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 가능성 안보여...."
이 말은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라 한나라당 지지자들로 구성된 자칭 "중도보수 원로"들이 한 말이다. 그리고 보수성향의 원로들은 MB 정부의 비판수준을 넘어 중도보수 가치구현을 위한 시민정치운동까지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보수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정당 출신의 정치인이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정당이 의회권력까지 장악하고 있는 마당에 보수인사들이 새로운 정치운동을 하겠다며 움직이는 이유는 현 정권의 무모한 일방독주가 계속된다면 보수정권의 연임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연대는 절박한 선택
하지만 보수원로들의 움직임이 그다지 절박한 것 같지도 않고, 정부여당에서 이들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둘 것 같지도 않다. 현재 앞뒤 돌아보지 않고 쾌속질주를 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힘은 사실 권력내부의 세련된 통치력이나 국정철학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무기력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 촉발되면서 현 정권의 유일한 견제세력은 한나라당 내부에 있음이 다시 확인되었고, 나머지 야당들은 존재감마저 사라져 버린 상태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무슨 짓을 하건 전혀 흔들림 없는 대구경북, 그리고 더 넓게는 영남의 표심이 있는 한, 서울표만 확고하게 다져 놓으면 정권을 잃을 가능성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까지 한 몫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뒤를 돌아보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정부여당의 독선과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선거에서 표로 심판하는 길 밖에 없다. "투표장의 민주주의, 국회의사당과 지방의회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급진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Pressian> 2009.12.22 ‘쪽수 대연합론자의 자기도취’)도 있으나 '급진적 민주주의'라는 개념도 불투명하거니와, MB정권 초기, '투표장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촛불항쟁이 처참한 패배로 귀결된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다면 이런 주장을 함부로 펼칠 수는 없다. 결국은 선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지금의 사회 분위기로 봐서는 다가오는 6월의 선거가 지방선거이긴 하지만, MB 정권에 대한 심판 또는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지게 될 거란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정치지형은 중앙정부와 의회 물론 지방정부, 지방의회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에 가깝게 독식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의 언론 환경은 최소한의 균형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연대, 연합은 "사안별로 어쩌구저쩌구..." 할 한가로운 논쟁이 아니라, 당연하면서도 절박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연대, 연합 논쟁이 전국 각 지역에서 두루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해부터 대구 지역에서도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와 관련된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됐나? 됐다!” 식의 경상도 특유의 각론없는 통 큰 합의만 요란할 뿐 눈에 띄는 성과는 잘 보이질 않는다.
국공합작과 대동사상
이 쯤에서 우리는 중국의 근대화과정에서 있었던 '국공합작"의 사례를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해혁명으로 이룬 진보세력의 성과물들이 원세개에 의해 훼손될 조짐을 보이자 손문의 국민당과 모택동 계열의 공산당이 손을 잡는다(1차 국공합작). 일본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탈로 중국은 이미 반식민지 상태에 놓여있는 상황이었는데 권력을 틀어 쥔 원세개는 수구반동의 모략을 획책하고 있었다. 1차 국공합작 주역들은 이런 중국의 절박한 현실을 빌미로 “묻지마 연합”을 한 것이 아니라, 손문의 삼민주의(三民主義)에 대해 공산계열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손문의 삼민주의 중 민족주의는 청조(淸朝)를 변방의 오랑캐 나라로 보는 한족(漢族)의 배타적 중화사상(中華思想)을 반영한 것이고, 민권주의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사상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공산당계열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민생주의에서 공동의 지향점을 찾았던 것이다. 손문의 민생주의는 유럽의 사회주의를 보고 복지제도와 사회 제반영역에서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것인데 그 뿌리는 중국의 고대사회 때부터 내려오는 대동사상(大同思想, 아래 별첨)에 있다. 이 대동사상은 공자와 맹자를 필두로 한 유가(儒家)의 이상향(Utopia)이기도 하고,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법과 제도로 완성된 대동사상이 바로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한 각종 복지제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대동사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좌파 또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나라는 아마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손문은 이 민생주의를 매개로 공산 계열의 연소(聯蘇), 용공(容共), 노동원조(勞農援助)를 수용하는 포용력을 보였고, 모택동 계열의 공산당은 조직유지에도 급급한 소수세력이면서도 대의를 선택하는 결단력을 보여줌으로써 국공합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비판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 보여야
지금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연대, 연합 논의가 "됐나? 됐다!"에서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이유는 정부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독식구조를 깨야한다는 당위에만 합의되었을 뿐, 그 다음 각 정파가 지향하는 정책이나 전망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가 없기 때문에 논의는 분분해도 시민 나아가 유권자들의 시선은 전혀 끌지도 못한 채 헛바퀴만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강부자 정권의 학정으로 말미암은 민생문제에 대해, 나아가 지역사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에 대해 각 정파가 해결책과 대안을 내놓고 거기에서 공통점을 찾아가는 방식이어야 실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연대가 가능할 것이며, 시민들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견제와 심판의 논리를 뛰어넘는, 그 다음의 전망을 시민들에게 제시하면서 공동의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 전망에는 당연히 미래세대를 배려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MB 정권의 출범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계층은 바로 학생들이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최소 대학 2년생까지 MB 정권 출범 당시 그들은 투표권이 없었다.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어른들이 선택해놓은 결과로 말미암아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 것... 이거야말로 부조리의 극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조리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있어야 한다.
반환점을 지나가는 “MB 정부의 가능성이 안 보이”면 야당과 시민단체까지 덩달아 가능성이 안 보인다고 판에 박힌 비판만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국민과 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면 더더욱 절실한 과제 아니겠는가. 정책도 지향점도 없이 추진되는 연대논의는 접착성있는 화학적 연대가 아니라 서로 안 맞는 기계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꼴에 불과하다. 그런 기계적 결합은 못 하나만 빠져도 와르르 무너진다. 연대를 위한 논의 테이블에 정책과 전망을 올려놓으란 이야기다.
[김진국 칼럼 30]
김진국 / 의사. 신경과 전문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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