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존 롤스의 토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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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정의의 원칙을 토지제도에 적용해 보자면...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존 롤스

올해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의 탄생 100주년이다. 또한 대표작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의 출간 50주년이기도 하다. 롤스 연구의 권위자인 황경식 교수는 자신이 번역한 <정의론> 부록에서 롤스를 이렇게 소개한다. "정의라는 한 우물만을 팠던 철학자, 그러면서도 당대에 영미는 물론 유럽 대륙의 전역에, 그것도 철학만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계 전반에 큰 획을 그은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롤스는 가상적인 상황에서 주민이 합의를 통해 정의의 원칙을 도출한다고 상정하면서, 그 상황에 관한 몇 가지 가정을 두었다. 대표적인 가정이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다. 합의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는 자신의 개성과 처지를 모른다는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사자의 개별성이 사라지고 모두 동일한 사람처럼 판단하게 되므로 만장일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윤회사상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무지의 베일'보다는 '환생사회'로 설명하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다. 윤회사상에 의하면 사후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어떤 개성을 가질지 그리고 어떤 처지가 될지 모른다. '무지의 베일' 가정에 꼭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롤스의 방법론을 이렇게 표현해볼 수 있다. '환생사회에 다시 태어나기로 예정된 예비 인간들이 합의할 사회제도의 원칙을 모색한다.'

정의의 두 원칙: 평등한 자유 + 차등의 원칙

이를 통해 롤스는 정의의 원칙 두 가지를 도출한다. 제1원칙은 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원칙은 불평등이 불가피하다면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가운데 '최소 수혜자'(the least advantaged)에게 가장 유리해야 한다는 것으로,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라고도 불린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 사회제도를 모색한다면, 자신이 가장 취약한 처지가 될 경우에 대비하여 사회적 약자의 안전이 더 잘 보장되는 제도에 합의하게 된다는 것이 롤스의 예상이다.

(왼쪽)『정의론』(존 롤스 지음 | 황경식 옮김 | 이학사 | 2003) / 『존 롤스 정의론 -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원칙』(황경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
(왼쪽)『정의론』(존 롤스 지음 | 황경식 옮김 | 이학사 | 2003) / 『존 롤스 정의론 -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원칙』(황경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

롤스는 20세기 중반의 미국 사회를 경험하면서 <정의론>을 다듬었다. 당시의 미국은 경제공황을 극복하고 세계 제2차대전 승전국으로서 번영하는 나라였고, 계층별 빈부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불평등이라면 흑백 인종차별 문제가 특별히 주목받던 시기였다. 그러나 정의의 원칙은 언제, 어디에서나 타당한 원칙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모순과 불평등의 핵심이자 필자의 전공 분야인 토지문제에 롤스의 원칙을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될까?

기본적인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한다는 제1원칙에 따르면,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인 토지와 자연에 대해서는 당연히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롤스는 토지문제에 주목하지 않았다. 롤스가 예시한 기본적인 자유의 목록 가운데 동산(personal property)을 소유할 권리는 포함되어 있으나 토지와 자연에 대한 권리는 빠져 있다. 그러면 제2원칙으로 눈을 돌려보자.

토지는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

롤스는 제2원칙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선천적 자질은 "어떤 측면에서는 공동의 자산"이며 "자연에 의해 혜택을 받은 자는 그렇지 못한 자의 상태를 향상시킨다는 조건에서만 자신의 행운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Rawls, 1999: 87). 개인에게 체화된 선천적 자질이 공동의 자산이라면, 모두의 삶의 터전으로 천부된 토지와 자연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떤 측면에서는"이라는 수식어조차 당연히 필요 없다. 롤스의 정의에 따르면 토지와 자연은 우리 모두의 공동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의 사유를 인정하는 토지제도를 둔다면,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자의 상태를 향상시킨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가 팬데믹처럼 온 나라를 휩쓰는 우리나라의 토지사유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토지사유제가 "최소 수혜자에게 가장 유리"하기는커녕 오히려 빈부격차를 극심하게 조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토지사유제가 롤스의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최소 수혜자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 그 하나의 방안을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다. 중복을 피하여 내용을 간단하게만 요약하면 이렇다. 토지는 국민의 공동자산이므로 토지가치를 환수하여 모든 국민을 위해 사용하여야 한다.

* 본문에서 인용한 필자의 칼럼은 <국민 공동자산 : 헨리 조지의 위대한 발견>입니다.
2021년 9월 6일 <평화뉴스> 게재. 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8948

* 본문에서 인용한 롤스의 저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John Rawls (1999) A Theory of Justice, Rev. ed., Harvard University Press.






[김윤상 칼럼 108]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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