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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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원 / 『북성로의 밤』(조두진 저 | 한겨레출판사 | 2012)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8월은 찌는 듯한 더위로 모두들 지친 몸 이지만 정신 한 켠을 놓을 수 없는 역사의 장르 앞에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본다. 인류사의 변곡점마다 평화를 깨어버린 침략과 전쟁,지배와 피지배. 이 엄청난 역사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반도의 두 동강 난 불구자의 몸으로,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서서 제대로 걸어보려 하지만 발길이 떼어지지 않는다.

이것도 운명이지 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비참하고 원통하다. 불구자다 보니 남들이 업신여긴다. 만만히 본다.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강한 놈들이 반대한다. 기필코 하나 된 모습으로 주권을 찾아 대륙과 해양을 호령하면서 새로운 한민족시대를 열어야 하는데...아직도 갈 길이 멀다.

지저분하게 정리되지 못한 역사,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지켜야 하는 가치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 인지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모든 것이 헷갈리는 “혼돈의 시대” 한 복판에 놓인 오늘 작가 조두진의 “북성로의 밤” 을 통해 발길을 멈춰보았다.

그 무대는 대구 북성로.약 100년 전 ‘미나카이 백화점’.
1876년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통해 조선의 문을 연 일본은 여느 점령국가와 마찬가지로 자국민을 식민지나라로 적극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면서 많은 일본상인들이 일본정부의 지원 아래 자리를 잡게 된다. ‘미나카이 백화점’의 사장 나카에 도미주로도 그 중 한명이었다.
 
 
 
대구 도심은 100년 전만 해도 성벽으로 둘러쌓인 곳이였으나 1906년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 박중양의 지시로 일본 상인들은 성을 허물고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의 네 곳에 시가지를 내고 일본인 점포를 세웠으며 그 중 가장 번창한 곳이 대구역에서 가까운 북성로였다. 그 곳에서 펼쳐진 조선과 일본의 운명적인 원치 않은 만남과 갈등, 노태영-노치영 형제의 비애, 노정주와 아나코의 사랑과 이별, 미나카이 백화점의 몰락 그것은 사필귀정이겠다.

작가 조두진의 얘기처럼 “조선인으로 태어났으나 일본인으로 살고자했던 남자 노태영과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한국에서 뿌리내리고 싶어했던 사업가 나카에 도미주로,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조선남자를 사랑했고 조선을 세상의 전부로 알았으나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야 했던 아나코...이들 모두는 북성로의 나그네였고, 세상의 이방인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살았던 노태영은 일본에 맞서 싸우다가 죽기 보다는 일본 경찰이 되어 살길을 도모했고, 그가 장렬한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고 작가는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작가는 “노태영의 죽음과 나카에 도미주로의 몰락에서 사람살이의 아픔과 세월의 무심함을 얘기하고, 세월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애정도 갖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달리 어쩌자는 얘기는 아니고 도리가 없다”고 한다.

“나라를 잃는 순간 곡기를 끊고 통곡하거나 목숨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죄를 스스로 사했던 선비들, 나라 없는 백성으로 태어나 모진 세월을 살았던 필부, 골방에 틀어박혀 친일파를 비판한 것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불우한 지식인들, 그들 모두는 노태영과 마찬가지로 세월의 무심한 흐름에 휩쓸려 가버린 개인이라 합니다. 그들 역시 작가가 위로할 방도는 없습니다”라고 한다.

"사람들은 시인 서정주는 친일파, 마라토너 손기정은 식민지 아픔을 안고 달린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작가는 친일로 서정주를 설명할 수 없고, 손기정 역시 나라 잃은 서러움을 안고 달린 영웅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북성로의 밤에 등장한 인물 노태영, 나카에 도미주로, 노정주, 아나코, 서정주, 손기정...그들은 누구를 위해 혹은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는 제 삶의 주인이고자 했으며 다만 살기위해 살았습니다”라고 작가는 얘기한다.

작가는 “세상의 일부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그 말이 곧 내가 무엇을 위해 산다는 말은 아닙니다. 작가는 다만 내 삶의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한다.

대구읍성이 허물어진 자리에 일본인 나카에가 세운 백화점도 식민지배의 광기와 돈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게 드러내는 역사의 현장이였고, 그 현장에서 맞이한 운명들은 오늘날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기위해 정신없이 허둥대는 현대인의 모습과 흡사했으며, 등장하는 면면들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고 또한 한 작가의 100년전으로 돌아간 필름을 통해 대구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 다시는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해본다.

작가는 우리가 통속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을 넘어 인간애를 통해 세상사를 들여다 본 것 같다. 
 
 
 





[책 속의 길] 107
권성원 / 前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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