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7년 체제의 화룡점점
5년 넘게 지루하게 이어지던 <한미 FTA> 논쟁은 2011년 11월 22일, 한나라당의 쿠데타와 같은 폭거로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한나라당이 과반수가 훌쩍 넘는 의석수를 가진 탓에 야당이 힘으로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사저지”를 외치던 민주당의 목소리에 처음부터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던 것은 <한미 FTA> 협상이 처음 시작된 것이 참여정부 시절의 일이었고, 결사저지를 외치던 야당 의원 상당수가 그 당시에는 <한미 FTA>가 안되면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떠들어대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이 그것도 민주당이 <한미 FTA> 비준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자체가 무척이나 순진한 발상이었을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정부에서 완성”한다는 한나라당의 홍보 문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조차도 그 사실 하나만큼은 쉽게 반박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한미 FTA>는 다르다”는 변명이 한없이 구차해 보이는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의 길을 터지 않았더라면, 당시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뚫어내지 못했다면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의 <한미 FTA> 비준이 이렇게 쉽게, 참담하리만치 허망하게 성공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통상협상조차 날치기 폭거를 저지른 후 민주당 의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밤을 새워가며 의원총회를 열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과연 얼마나 침통했을까? 아니 억지로 침통한 표정을 지어가며 밤을 지새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나로 똘똘 뭉쳐도 감당하기 힘든 싸움에서 적전분열을 일삼던 그들의 얼굴에 깃든 수심은 나라의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정치운명에 대한 걱정 때문인가? 국회의 상황을 보면 <한미 FTA> 협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단지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총선을 코앞에 두고 국민들의 비난은 물론 낙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날치기를 저지른 이유는 오히려 어정쩡한 민주당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다. 한나라당 출신의 당대표와 경제관료 출신의 원내대표... 그들 쌍두마차가 이끄는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다툰다면 그것은 자리싸움이요, 지역싸움이지 정책과 이념의 싸움이 될 수가 없다.
한나라당이 ‘성장’을 이야기할 때 민주당도 ‘성장’을 이야기했고, 한나라당이 ‘세계화’를 외칠 때 민주당은 ‘글로발’을 외쳤고, 민주당이 복지를 앞세울 때 한나라당도 복지를 들이밀었다. 그 틈새에 있던 진보정당은 서로 싸움박질을 해대다가 괴멸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작은 연못”,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 붕어 두 마리가 서로 싸우다 한 마리가 죽어 물위에 떠오르고, 그 놈 살이 썩어 들어가 결국 그 연못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다는...그 노래가 진보정당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노래가 될 줄 그 누가 짐작이라도 했으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청승을 떨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이 한없이 가증스럽고, 분기를 삭이지 못하는 민노당 의원들의 눈빛은 그저 그냥 처량해 보인다.
날치기를 진두지휘한 국회부의장이 표결을 서둘러 마친 뒤 “두려울 것이 없다”며 내지른 당당한 목소리는 오히려 두렵다는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한 나라의 경제주권과 사법주권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 사회의 1%가 더 이상 두려워할 그 무엇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1997년 외환위기로 시작된 우리 사회의 97년 체제는 <한미 FTA> 비준 동의로 10여 년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한 셈이 되었다. 자본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은 이제 아득한 전설 속의 이야기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미 FTA>가 비준되고 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정말 과장되었거나 괴담수준의 유언비어일지도 모른다. 날치기 폭거가 일어난 그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도 사람들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고, 세상 풍경이 달라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을바람이 스산해지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이 좀 더 두둑해진 것 말고는...고개 숙인 채 늦가을 추운 귀가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한미 FTA>를 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벼랑 끝에 몰려 있는데. 이 보다 더 못한 세상이 또 있을까? <한미 FTA>로 나아질 것 하나 없고, 더 못해질 것도 없는 사람들의 절망에 찌든 낙관주의가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있다.
2. 97년 체제의 지속성
한 때 안보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를 짓누르던 시절이 있었다. 안보만이 살길이라는 짧은 구호를 암송하며 스스로를 세뇌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 거리의 풍경은 칙칙했고,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웠고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저항하는 목소리에는 늘 선혈이 낭자한 보복이 잇따랐다. 87년 벽두에 한 청년의 불쌍한 죽음과 안보를 늘 입에 달고 살던 부도덕한 권력의 잔인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세상이 바뀌게 되었다. 거리마다 마을마다 사람들의 가슴속에까지 철옹성처럼 굳게 버티고 서 있던 바리케이트가 철거되고, 거리에 군화발들이 저벅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보통사람의 시대”가 찾아왔고, 그리고 “세계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10년의 끝은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칼날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고, 정부와 언론은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고 떠들어댔다. 그런 정부는 세계은행의 경제신탁통치를 받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 공교롭게도 그 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여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며 환호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고, 그 정부를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참여정부”가 잇게 된다.
. “시장경제”, “시장자율”, “시장개방”, “경쟁력강화”, “공기업선진화”,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구조조정”, “규제철폐”, “기업하기 좋은 도시”, “투자하기 좋은 환경”, “동북아금융허브”....
이 말들, 우리에게 익숙한 말,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이 말들은 국민이 주인이 되고, 국민의 참여가 있는 10년 동안 쏟아져 나온 말들이다. 97년, 대도시 역사마다 노숙자들이 뒹굴던 시절로부터 10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단군 왕검이 이 나라를 창제하신 이래로 이 보다 더 화려하고 풍요로운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스마트하게 손에 손에 기십만원이 넘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길거리를 가득 메운 승용차는 10여 년 전보다 훨씬 더 덩치가 커졌다. 물론 기름값은 그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는데도. 도시마다 눈부신 외양의 아파트가 하늘 놓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파트 평수를 넓히기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좁고 헌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재건축을 하여 평수를 넓히려 발버둥 친다. 사람 사는 집이 10년도 채 안 쓰고 버리고 떠나는 소비재로 전락한 것도 아마 단군 이래로 처음일 것이다. 내 자식은 내 살던 집보다 더 큰 아파트에 살게 하고, 벤츠는 레저용으로 쓰고 도로체증을 걱정할 일 없는 비행기로 출퇴근하길 꿈꾸며 교육비를 쏟아 붓는다. 그런데 과연 이런 무한팽창이 언제까지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내 자식이 “수능 올(all) 1등급”을 받고, “In Seoul”만 하면, 의과대학에만 입학하면, 로스쿨에만 입학하게 되면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경제영토’만 넓히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경제영토에 둘러쳐진 바리케이트를 모두 철거했다. 우리가 철거하면 저쪽도 철거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먼저 철거하면 양심의 압박을 받아 저쪽도 선뜻 철거해줄 것이라면서... 그리하여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중에서 제일 먼저 자신있게 용의 눈을 그려 넣었다(畵龍點睛).
내년 봄, 눈이 생긴 Korea Dragon은 승천을 하게 될 것이다. 입에 여의주 대신 아메리칸 드림을 물고 천둥 벼락을 치면서...용은 춘분에 하늘로 올랐다가 추분이면 내려와 깊은 연못 속에 잠기는, 전설 속의 동물이다. 봄에 하늘로 오른 Korea Dragon이 가을에 지상으로 다시 내려올 때 그가 다시 승천할 날을 기다리며 숨 쉬며 살아야 할 연못은 어떤 상태일까? 혹 썩은 물에서 살점이 썩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이무기꼴이 될 가능성은 없겠는가?
노력만 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곳, 그런 기회와 가능성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 그곳이 미국이라는 아주 오래된 신화가 있고 그런 신화를 믿으면서 온 지구촌 사람이 꾸는 꿈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런데 그런 기회와 가능성의 땅에서 지금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비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온 지구촌 사람이 선망하는 기회와 가능성의 땅이 짊어지고 있는 빚은 상식을 가진 인간의 계산능력의 범위를 넘어 서 있다. 2020 년이면 23조 달라! 우리 돈으로 ‘경’이다. 경이 돈인가? 말인가? 술인가? 그 체제가 유지된다면 그야말로 신화 그 자체다. 그것도 아주 추악한 꼼수로 만든 신화. 신화를 만들기 위한 꼼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아메리칸 나이트매어(Night Mare)로 바뀐 지는 오래 되었다. 우리는 지금 악몽을 꾸기 위해 잠을 청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국민들에게 악몽에 시달릴 깊은 잠을 강요하고 있다.
3. 97년 체제의 종말
돈이 돈을 벌고, 욕망이 거품을 키우고, 그 거품에 기대어 또 돈을 버는 세상. 이것이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로 일극화된 세계의 모습이다. 노름판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가 키운 거품은 온 세상을 오색빛깔로 화려하게 치장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한번 부는 북풍한설에 나가떨어지는 빨간 단풍잎과 같은 것이었음이 지금 온 천하에 증명되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대서양을 돌아 유럽을 휩쓸고 있다.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7%를 넘어섰다는 발표가 있던 날(2011.11.10) 세계 증시는 폭락을 했다고 했다. 증시 폭락을 알리는 외신의 수사(修辭)들은 하나같이 섬뜩한 표현뿐이었다. "Sink(침몰)", "Nosedive(급강하)”, “Meltdown(녹아내림)”.... 그 날 국내 주식시장도 하루 사이에 54조원이 증발했다. 그 엄청난 돈, 4대강을 두 번 파뒤집고도 남는 그 많은 돈이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와 누구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 갔는가? 아무도 모른다. 들리는 풍문으로는 개미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전대에서 흘러나온 돈이라고들 한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곧 1,000조 원을 넘어설 모양이고, 민간기업과 정부의 부채는 3천조 원이 넘는다. 빚으로 지탱하는 살림이 언제까지 버티어 낼 수 있을까? 생산 없는 생산으로 만들어낸 물거품과도 같은 자산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한국 경제의 Fundmental이 튼튼하므로”, “복지 포퓰리즘만 경계하면” 별일 없을 것이라 자신 있게 떠벌린다. "좌파만 적출" 해내면 영일대군이 떡 버티고 있으므로 만사형통이라 얼버무린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 눈빛을 보면 겁에 잔뜩 질려 있는 몰골이다.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을 받은 인간들은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을 남겨놓았기 때문에 제우스의 형벌을 면하고 오늘까지 생명줄을 이어 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가 결코 전해주지 않았던 불,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끌 수 없는 불까지 손에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그 불로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든다. 원자력 신화다. 후쿠시마에서 타오른 불, 인간의 힘으로는 끌 수 없는 그 불이 타오르면서 지금 인류는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불에 태워버릴 처지에 놓여있다. 일본 열도의 반이 불모의 땅을 넘어 사람이 발조차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불이 품어내는 냄새도 색도 모양도 없는 죽음의 재가 하늘과 땅, 바다로 소리없이 스며들어가고 있다. 하늘과 바다는 경계가 없고 바리케이트도 없다. 지금 한반도의 동서남북은 수십 기의 핵발전소에 포위되어 있다. 한반도 동해안의 핵발전소에서 남으로는 일본, 서쪽으로는 중국, 북쪽 러시아까지...체르노빌, 후쿠시마... 그 다음은 어디일까? 이런 형편임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 르네상스를 열겠다고 했다. 원전기술을 수출까지 하겠다고 했다. 한국의 원전기술은 일본과 달라 안전하다며...나랏님의 그 위대한 뜻을 받들어 경북 도지사는 경북 동해안에 원전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과연 제 정신으로 한 소리인가? 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도 남음직한 사람들에게 대구 경북의 유권자들은 선거 때마다 몰표를 쏟아 부었다.
광범위한 방사능오염에 기상이변까지...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염세주의나 종말론에 빠질 것 까지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식량위기가 점점 더 절박한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치솟고 있는 식료품 가ㅤㅈㅕㄱ, 그리고 높아만 가는 엥겔지수가 과연 일시적 현상일까? 그런데 한나라당이 <한미 FTA>를 비준함으로써 농업시장까지 다 열어 젖혀 버렸다.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피할 수 없는 바로 눈앞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식량자급율이 25%가 채 안 되는 나라가 배짱 좋게 농업시장까지 다 열어버린 것이다. "한국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아무 생각도 정책도 없던 김영삼 대통령은 어느 날 느닷없이 “세계화(당시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Segehwa로 표기했다. 국어의 세계화를 위한다면서)”, “국제화”를 부르짖으며 금융시장을 활짝 열어젖혔다. 결과는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는커녕 국가부도 일보직전 상태의 외환위기였다. 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문을 닫았다. <한미 FTA>도 노무현 대통령이 어느 날 느닷없이 시작한 것이었다.
출출하면 시장에 나가 오뎅을 사먹고, 국밥을 말아먹으면서 한 번씩 서민 흉내를 내보고, 배추가 비싸면 양배추를 사먹으면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신세계에서 내 놓을 수 있는 <한미 FTA>사전 대비란 게 무엇일까? 굶주린 자들이 있으면 국민성금으로 해결하면 되고, 쌀이 없으면 라면을 사먹으면 된다는, 갈라져서 더 앙칼지게 들리는 목소리가 라디오 방송에서 짜증스레 흘러나올 것이다.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은 쌓이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다. 새로운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Up grade'라 포장된 새 상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시장의 돈은 한 곳으로만 쏠려가고 시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호주머니에는 먼지만 소복 쌓여 있다. 멀쩡하게 잘도 작동하는 휴대폰을 버리고 ’Up grade'된 스마트폰을 쓰면 행복지수는 얼마나 더 ‘Up grade'되는가?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공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지는가?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도 입시지옥이란 말은 있었으나 성적으로 고민하던 아들이 어미를 칼로 찔러 죽이는 일만은 결코 없었다.
외환위기로 시작된 우리 사회의 97년 체제는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신용없는 신용카드와 허공에 떠 있는 아파트가 지탱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신용불량자와 범죄자, 그리고 도시의 유랑민을 만들어내던 97년 체제가 시나브로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경제영토를 넓혀 새로운 소비시장을 찾아낸다 한들 대다수 사람들의 구매력은 이미 소진된 상태...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지구촌의 문제다. 우리 사회의 1%가 <한미 FTA> 비준에 목을 매는 이유는 97년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먼저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낡은 것은 이미 낡을 만큼 충분히 낡았으나, 그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는데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낡은 것을 재탕, 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4. 분노를 넘어....
한국 사회의 87년 체제는 젊은 학생들의 용기와 분노가 이루어낸 성과물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정치적 주체도, 경제적 주체도 아니었다.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리하여 항쟁의 주역들이 떠나고 난 빈 자리에서 전리품은 기성 정치인들이 좁은 영토를 동서로 양분하여 골고루 나눠가졌다. 세월이 흐른 뒤 항쟁의 주역들이 정치 주체로 돌아오긴 하였으나 그들이 젊은 시절에 가졌던 용기와 분노는 자신의 취향과 출신지역에 따라 여야로 고루 나뉘어져 벼슬로 보상받았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관료로서 보여 준 그들의 처신은 기성 정치인들의 못된 행태보다 더 하면 더했지 하나도 나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87년 체제가 수립된 이후 오로지 ‘성장만능’, ‘시장만능’, ‘개방만능’ 그 한 방향으로만 치달아 왔다. 그 결과 이 나라의 권력체계는 시장을 농단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자본이 움켜쥐고 언론권력과 법조권력이 그들을 호위하는 형태로 바뀌어 버렸다. 정치권력은 그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있고... 정치권력의 교체가 있긴 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전 권력의 실책에 따른 국민들의 분노에 기댄 것에 불과했다.
다시 분노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젊은 세대의 용기가 물대포를 뚫어내고 있다. 하여 수명 다해가는 정치권력이 기우뚱하고 있다. 기우뚱 넘어지고 있는 정치권력을 대체하려는 정치 주체들의 이합집산과 발걸음들도 분주하다. 하지만 소란스런 가운데 중요한 그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 심판을 결의하고 결의를 다지는 아우성은 천지를 뒤흔들고 있는데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전망 없이 상대의 실책에 따른 공수교대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0년 간 뼈저리게 체험해왔다. 그래서 한 켠에서는 “이제 시민들이, 유권자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소리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난 20년 간 수도 없이 자칭 ‘운동 지도자’들이 습관적으로 내뱉던 말들이다.
분노에 편승한 정치는 복수의 감정을 달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래의 전망을 내세우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복수의 감정조차 제대로 달래지 못했다. 우리 현대사에서 수많은 실정과 학정의 책임자들이 단 한 번도 제대로 단죄된 적이 있었던가? 그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국민 위에 군림한 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그래서 분노는 필요하고, 실정과 학정에 대한 단호한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분노에만 의존한 정치는 당대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참여정부의 실정에 분노한 민심은 이명박 정부를 선택함으로써 참여정부를 심판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전망 없는 분노의 선택으로, 오로지 당대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선택으로 최대의 피해를 입은 계층은 누구인가? 가장 학대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투표권이 없는 어린 학생들이다. 어른들의 정치로 정작 아무런 선택권도 없던 어린 학생들만 사지로, 지옥으로 떼밀려 들어 가버렸다. <한미 FTA>로 경제 주권을 잃게 될 때 먼 훗날 그 최대의 피해자는 누가 될 것인가? 선택권도 발언권도 없는 어린 학생들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반도에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다면 당연히 한반도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어린 학생들이 제일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의 가치는 미래를 지향하는데 있다. 지금의 분노가 이성으로 지성으로 다듬어져 집단화된다면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은 반드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 또한 낡은 생각들이다. "백마 탄 초인"같은 영웅이 홀연히 등장한 적도 있었으나 그의 손에 새로운 것은 들려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그는 스스로 고백하기도 했다. "구시대의 막내"라고...
우리는 이미 가능성을 보았다. 서울, 경기의 교육감 선거에서, 서울의 재보궐 선거에서... 집단 지성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를... 사람이 이념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건전한 상식과 이성, 지성이 집단화될 때 새로운 이념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이념은 당연히 미래의 가치를 지향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만의 퍼포먼스로 유지되어 온 한국정치. 이제 그 시나리오는 낡을 대로 낡았고, 소재는 벌써 고갈된 지 오래다. 나의 주장이, 너의 외침, 우리의 비명이 정치다. 그것도 아주 새로운...
[김진국 칼럼 33]
김진국 / 신경과 전문의. <우리 시대의 몸, 삶, 죽음>, <기억과 상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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