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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 심성의 힘과 물음의 힘
김민남 /『왜 호찌민인가?』(송필경 저 | 에녹스 펴냄 | 2013.5)
『특권 없는 세상』(김윤상 저 | 경북대학교출판부 펴냄 | 2013.6)
2013년 08월 09일 (금) 09:22:03 평화뉴스 pnnews@pn.or.kr

하나는 지난 5월 에녹스에서 펴낸 송필경의『왜 호찌민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6월 경북대학교출판부에서 펴낸 김윤상의『특권 없는 세상』이다.

인민의 전쟁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송필경의 책을 읽으며 '나라를 지키는' 심성의 힘을 실감했다.
인식의 방법을 세련하여 세상을 바꾸는 김윤상의 책을 읽으며 '나라를 경영하는' 물음의 힘을 실감했다.

1. 호찌민의 잉여 없는 삶, 그 삶의 방식이 지닌 힘

내 안의 불변
냉혹하기 쉬운 마르크스-레닌의 혁명이론을 공자의 인자한 마음으로 실천했다(송필경, 43).
인자한 마음이 역사적 실천의 지렛대라도 된다는 것인가? 마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거룩한 마음(교의)을 이어받기는커녕, 그 교의를 앞세운 저들은 그 때의 베트남인민을, 오늘도 다른 무수한 인민을 전쟁으로 몰고 있다. 전쟁은 사랑의 적이다(송필경, 18). 2000년의 세월에도 그 아름다운 마음이 발현되지 못하는 까닭을 어디서 찾아야 하나?

성직자라고 자임하는 자들마저도 사랑을 자기 삶으로 살지 않고 대신에 사랑을 교화의 덕목이라고 설교하며 ‘몽매한’ 인민을 가르치려드는 야만, 그 야만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는 인간성의 새로운 지평(송필경, 43)을 연 인류적 휴머니스트이다.

   
▲ 『왜 호찌민인가?』(송필경)
평화의 혁명을 소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 스스로 평화를 일상의 삶으로 살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살려면 당신은 한 포기 들풀마저도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마음이 되는데, 먼저 그 마음이 되기를 소망하고 그리고 소망하고 있음을 직접 행동으로 내보이면 된다.

수신(修身), 스스로 염려하는 몸가짐으로, 인자한 마음이고 싶은 내 소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때 내 소망의 힘은 내 일상을 앎으로 갈무리하는 지성으로 발전한다. 그 지성만이 세상의 평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

왜 그것이 지성인가? 삶에서 지은 앎, 앎에서 발한 행만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귀일하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 사랑은 타자를 이웃관계에서 바라보는 눈이다.


그 지성은 타자와 단지 친교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저들 폭력배마저도 잠시 적일뿐 언젠가 그 적도 이웃사람이 된다. 그의 이웃관계는 인기전술이 아니라, 다가가고 또 멀어지는 인생사에 대한 깨달음이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가늠하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의 ‘전략’(송필경, 302)이 주는 매력이 너무나 크기에, 그와 단지 친교만 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앎은 거쳐야 하는 과정을 죄다 거치며 얻은 지혜이기에, 그 앎에 근거한 그의 선택은 동료들에게 진실, 신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도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송필경, 188).

인간의 얼굴이 그려진 실용주의
일상의 삶을 살피는 작은 발걸음이 모여 천리 길이 된다. 그것이 길이기에 그 길을 간다. 조금 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better is good. 조금 더 좋은 것을 쉼 없이 추구하는, 느긋한 강인함의 힘을 빌려야, 비로소 지적 도덕적 능력을 표상하는 건강한 마음을 키운다. 
잉여 없는 삶,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삶이 권력이다. 그 권력 말고 다른 어떤 권력도 탐하지 않는다. 그 권력으로 ‘인민’의 가치를 말하고 ‘인민의 전쟁’을 지도한다. 베트남인은 인민이 되었다. 베트남 역사를 인민의 역사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선택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것이 자부심인 것은 열등의식이라는 말을 쓸 줄 모르는 겸손한 긍지 때문이다. 그렇다면야 용서라는 말도 원한이라는 말도 쓸 필요가 없다. 우리식 힐링 같은 것은 전혀 필요치 않다. 어찌 살기에 그리도 용서할 것이 많고 원한에 사무친 상처 자국을 남기는지.

혁명은 삶의 현장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다. 다만 그 움직임이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것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지성이 그 시대를 이끈다.

내안의 불변으로 만변하는 세계에 대응하라(송필경, 302). 고담준론이 아니라 거대한 폭력에 맞서는 베트남 인민의 삶과 역사를 읽는 코드이다.

프랑스는 애초부터 베트민과 싸운 것이 아니라 베트남역사와 싸웠다(송필경, 329).
연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역사적 사례를 제공한 프랑스의 굴욕, 그리고 미국의 굴욕, 저들의 깨달음은 무엇일까?

2. 가상의 그러나 꿈이 되기에 충분한 ‘율도국’ 경영론, 30년 숙성시킨 ‘좌도우기’ 이야기

무지와 고정관념
세상을 바꾸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지를 부끄럽게 여기는 교양과 세련된 인식방법이면 충분하다. 현실의 객관적 모순도 따지고 보면 고정관념의 주관에 기인한다. 그 주관을 죽여 객관을 인식한다.
어떻게 주관을 죽이는가? 다 같이 사는 사회제도를 숙고하여 정비하는, 말하자면 사회제도를 수립하는 정책을 고민함으로써 주관을 죽인다.

   
▲ 『특권 없는 세상』(김윤상)
사회제도의 그 ‘사회’는 복지의 가치로 구성된다. 복지사회를 운영하는 정책의 목표는 모든 이에게 일하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목표를 관철하는 정책수단은 저마다 자신의 가치 실현을 인생의 목표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데서 찾는다. 어떻게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는가, 격심한 경쟁 사회에서.

자기 돈(김윤상, 69)을 가지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누구나 자아의 길을 간다는 꿈이 되기에 충분한 인생 목표를 설계한다.

자기 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치실현에서 삶의 의미를 구한다. 인생의 목표는 야망 같은 인위를 동원해야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만큼 건강한 정상적 정신이다. 
 

저마다 자기 돈으로 살게 하는, 그야말로 복지사회를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인가?
율도국 경영의 기조는 필요한 사람에게 따로 복지비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복지를 필요로 하는 복지의 원인(김윤상, 92) 제거에 두고 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환수하는 것이 복지의 원인을 제거하는 정책이 될 것이며, 그리고 재능과 직능을 살리는 일자리 나눔이라면 재분배 없는 복지 사회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회제도의 기본은 ‘자기 돈’이다. (율도국 경영론은 살기에 충분한 자기 돈 개념과 이론을 아주 자세하게 적고 있다.)

물음의 생태학: 일다운 일
싫어하는 것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며 인간에게 저주스러운 것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대가가 생기지 않는 노동과 결과가 나오지 않는 노력을 혐오할 뿐이다(김윤상, 95).
자신의 가치의 실현이 먹고 살고 자식을 키우는 밑천을 장만해주는 자신의 일이 된다면, 그 일이야말로 일다운 일이 될 것이다. 누구나 일다운 일을 욕망한다. 일다운 일을 욕망하는 것은 자아의 길을 걷고 싶은 자연적 행복추구권의 발로이다.
일다운 일을 하고자 하는 그의 소망에는 타자와 같이 걷는 길에 대해 묻는 사회적 차원의 물음이 들어 있다. 그 물음의 힘이 품위 있게 계층상승 욕구를 충족시키는 양식을 낳는다. 계층 상승 ‘투쟁’은 특권제도의 결과와 원인이지, 원래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율도국은 주민들에게 그 물음을 돌려주어, 스스로 사회운영능력을 발전시키도록 고무하는, 자기교육의 왕국이라고 해도 된다.

특권이라는 쉬운 길을 걷는 사람들한테서 사회운영능력을 기대하지 못한다. 잘만 하면 자기 것 아닌 것도 넘볼 수 있다는 관념, 심지어 하늘의 것도 넘볼 수 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들한테서 그런 교육력을 기대하지 못한다.

율도국의 이성: 좌도우기
저마다 자아의 여정에 나서도록 고무하는 복지사회는 이상이기도 하지만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될 현실이다. 이상과 현실을 하나로 뭉치는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한다. 다시 말해 각자 처한 처지와 입장이 다르다고 해도 동의할 수 있는 이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시급하다.

진정한 이념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김윤상, 67).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접을 수 있는 이념, 이상이라면 그 누구든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다시 강조하여 말한다면, 그 이념, 이상을 현실적 가능성이 되게 진술하는 이론 작업을 해내는 일이다. 좌파의 이념을 우파가 동의할 수 있는, ‘특권 없는 세상론’은 이런 이론작업의 전형적 보기이다.

   
▲ 김윤상
일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평균적 교양, 즉 사회운영능력이면 충분하다. 그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선언한다고 해서 반대하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능력은 무지에서 벗어나고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수신(修身)이라는 대가를 치루어야 얻을 수 있는 조건부 가치이다.
복지사회의 복지의 참 뜻은 저마다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는 존재감일 것이다. 특권 사회에서 기회균등론은 특권층의 이익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율도국 주민들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 실현이 가져다 줄 결과(차이)에 대해 아주 관대하다. 그들은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율도국의 사회제도에서, 기회균등의 핵심 아이디어는 자기실현의 자유이며, 한사람 한사람의 자유에 대한 관심이다. 율도국에서 자유는 ‘나의 자유’에 대한 관심이며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충돌한다는 현실의식에 근거한 나의 책임감과 병행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때 성립한다. 자유와 책임의 일치는 사회운영능력으로 나타난다.
율도국 사람들은 이성의 힘에 대한 신뢰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근원적 힘이라고 선언하는 건강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그 심성은 복지사회제도의 ‘외부 효과’일 것이다.

눈앞의 현실에서는 이성의 영향력이 미약해 보여도 역사는 결국 그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김윤상의 다른 책, 『지공주의』 머리말에서).

3. 교육은 가르치는 자의 윤리와 만나야 한다. 역사가 윤리와 만나야 하듯이.
그 윤리는 엄중한 현실감각에서 출현하는 책임감일 것이다.

교육은 지혜와 도덕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지식’을 전수하는 과정이다(김윤상, 51).
과학(이론, 실용)의 지식에 한정하지 않고
도덕(삶의 지혜)의 지식에 한정하지 않고
넓은 의미의 지식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교육의 대상이 되는 지식은 어떤 것인가, 그 지식은 아마도 교재의 제시, 전개, 평가를 기획하는 가르치는 자의 교육과정 작업에 의해 포착된 앎의 행위(과정)를 표상하는 것이 아닐까.

가르치는 자의 윤리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가르칠 수 없다.
그런데도 가르쳐야 한다면 보여주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의 윤리는 교육을 스스로 살아야하지 교육을 교화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으로 나타난다.

4. 베트남의 진실이 위기의 한반도에게 묻는다. 

베트남의 진실
인민의 출현, 인민의 전쟁, 그 역사적 경험은 베트남인민을 베트남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뿌리이다. 역사의 고통이 남긴 흔적은 그들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으며, 결코 가벼이 힐링할 대상이 아니었다. 미국에 대해 프랑스에 대해 한국에 대해, 용서한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적개심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미국 프랑스 한국, 그들에게 가해자로서의 고통스런 상처 흔적이라고는 없을까? 벌써 힐링해버렸을까?

한반도의 위기
어떻게 답을 해야 위기의 한반도를 인식하는가? 잃어버린 그러나 반드시 복원해야 할 심성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자라면서 늘 ‘사람노릇’하라는 어머니의 꾸중(소망)을 들었다. 어찌 들으면 공부 잘하여 출세하라는 독촉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이웃을 이웃 같이 대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탄식 같기도 했다.

사람노릇의 심성을 어떻게 복원하는가?
무지와 고정관념의 해체가 그 해법일터인데, 그런데 그 당연한 것이 어찌 그리 어려운지. 무지와 고정관념의 저편에 열등의식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리 어려운가. 그렇다면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내 모습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내 속의 열등의식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어떻게? 수치심의 힘을 빌리면 되지 않을까. 수치심은 인간존재의 조건이며, 열등의식은 내 존재의 부정이다. 수치심, 부끄러워할 것을 부끄러워한다. 모두 부끄러운 짓을 한다. 다만 부끄러운 짓을 부끄러워하면 된다.
‘수치심을 걷어내야 막 일이라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지 않겠는가.’ 가족을 먹여살리는 일이 부끄러운 일인가. 그걸 부끄럽게 여기는 내 속의 열등의식을 부끄럽게 여긴다. 수치심, 부끄러움의 힘은 총칼의 힘보다 강할지 모른다.

   
▲ 송필경
미국을 숭상하지만 베트남을 한없이 부정하는 행태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이 수치심의 힘을 발휘하면 조금이나마 우리 속에 내축된 열등의식을 조금 경감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방법, 대구지역민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하면 내안에 밖힌 열등의식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한반도의 위기는 사람들에게 열등의식을 깊이 넓게 확산시키는 사람분별의 사회체제 병을 일상의 경험이 되게 명확하게 설명해내지 못하는 지성의 결여라고 하면 어떨까.


베트남과 우리가 겪은 희열과 비애는 이제 지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송필경, 24).

5. 빛나는 말을 빚어낸다.

복지사회는 인류보편의 개혁 정책이다. 복지사회에 대한 관심은 특권을 용인하는 현단계 우리사회에서 ‘역사적’일 수밖에 없다.
반개혁세력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이론이 튼튼해야 한다. 명확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면 혁명이 아니라 정책을 가지고 현실을 바꿀 수 있다. (김윤상, 75 참조).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일수록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딘hardin 같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방치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 것을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잘 못 언어화한 나머지 ‘사유지의 비극’을 불러왔고 그것이 빌미가 되어 본래의 개혁의미를 놓치기도 했다. (김윤상, 97-107).
 
‘공’교육의 비극, 학교(교사)의 책임을 강제하기 위해 학교(교사)를 감시권에 묶어두는 정책,그 정책이 불러내는 교육현장의 비극에 대해 생각한다.

사회에 대해 고민하는가? 그렇다면 빛나는 언어를 빚어내라. 그러기 위해 현실감각을 예민하게 하는 일에 내내 가담해라.

우리 (수용소의 사람) 배고픔이 한 끼를 굶은 사람의 그것과 같지 않듯이, 우리 추위에도 특별한 이름이 필요할 것이다.....자기 집에서 고통을 아파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자유롭게 사용하는 자유로운 단어들이다......종말이 다가와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하루 종일 노동하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송필경, 51).

빈곤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무한 경쟁이 일어납니다. 가치있는 일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김윤상, 69).

다른 사람도 같은 별을 본다는 사실을 알면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 별을 볼 수 있다(특권 없는 세상, 서문 맨 끝 문장).


빛나는 말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국민은 등신이다.’ 이 기막힌 홍보 문구를 낭독하는 듯한 뉴스를 듣고 신문을 읽는 것이 두렵다. 일본민중의 자유로운 주체의식의 상실, 그 까닭은 파시즘과 군국주의 체제가 지닌 메커니즘과 그 속에서 무비판적으로 행동하는 심리상태 때문에 전율하고 신음했다(송필경, 388).

   





[책 속의 길] 106
김민남 / 교육학자. 경북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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