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스위스, 불란서 등에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달리는 기차안에서 바깥 풍경에 무심코 시선을 던지다 보면, 숲이 많은 곳이나 기찻길을 따라 한 10평 남짓의 작은 정원들이 사각성냥갑을 옆으로 붙인 모양으로 일렬로 쭉 앙증맞게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조금 눈길을 멈추면, 일반 성인의 허리보다 낮은 나무로 어슷어슷 연결해 만든 담장으로 경계를 지은 알록달록한 정원에, 사람들이 그 속에서 편안히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잔디를 다듬는 모습, 아이들이 발가벗고 물놀이 하는 모습들도 어렵지 않게
여성복지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한번 재미있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한 유명칼럼니스트가 쓴 글에 있는 내용이었는데, 최근의 대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내용인 즉은, 핵전쟁이 나면 숨을 수 있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여섯 명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다음의 직업을 가진 열명의 사람이 있다: 수녀, 정치인, 가수, 농부, 물리학자, 창녀, 가수, 교사, 맹인 그리고 본인. 그럼 여러분들 같으면 누구를 살리겠느냐고 물어 보았다.아이들에게 내걸은 조건은 조를 짜서 의견을 모으되, 살리는 경우 그 근거를 분명하게 설명
필자가 유학을 갈 때는 대단한 사람만 가는 거라고 생각할 때였다.1983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외국에 나간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 조차도 아득해 보였으니까... 그런 필자가 유학을 결심한 것은 고매한 학문탐구를 위해서도 아니요, 외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도 아니다. 필자는 소위 말하는 “출세”가 하고 싶어서였다.필자의 어머니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책방을 하면서 겪는, 없는 사람의 세상살이방식이 도저히 출세를 하지 못하면 못벌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배운 것도 없고 일찌기 혼자가 된 어머니는 새
도발적인 북한의 핵실험으로 그동안 공론화된 “통일”이야기가 잠수한 상황이지만 오늘은 “통일”과 연관된, 그러나 아주 가까운 우리 일상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현재의 다급한 위기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증에 대한 돌파구로 든 생각인지도 모른다 - 다음은 얼마 전의 한 월간지에 실려진 보도기사의 일부이다.지난 월간중앙 8월호에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서울에 거주하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기재되어 있다. 그 내용의 일단을 보면, 응답자의 70.5%가 기회가 주어지면 미국으로 망명하고 싶다고 했고,
근간에 지역에서 진행되는 토론회의 사회를 왕왕 보곤 한다.이것은 흔히 생각하듯, 필자가 매끄럽고 공정하게 잘해서라기 보다는 필자가 시민단체활동과 방송을 하면서 넘나든 곳이 많아 엮어놓은 인맥으로 이리 저리 엮다보니까 맡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그런데 논쟁거리가 되는 사안의 사회를 보다보면 항시 팽팽하게 자기들만의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주장만이 합리적이며 타인들이 무관심하다고 호소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엔 일방적 주장만 하고, 설득하기 보단 큰소리를 치면서 자기얘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주로 얘기의 골간은 “나는 옳
지난 7월7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5.31지방선거 대구시민연대의 활동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선거 전에 이미 공약분석과정을 지켜볼 기회를 가졌는데, 활동가들은 며칠 밤낮을 여러 곳의 자문을 얻어 토론과정을 거치면서 공약분석자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지역에 필요한 실현가능한 공약의 옥석을 가려내기란 매우 고난한 과정이었음엔 틀림이 없었다.그러나 그들은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머리를 싸매 분석해내고 있었다.전문가 집단의 적극적인 협력도 거의 부재한 상태에서, 지역활동가들은 괜찮은 일꾼들을 뽑는데 도움이 되고자 자신이 속한
엊그제 대구 서문시장의 화재로 직간접으로 피해를 입은 많은 서민들에게는 지난 연말과 새해가 너무도 절망적일 것이다. 그럭저럭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 정도였을텐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도 이런 경우는 없을 듯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인도 밝혀지고 추스려지겠지만, 다시 한번 우리 모두 고통을 나눠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사실 새해에는 기본에 충실한 “튼실한” 희망이 우리에게 자리했으면 하는 바램을 오래전부터 가졌었다. 필자는 황우석교수의 사태를 볼 때에도 아마도 우리사회의 돌파구가 될 ‘희망’이 부재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필자가 독일에서 귀국한 후 몇 번을 망설이다가 간 곳이 있다.그곳은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이었다.필자는 태어난 곳도 창신동이고 대학원까지 창신동에서 다녔다.산동네에 집들이 빼곡하고, 암벽 벼랑 낙산아파트 아래 있던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3-5가구 이상 세든 사람들 가득한 기와집과 슬레트집이 붙어있던 동네였다.그 마당 한가운데에는 수돗가와 공동의 세면대가 있고, 대문옆에는 공동변소가 있어, 매일 아침이면 북새통을 이루었다.집 뒤에는 안양암이라는 천태종소속의 절이 있었다.여름이면 안양암 절의 일주문에 그려져있는 총천
4월이다.한 때 온 나라가 가슴벅차하던 4.19혁명이 있었던 4월이다. 가난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어두운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던 시퍼런 눈을 부릅뜬 젊은이들의 기개가 살아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신을 곱씹듯 되살리며 사노라면 언젠가 올 ‘아름다운 이 땅’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한 많은 젊은이들이 배출된 시절도 있었다.그리고 45년이 지난 4월, 오늘의 4월은 그저 따스한 봄빛과 파릇파릇한 실록만이 아른거리는 “역사적 지층”을 잃어버린 4월인 듯 보인다. 이젠 젊음의 지성들에게 저항할 특권이 있다는 의미가 그저 교과서적인 언술
필자의 독일에서의 첫 사회학개론 수업은 독일 나찌때의 독일인들의 활동에 대한 조사와 반성으로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회학 개론시간에 첫 시간에는 사회학이란 무엇인가부터 사회학의 역사, 기본 개념, 사회학의 이론 등을 피상적으로 훑어가고, 사회학의 연구대상으로 성, 문화, 노동, 정치, 사회변동, 계층, 시민사회, 국제화 등을 개론식으로 짚어 간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필자가 처음 접한 사회학개론 시간은 색다른 점이 있었다.사회학과 원로교수 3명과 조교 3명이 함께 들어와서 강의의 개요를 언급한 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의 탈
벌써 평화뉴스의 첫돌을 맞았다.처음 만든다고 뜻을 보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을 맞았다. 팍팍한 재정으로, 확실한 투자처도 없이 어떻게 지역에서 인터넷 대안신문을 만들 수 있겠냐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제고해보라고 했는데, 결국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창간했었다. 이후 평화뉴스는 1년의 다사다난한 한 해를 지역민의 눈과 귀를 대변하면서 고비고비를 넘겨왔다.후원도 하질 못하고 그렇다고 변변한 글을 기고할 능력도 없었던 필자는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간 1년의 성장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