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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사랑, 내 삶과 의식의 스승이 된 책
이한용 /『신동엽전집』(신동엽 저 | 창작과비평사 | 1975)
2013년 06월 14일 (금) 09:22:33 평화뉴스 pnnews@pn.or.kr

87학번. 누구나 그랬듯 나의 시대는 데모와 가투로 점철된 민주화열병의 시대였다. 불의 터널 같던 80년대의 막바지에 다닌 대학. 수업은 일 년에 서너 번이 전부였다. 거리와 현장이 학교와 수업이던 시대였다. 육체적 정신적 성장이 모두 더뎠던 나는 지독한 늦깎이가 되어서야 겨우 깨달음을 얻었다. 의식은 명료했으되 지켜보기만 하고 나서지 않는 삶. 그게 내 청춘의 행동방식이었다. 유교적 문화가 팽배한 고향에서 다져진 전통에의 깊은 의식도 쉬이 나아가지 못함에 한 몫을 했다. 

남들이 최루탄 터지는 거리를 내달릴 때 나는 <신동엽전집>을 끼고 있었다. 격동의 시대 상황에서 ‘민족의 큰 설움을 가슴에 품었던’ 신동엽의 시들이 좋아졌다. 시인의 시를 접하면서 나 자신이 몹시도 부끄러워져 갔다.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는데 나는 허접한 껍데기 삶이나 살고 있으니......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민만 하고 나아가지 않는 삶이 이어졌다. 어느 날 문득 이 구절이 내 가슴을 찌르고 들었다.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 질러 봤으면


그래 내가 무얼 망설이고 있는가? ‘시와 사랑과 혁명’을 내 청춘의 좌우명으로 받아 안고 달려보는 거야? 지금이라도 늦진 않은 거야? 그 길을 따라 나는 골방을 박차고 거리로, 역사의 너른 광장으로 내 달렸다. 문학도도 시인 지망생도 아니었지만 어느 날 뒤돌아보니 시인이 추구했던 그 길을 어느새 내가 가고 있었다. 나도 역사의 들길을 따라 그렇게 선배가 되어 가고 있었다.

"민중 속에서 흙탕물을 마시고, 민중 속에서 서러움을 숨쉬고 민중 속에서 민중의 정열과 지성을 직조(織造) 구제할 수 있는 민족의 예언자, 백성의 시인이 정치 부로커, 경제 농간자, 부폐문화 배설자들에 대신하여 조국 심성의 본질적 전열(前列)에 나서 차근차근한 발언을 해야 할 시기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앞에 익어 있었던 것이다"란 글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춰 참으로 내가 바라던 이상적 시인의 모습이었다. 파고들수록 궁핍한 시대, 시인의 사명에 누구보다 투철했던 신동엽이 내 안으로 살아 들어왔다.
 
   
이 이후 <신동엽전집>은 내 청춘을 지배한 책이 되었다. 휴학을 하고 잠시 낙향하여 농사를 지으며 고향에 마을도서관을 세울 때도 내 손에는 <신동엽전집>이 들려 있었다.

신동엽이나 김남주로 대표되는 일군의 혁명시인들. 그들의 책은 언제나 내 서가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게 있어 존경의 대상이 될수록 그 책들은 가장 높은 곳에 꽂히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시답잖은 저자나 나이브한 책들은 방바닥에 던져져 짓밟힐 운명이었다. 청춘의 시절 나의 서가 가장 높은 곳에 꽂혀 말없이 나를 지켜보던 의식화의 스승 같은 책. 내 삶의 자양분이자 방향타가 되어준 책, 그것은 바로 <신동엽전집>이다.

살다가 간혹 맘이 약해지거나 간사한 맘이 슬금슬금 올라올라치면 성경처럼 펼쳐 한 구절 한 구절을 다시 읽으면서 나태해진 맘을 다잡기도 한다.

시를 읽을 때마다  ‘아! 시인은 이 나이에 벌써 이런 생각을 했구나’하며 감탄하기도 하고, 무서운 시대에 홀로 깨어 일어나 얼마나 몸부림 쳤을까 싶어 안타까운 맘이 들기도 한다.

-- 시인 신동엽을 안다고 덜컥 해버린 결혼   
내게 있어 신동엽 사랑은 유별나다 못해 처절하다. 애인이나 결혼의 전제 조건으로 시인 신동엽 정도는 아는 사람이어야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내 팔팔한 의식으론 신동엽을 알면 그래도 참의식을 지닌 사람일 거라는 막연한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어렵게 후배들이 주선해준 만남자리에서조차 시인 신동엽을 모른다고 하면 이내 실망하여 뒤돌아 설 정도였다. 나만의 까칠하고 요상한 잣대 때문이었으리라. 

아마도 그랬듯 것 같다. 신동엽의 부인 인병선이 신동엽에게 반하듯, 우리 집사람도 신동엽 때문에 나에게 반하지 않았나 싶다. 함께 다닌 대구의 급진적 청년모임에서 그저 눈인사만 나누길 1년. 어느 날 합석한 술자리에서 문학이야기가 오가고 김수영과 신동엽에 이르러 치열한 논쟁이 붙었다. 나의 신동엽 이야기에 유독 눈빛이 반짝이는 사람이 보였다. 지금의 나의 집사람이었다.

며칠 뒤, 단 둘이 따로 만난 자리에서 신동엽 이야기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책을 통한 신동엽과 인병선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도, 신동엽의 아들이 의대생에서 고통받는 이와 함께 하기 위해 노동현장으로 투신했던 이야기도 했다. 인병선의 부친 인정식은 식민지시대 탁월한 이론가이자 맑스주의 경제학자인데 월북한 부친으로 인해 인병선이 빨갱이의 딸로 몰려 고생한 이야기나, 그런 멸시와 냉대의 시대에 신동엽은 “저는 그 사람을 잘 압니다. 그 사람을 존경해 그 사람의 책을 단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다 읽었습니다”라고 했던가? 그 말에 감격한 인병선은 ‘이 사람이 내 운명이구나’라고 여기게 되었다던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누었던 것 같다.
  
그날 신동엽을 아는 사람을 만나니 절로 그의 시(詩)가 나왔다. <산에 언덕에> 1연을 내가 먼저 읊조리자 뒤를 받아 집사람이 2연을, 둘이 함께 나머지 연을 모두 읊은 것 같다. 당시 집사람의 생각은 이런 정도였으리라. ‘저 인간이 산이나 오르고 고리타분한 문화재나 찾는 고루한 인간일줄 알았는데 사랑과 혁명의 시인 신동엽의 시를 줄줄 외고 신동엽을 제일 존경한다니. 허걱! 다시 보아야겠네!’ 뭐 이런 정도 였으리라.

신동엽에 반한 인병선이 그랬던 것처럼 집사람도 내게 그런 걸 느꼈나 보다. 그날 내가 술기운에 내지른 이 말에 더 감동했을지도 모르겠다. “저는 신동엽을 아주 좋아해서 그 사람의 책을 다 읽었습니다. 매년 그 자취도 찾아가고요. 감히 말하지만 신동엽처럼 살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평소 맘에도 없었던 나 같은 이가 졸지에 집사람의 눈에 들어왔으니. 시인 신동엽으로 인해 과분한 사랑을 얻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신동엽을 잘 알고 시인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석 달을 만나고 더 볼 것도 없다 싶어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식을 했다. 산하를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던 나는 결혼할 맘이 절대로 없었건만 신동엽 시 한 편을 같이 읊은 찰나의 인연으로 인해, 졸지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게 다 시인 신동엽 때문이다.     

신동엽을 흠모했기에 그를 통해 시를, 삶을, 혁명을, 조국사랑을 배웠다. 작은 배낭을 메고 산하를 떠돌던 신동엽의 사진처럼 나 역시 산하를 바람처럼 떠돌았다. 당시엔 쓸모없을 것 같은 지독한 방랑과 방황일지라도 후일 내공이 쌓이면 그게 무언가로 나올 것이라 굳게 믿으며 신동엽이 걸어간 길을 되밟았다.
 
지금도 일 년이면 서너 차례 의식 있는 이들을 데리고 신동엽의 시비를 찾는다. 가을이면 억새풀꽃에 소주 한 잔 올리고, 봄이면 ‘진달래 산천’을 읊조린 시인의 맘 담긴 민중의 몸부림 같은 붉은 꽃 진달래 한 묶음 올린다.    

   
▲ 신동엽 문학기행을 갈 때 마다 내가 손수 만든 신동엽 자료집 - 필자

답사 인솔을 할 때면 언제나처럼 신동엽을 일정에 꼭 넣도록 만들었다. 간혹 신동엽만으론 상품성이 없다고 거절 할라치면 덤으로 부여의 백제유적을 끼워 넣어 기어이 신동엽을 찾도록 만들었다. 남들에겐 백제의 자취가 더 볼거리이지만 내겐 신동엽의 시와 삶을 알리기가 우선이었다.

지금껏 신동엽을 알리다 보니 신동엽 관련 기행 자료집만 해도 10여권을 넘게 만들었다. 일전엔 시<금강>을 가극으로 만든다기에 나의 꼬드김으로 인해 몇 몇은 대구에서 열린 가극 <금강>공연에 후원금을 내기까지 했다. 이게 다 나의 지나친 신동엽 사랑 때문이리라.   

나의 20대와 30대는 신동엽이 그토록 끌어안고 몸부림쳤던 ‘詩와 사랑과 혁명’을 내 청춘의 화두로 받아 일생을 던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신동엽을 가슴에 묻고 나만의 인생길을 달려가야 할 것 같다. 신동엽이 거닐던 금강의 유장함처럼 그렇게 쉼없이 굽이치는 물줄기 되어. 

   
▲ 내 서가의 가장 좋은 자리에 꽂히는 신동엽전집. 뜻 있는 사람에게 나눠 주려고 여러 권을 사 두었다. - 필자

인병선이 신동엽에게 반하듯 집사람이 신동엽에게 반한 내게 반하듯, 그렇게 신동엽에게 반하여 여기까지 왔다. 시인 신동엽이 만들고자 한 새세상이 올 때까지 <신동엽전집>은 내 서가의 가장 높은 곳에 나를 지켜보며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추신) 평화뉴스 애독자들이 신동엽의 족적을 찾아온다면 기꺼이 하루를 내겠습니다.
그대들과 함께 가는 신동엽문학기행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책 속의 길] 103
이한용 / 인터넷 헌책방 '바우북' 주인

* 이한용 : 딱 마흔 살 까지 대구에서 살았다. 대구에서 <한겨레>를 비롯해 여러 곳의 문화기행 상임인솔을 오래도록 했다. 현재 계룡산 자락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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