성적순 선발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추첨 방식이 아주 이상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율도국에서는 대학 진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학생은 누구나 기본적인 수학능력을 갖춘 것으로 인정하므로 굳이 성적순으로 선발하여 소모적 경쟁을 부추길 이유가 없습니다. 또 대학 교육의 질이 평준화되어 있고 직종 간 소득 격차도 크지 않기 때문에, 특정 대학이나 특정 전공에 지원자가 쏠리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전체 진학 희망자와 입학 정원이 비슷한데다가, 혹 여러 지원 대학의 추첨에서 모두 탈락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정원에 여유가 있는 다른 대학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정원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도 하고 입학 후 대학 간 전학도 어렵지 않습니다.
 
<한겨레> 2022년 6월 10일자 9면(기획)
<한겨레> 2022년 6월 10일자 9면(기획)

필자: 부럽습니다. 추첨 방식에 대한 율도국민의 인식은 어떤가요?

율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대학 입시 외에도 추첨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채용 방식도 대학 입시와 거의 같습니다. 직종별로 ‘공직 자격시험’에 합격한 지원자 중 추첨으로 선발합니다. 그래서 공직 종사자의 국민 대표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격시험은 고등학교까지 정상적으로 다녔으면 대부분 합격합니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기업의 신입사원도 직무별 자격시험 합격자 중에서 추첨으로 채용합니다. 특정 업무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교육훈련은 채용 후 기관 내외의 교육기관에서 실시합니다. 정치 분야에서도 추첨을 활용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추첨으로 구성하는 의회가 있습니다. 율도국 의회는 선거로 선출된 대표로 구성되는 ‘선거의회’ 외에 일반 국민 중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사람들로 구성되는 ‘시민의회’가 있습니다. 두 의회가 적절하게 업무를 분담합니다. 시민의회는 국민 대표성이 높아 상식을 잘 반영하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도가 높습니다.

율도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율도국에 학벌주의와 소모적 입시 경쟁이 없는 주된 이유는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는 가운데 합격자를 추첨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율도국 방식에 대해서, 학생 선발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거나 경쟁이 교육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등의 반론이 예상된다. 헌법(제31조 제4항)에서 ‘대학의 자율성’ 보장을 명시하고 있지만, 입시 지옥과 교육 실패를 초래하는 대학 자율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경쟁 중에서 생산적 경쟁은 순기능이 있지만 소모적 경쟁은 개혁 대상일 뿐이다.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는 북유럽의 대학 교육 성과는 대학 서열이 뚜렷한 미국에 뒤지지 않으며, 국민 행복도는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대학 입시 관련 개혁안은 적지 않았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 서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대졸자 취업에서 학력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모든 국립대에 공동입학 및 공동학위제를 적용하는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안도 있었다. 서울대 폐지론도 있었다. 사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을 통해 ‘공영형 사립대’를 만들자는 안도 있었다. 국공립대학 입학 정원의 두 배 정도인 15만 명을 사립대를 포함한 각 대학에 추첨 등을 통해 공동입학시키자는 안도 있었다.

이런 여러 개혁안은 모두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심각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지만, 개혁의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현실론이 깔려 있기도 하다. 한동훈・조국 파동을 겪은 지금은 더 과감하고 신속한 개혁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을까? ‘대학 평준화 + 입학 추첨제’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개인도 살고 나라도 산다.

 
 
 





  [김윤상 칼럼 117]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