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을 막아낼 권력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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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저항은 우직하게 소걸음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축년 정초에 지금 희망에 들떠 웃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절망과 공포에 찌들어 떨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타종행사를 생중계한 KBS 화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KBS는 전 세계 어느 방송국도 따라하기 힘든 KBS만이 가진 “방송테크닉”을 발휘하여 생중계 현장을 절묘하게 각색된 드라마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그러나 KBS의 탁월한 “방송테크닉”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웃고 있는 서울시장의 얼굴 한켠에 드리워진 두려움의 그늘만큼은 지우질 못했던 것 같다.

 기축년 첫 날이 시작되면서 온 국민들이 안방에서 두 눈으로, 두 귀로 분명하게 확인 한 것은 고무풍선과 촛불로 중무장(?)한 시민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권력의 초라한 몰골이었다. 타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 함성과 야유는 권력자와 그 주변의 인물들에게는 공포와 절망의 소리였겠지만, 온 국민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염원이 담뿍 담긴 희망의 아우성이었다.

지금 청와대 지휘아래 여당과 국회사무처, 그리고 경찰이 펼치고 있는 합동작전을 경제를 살리기 위한 집권세력의 충정이라 받아주고 이해할 국민들은 아마 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전은 고무풍선과 촛불에 포위된 권력의 퇴로를 열어주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고무풍선이 터지면서 토해내는, 깜찍하고도 앙증맞은 그 폭음에 질겁을 하는, 이런 허약한 권력이 내지르는 엄포에 주눅들 국민들이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이며, 그런 배포로 살려낼 경제란 것이 도대체 어떤 경제일까?

 기축년 첫날이 시작되면서부터 국민들의 저항은 풍류와 신명이 그리고 해학까지 곁들여져 물처럼 흘러내려가고 있다. 막히면 돌아가고, 높으면 아래로 흘러내려가고, 조그마한 틈새만 보여도 스미어 들어가면서 권력의 중심부로 한걸음 한걸음 우직하게 소걸음으로 흘러내려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법’이다. 법(法)이란 바로 물(氵)이 흘러가는(去) 길을 말하는 것이니까.

 지금 권력이 의탁하고 있는 법은 법이 아니다. 옛 말에 기껏 법에 의지하여 권력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 폭정(託法而治 謂之暴)이라 했다. 온 지구촌을 뒤덮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어떤 경계(警戒)나 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근거도 없는 낙관론만 앵무새처럼 떠들어대고 있는 것은 ‘경제살리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학정일 뿐이다(不戒致期 謂之虐).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풍선과 촛불을 들었다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잡아가두고, 심지어 마스크만 착용해도 처벌하겠다는 발상은 도적질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不敎而誅 謂之賊). 힘이 있다고 해서 엄연히 법률로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남의 자리를 제마음대로 빼앗아 대는 것은 치졸하게 졸라대는 것(以身勝人 謂之責)이라 했다. 이는 한시외전에 나오는 말로 권좌에 있으면서 이 네 가지를 골고루, 참말로 가지가지! 다 실천한 군주의 운명은 어찌될까? 아마 그리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이 엄동의 불경기에 떨고 있는 사람은 국민들이 아니라 한 줌도 안되는 바로 ‘그들’이다. 퇴로를 열기 위한 그들의 발버둥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촛불의 늪에 깊숙이 빠져있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물처럼 그리 흘러가면 된다. 가다 막히면 쉬어가고, 벽에 부닥치면 손뼉치고 콧노래 부르면서 돌아가고 소걸음으로 쉬엄쉬엄 가면된다. 그래서 먼길을 돌아가더라도 결국에는 서로 만나 강이 되고 바다가 되면 된다. 물길이 흘러가는 길, 그 물길을 막아낼 권력자는 없다.

  유모차를 보면 화들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고, 초등학생들이 두려워 초등학교 앞에 경찰을 진치게 만들고, 고무풍선을 보고서 경기하듯 뒤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한 나라를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절망스럽긴 하다. 그러나 원래 희망은 절망보다 더디 찾아오는 법. "하하하..." 크게 한번 웃어주고 기축년 또 한해를 물 흐르듯이 그렇게 쉬엄쉬엄 가보자. 시간은 언제나 국민들 편이었다. 이제 달랑 4년밖에 안 남았다. 그것도 수치상으로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김진국 칼럼 20]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의사. 신경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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