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뭐하는 짓이야... 저기 사람 있어요!!"
발을 동동 구르며 내지르던 비명과 아우성은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 속에 파묻히고, 그 불덩이는 바로 그 전까지 멀쩡한 육신들을 순식간에 숯덩이로 만들어버렸다.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들이 꾸는 악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모습들이 올해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일어났다. 설 명절을 며칠 앞둔 기축년 1월의 모습이었다.
잔인하고 끔찍하게, 핏빛으로 시작됐던 기축년도 이제는 가물가물 그 숨결이 끊어져가고 있다. 하지만 기축년 벽두에 숯덩이로 변해버린 육신은 여전히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고, 그 가족들은 철창 속에서 또 거리에서 원한과 분노를 삭이고 있다. 정말 지긋지긋한, 끔찍했던 한 해가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아무런 결실도 없이 저물고 있다. 그러나 세상인심은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다.
기축년 첫 머리부터 철거민들과 살육전과도 다를 바 없는 전쟁을 치른 이명박 정부는 일년 내내 국민들과 끝도 없는 전쟁을 치뤄왔다. 쌍용자동차, 미디어법, 세종시, 노동법, 4대강... 이제 MBC 방송국 노동조합과 마지막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전쟁만 승리하면 이 땅의 모든 것들을 그들의 손아귀에서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전쟁 아닌 전쟁이 거의 일상화되어 있는 세상임에도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차분하다 못해 적막하다 싶을 정도이니, 권력의 완벽한 승리인 듯 싶기도 하다.
임기 반토막 나는 MB, 그 끝은?
승리감에 도취된 나머지 이명박 정부는 이제는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외길로 달려 나갈 태세이지만, 그 길의 끝은 천길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자신들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국민을 폭력으로 짓밟은 뒤에 느끼는 승리감 한 켠에 무겁게 드리워져있는 두려움만은 쉬이 지울 수는 없는 법. 그 두려움을 지금 이명박 정부는 엉뚱하게도 객기와 만용으로 포장하고 있다.
"2011년까지 4대강 사업의 대부분을 마무리 하겠다"는 객기와 만용..... "예산이 없으면 외상공사"를 하면서까지 ‘막가파’식으로 4대강 사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감이나 신념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탓일 게다. 전직 대통령에 이어 전직 총리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또다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불법행위를 되풀이하는 걸 보면, 공정성과 중립성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선거관리위원 자리에 공정성이나 중립성과는 담을 쌓고 산 사람을 임명하는 꼴을 보면 지금 정권이 느끼는 두려움이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짐작이 될 것이다.
이 한 해 저물면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반토막이 나는 셈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임기후반의 대통령, ,그리고 퇴임 후 전직 대통령의 안위를 보장해주는 것은 결코 정치적 후계자가 아니었다. 전두환 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 보낸 사람은 생사를 같이 했던 쿠데타 동지, 노태우 대통령이었고, 군부 쿠데타의 주역들이 정권재창출을 위해 영입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버렸다. 임기 말에 인기가 급락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들이 만든 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탈당을 해야했다. 전직 대통령을 각별히 모시고 최대한의 예우를 하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직전 대통령을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런 점에서 권력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채 국가공권력을 자신의 사병(私兵)으로 삼아 하루하루를 어렵사리 버티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끝이 어떨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힘 빠진 권력이 풍기는 악취는 개들이 제일 먼저 맡고 뿔뿔이 흩어진다.
2010 대구, '그들' 잔치판에 실낱같은 틈새라도
달력을 바꿔 걸면 이 나라는 다시 온통 선거이야기로 범벅이 될 것이다. 지방선거이긴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운명을 가르는 선거가 될 수도 있기에 기존의 보수언론과 함께 권력의 손아귀에 들어간 방송사들이 어떤 활약들을 할지도 기대(?)가 되는 새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개혁세력에게는 재도약의 기회가 될 지, 아니면 소수의 불만세력으로 몰락하게 될 지 판가름나는 선거이기도 하다.
아아!! 저기 사람이 있는데...
풀들이 꽃들이 숨쉬고 있는데...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는데 ..... 이제는 불길 대신 여기저기 콘크리트가 쏟아지고 있다. 한반도 전역이 파헤쳐지고 있다. 16세기 영국에서 양(羊)들이 사람들을 몰아내듯이, 21세기 한국에서는 콘크리트와 불도저가 사람들을 몰아내고 있다. 이런 권력의 횡포를 견제해야 할 야당과 진보개혁세력은 사방팔방 흩어진 채 제각각 벼랑 끝에 서 있는 처지이면서도 서로를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다.
지금 아무도 듣지않는, “MB 심판”이라는 공허한 성명서나 읽어대는 공중전을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형편이 아니다. 역사에서 심판받지 않았던 권력은 없었다. 그러니 심판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 수명이 그리 길게 남지도 않은 권력이다. 그래서 지금 진보개혁세력이 할 일은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 흩어진 힘을 모으는 일이다. 그런 뒤에 비록 견고한 콘크리트로 뒤덮혀 있는 성역과도 같은 곳이긴 하지만 실낱같은 틈새라도 찾아 그 틈을 벌려 작은 물길이라도 흘러가도록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이 곳 대구의 지방선거는 또다시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판에, ‘그들’ 사이의 자리다툼으로 끝날 것이다.
[김진국 칼럼 29]
김진국 / 의사. 신경과 전문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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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2010, 반토막 나는 MB...진보개혁의 판가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