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와 '메디시티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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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의료산업화 속 건강양극화...'사회안전망'부터 갖춰라"

우리 사회에서 '사회안전망'이란 말들이 공론의 영역에서 의제로 떠오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외환위기로 온 나라에 스산한 칼바람이 불어 닥칠 무렵이었다. '부랑자'나 '행려자'란 말들이 '노숙자'로 대체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였다. 그 시절 노숙자 중의 상당수는 불과 얼마 전까지 정상적인 가정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노숙자 문제가 사회에 던지는 충격은 더 강했다.

사실 외환위기가 닥쳐오기 전까지 사회안전망이란 말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수십 년 간 군부독재정권이 유지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온통 '국가안보'라는 정언명령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복지'라는 이야기가 비집고 나올 틈이 전혀 없었다.  

군인들의 복지는 있었어도 국민의 복지는 없었던 캄캄한 시절이 수십 년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개인의 복지는 물론 건강문제까지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결해야 했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도록 강요받아 왔던 것이 우리 사회의 복지문화였다. 그러던 것이 외환위기와 함께 해체되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의료산업화...의료가 이윤과 성장의 도구?"

 하지만 국가부도 직전의 상태에서 정권을 넘겨받은 국민의 정부는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난 극복을 내세우면서 가장 절박했던 사회안전망을 위한 정부의 예산 지출을 소모적 경비로 간주해버린 것이다. 그나마 지금 수준의 사회안전망이라도 갖추게 된 것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민간차원의 사회연대기구의 활발한 활동과 여론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했던 '생산적 복지'와 이명박 정부의 '능동적 복지'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좌파정권 10년 동안 과도한 복지예산 지출로 사회양극화가 심화되었고, 경제성장률이 저하되었다"는 정부의 진단만큼은 현 정부의 반복되는 ‘오해’가 아니라, 믿기 어려운 정말 썰렁한 농담이다. 국민의 정부를 이어받은 참여정부는 "공공의료 30% 확충"이라는 선거공약을 휴지통에 처박아버리고, 의료를 이윤창출과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료산업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게 된다. 그 산업화 정책을 이명박 정부는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현 정부 인사들이 "좌파정권"이라 규정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투입한 예산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시늉정도에 불과했다. 사회양극화에 이어 건강양극화까지 고착된 것이 바로 참여정부 때의 일이다. 그 눈곱만큼의 예산마저도 이명박 정부는 낭비성 예산으로 보고 있는 모양이다. 당장 내년부터 저소득층의 최저생계를 위한 기초생활보장사업비를 비롯해서 장애인을 위한 예산이 대폭 줄어든다.

"경제위기...'사회안전망' 논의조차 없다"

  10월의 경제무대에서 주식과 환율! 두 주연배우가 펼치던 역동적인 활극의 1막이 끝이 났다. 11월부터 펼쳐질 2막의 내용이 어떠할 지 아무도 그 시나리오의 얼개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주식 한 주, 달러 한 푼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폭풍우를 쏟아 부을 검은 먹구름은 점점 더 시커멓게 짙어지고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정말 이번만큼은 "오해"였으면 좋을 정도로 당장 한 치 앞의 내일이 불안한 것이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외환위기 때 보다 더 어려운"  경제위기 상황에서 10년 전과 달리 사회안전망에 대한 논의가 아예 자취를 감추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야당은 지리멸렬한 상태에 놓여있고, 시민단체들마저 정치지형이 바뀌면서 자신들의 조직을 추스르기에도 허겁지겁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0월 15일 경, 대구시는 대구경북병원협회와 공동으로 '의료산업 육성'과 '대구경북 병원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동브랜드를 확정 발표했다. 이름 하여 <대한민국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

"메디시티...의료관광사업이 대구의 성장동력?"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에 감동할 시민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지만, 이 사업에 공감하고 적극 동참할 의사들은 또 얼마나 될 지도 의문이다. 경제위기가 주식과 환율이 펼치는 연극이 아니라 점점 현실이 되어가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 여행관광업이라는데, 이런 형편에 '의료관광사업'으로 대구의 성장동력을 이끌겠다는 대구시의 생뚱맞은 발상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코앞에 있는 일본 정기노선도 확보치 못하고 있는 대구공항을 끼고 도대체 어떤 외국인환자를 유치하겠다는 건지 상식선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도 지역사회 어느 한 켠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들어보기 어렵다.

 한국은 OECD 가입 29개국 중에서 결핵 발생률에 있어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늘어난 결핵환자의 발생추이가 10년이 되도록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결핵환자가 늘어난 것은 급격하게 늘어난 노숙자와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자살과 서울 고시촌 방화살인 사건과 같은 증오범죄가 반복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열악한 사회안전망이 낳은 괴물이다. 경제위기가 점점 현실화될 때 정부는 물론 지방정부가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역사의 교훈을 바로 새기지 못한 것을...그나마 있는 역사마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첨삭가감할 수 있는 나라인 것을...


[ 김진국 칼럼 18]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 신경과 전문의 /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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