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인권 퇴행, 시민이 나서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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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주 칼럼]


기이한 장면을 보다

지난 토요일, 아침부터 실시간 사진과 영상이 올라왔다.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 난리가 난 것이었다. 대구시 공무원들과 대구 중구청 공무원 450여명이 대구시의 행정대집행을 하려고 하고 대구지방경찰청 소속 경찰들은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라며 공무원들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경찰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까지 벌이는 모습은 언론보도까지 되고 있었다. 이때 홍준표 시장이 나타나 대구경찰에 책임을 묻겠다며 "내 임기 동안은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대구시 공무원들이 대구퀴어축제를 막기 위해 행정대집행을 하자 경찰들이 막아섰다.(2023.6.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 공무원들이 대구퀴어축제를 막기 위해 행정대집행을 하자 경찰들이 막아섰다.(2023.6.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퀴어축제 장소에서 발언하는 홍준표 대구시장(2023.6.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퀴어축제 장소에서 발언하는 홍준표 대구시장(2023.6.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미 홍준표 시장은 SNS를 통해 “성소수자의 권익도 중요 하지만 성다수자의 권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시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퀴어축제는 안 했으면 한다”라고 자신의 인식을 드러낸바 있다.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다. 홍준표 시장의 말은 인권의 문제를 다수자와 소수자의 권리 충돌 문제로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될 때 모든 이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동성로의 상권이 어려워진 것은 단 하루 진행되는 퀴어문화축제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연이어 닥친 경제 불황과 동성로를 찾던 젊은이들이 대구를 떠나고 있는 문제, 남아 있는 사람들도 아예 일자리가 없거나 저임금 고강도의 노동현실 속에 놓여있는 것이 원인이다. 홍시장의 말대로라면 국어사전에도 없는 ‘성다수자’들은 1년 365일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닐 수 있다. 그런데 1년 중 단 하루 ‘자긍심의 퍼레이드’를 진행하는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것은 ‘절대 저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이야기하지 말고 없는 듯이 입 다물고 살아야 한다’고 협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구 인권 행정 어디까지 퇴행하나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벌어진 이 모습은 대구인권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민선 8기가 시작되고 대구시 동인청사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도록 바뀌었고 시청 앞에는 입간판이 세워졌다. ‘집회·시위(기자회견, 1인 시위 포함)는 시청사 부지 경계선 밖에서만 허용 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하러 가보면 시청 앞에 청원 경찰들이 도열해 있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를 ‘대구시 땅’이라며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회와 시위는 경계선 밖에서만 허용' 대구시청 앞 홍준표 시장 알림판(2022.7.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집회와 시위는 경계선 밖에서만 허용' 대구시청 앞 홍준표 시장 알림판(2022.7.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동인청사 앞 시위 통제선, 인도 밖으로 밀려난 1인 시위 시민(2022.7.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동인청사 앞 시위 통제선, 인도 밖으로 밀려난 1인 시위 시민(2022.7.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뿐만이 아니라 대구시는 인권행정의 핵심적 구조인 대구인권보장과 증진위원회(이하 인권위원회)를 없애버렸다. 17개 시도 중 인권위원회를 없앤 것은 대구뿐이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대구광역시 인권보장 및 인권증진위원회 폐지 철회 인권시민단체 대책위원회’ 결성하여 기자회견,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의 활동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대구시는 인권위원회가 하던 일은 공무원이 책임지고 하면 되고 필요하면 전문가 자문단을 꾸리면 된다고 했다.   

대구의 인권 증진, 시민들이 나서다

지난 화요일 대구의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대구시민 인권 대토론회’를 열어 대구인권의 현주소에 대해 토론했다. 여성, 노동,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성소수자, HIV감염인 인권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대구시민의 보편적인 인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고민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인권운동을 하면서 다른 영역의 현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던 내용을 확인하고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함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대구시민 인권대토론회(2023.6.20.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대구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대구시민 인권대토론회(2023.6.20.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대구인권교육센터)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수습기자

이제 대구의 인권활동가들은 더 많은 지역 인권의제를 드러내고 보편적인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권 대토론회 이후에는 교육 사업을 통해 인권행정의 현황과 다른 지역의 상황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대구시 인권실태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대구시 제2차 인권보장·증진 기본계획의 실행을 위해 활동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없어진 인권위원회를 대신하여 시민들이 시민인권기구를 구성하여 활동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시민인권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는 함께 지혜를 모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홍준표 시장은 행정이 인권을 탄압하고 경찰과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지만 대구시민들은 인권보장을 위해 갈 길을 간다.

 
 
 






 [남은주 칼럼 44]
 남은주 /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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