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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와 만주의 교차, '열하일기'를 읽으며
이경숙 / 『열하일기』(박지원 저 | 김혈조 역 | 돌베개 | 2009.9)
2013년 01월 11일 (금) 10:08:01 평화뉴스 pnnews@pn.or.kr

열하. 겨우 겨우 열하에 당도했다. 압록강에서 북경까지, 2,030리. 북경에서 열하까지 420리. 한 달 보름 걸려, 어느 날은 강물을 아홉 번이나 건너, 압록강에서 열하로 갔다. 때는 1780년, 정조 4년이다. 현재 나의 독서는 여기까지이다. 청나라 왕 건륭의 생일축하 사신 행렬에 끼여 여행한 박지원의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1)는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세 권 중 겨우 한 권을 읽었으니.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만주. 흑룡강성 목단강시로 들어갔다. 냉기가 몰아쳐 실내까지도 얼음이 성글성글한 기차를 대여섯 시간 타고 길림성 연길에서 러시아가 가까운 북쪽으로 올라갔다. 때는 2008년이었다. 당시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내 중국여행은 그 곳까지였다. 나는 중국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었다. 나는 나의 만주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 『열하일기』박지원 저| 김혈조 역 | 돌베개 | 2009
다시 열하. 연암 박지원의 행색은 간소했다. 벼루와 붓, 먹, 작은 공책, 거리를 기록한 두루마리, 그리고 ‘거울’. 다른 짐은 마부와 시종에게 다 맡겼는데, 유독 필기구와 거울만큼은 연암이 손수 챙겨 말안장에 걸어 두었다.

말안장에 앉아서도 기록했다니 필기구는 이해가 된다. 거울은? 연암, 이 남자, 거울에 대해 시치미 뚝 떼고 한마디 말이 없다. 그러나 지나는 여인의 옷이며 장신구, 화장까지도, 남정네 옷의 소매통까지도 세심하게 보는 연암 아니던가. 나는 연암이 틀림없이 패셔니스트였을 거라 확신한다. 그런 그에게 거울은 필수품이었으리라.

열하로 가는 길은 여름이었다. 음력 6월. 곳곳에서 소나기와 천둥 번개를 만나고 불어난 강물 앞에서 걸음을 멈춰서야 했다. 게다가 북경을 도착하니, 이런, 왕은 덥다고 여름궁전 열하로 떠나고 없다.

그리고 만주. 머리통만큼 올라오는 배낭 속에는 온갖 것들이 들어있다. 지도며, 노트북이며, 옷가지까지. 배낭을 울러 매고 길을 떠난 때는 설날이 가까워지던 때. 목단강은 영하 10도, 20도가 예사라 하고, 얼굴에 내리치는 북풍은 귀때기 째지게 따가웠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얼어있었다.

열하일기다. 마흔 넷. 사신 무리에 끼인 중년의 사내는 톡톡 튄다. 때로 개구쟁이 같고, 허당 같고, 날카로운 학자같다. 수시로 변한다. 남몰래 숙소 빠져 나가 밤새 낯선 중국인들과 술 마시고 환담을 나누지 않나, 어느 노인이 자기 신발을 유심히 보는 것 같기에 냉큼 신발을 벗어서 보여주질 않나, 글 잘 쓴다는 말에 우쭐해서 뜻도 모르는 한자 써주다가 망신도 당한다. 그런가하면 궁금하면 참지 못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저질러본다. 역사와 문화, 벼슬살이 문제까지, 틈만 나면 낯선 이들과 필담을 나눈다. 그는 무얼 하든 주저함이 없다. 당당하다. 변방의식으로 위축되지 않는다. 연암은 어디서 그 자존감이 나왔을까. 명이 망하고 오랑캐라 업신여긴 청에 가서 그런가. 그렇지는 않다. 그에게는 내장된 자존감이 있었다.

아, 만주. 좋아서 한 일이지만 연구과제 숙제를 끝내야했다. 나는 숙제 끝내기 전사가 되어 있었다. 북으로 전진, 전진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그리고 저녁엔 술 한잔과 함께 잠들었다. 그 무렵 나는 자존심 대신에 변방의식이 자리잡아가던 때였다.

   
▲ 1940년대 목단강 조선족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 / 사진. 이경숙

오, 열하. 산해관을 지나 북경가는 길에 옥전(玉田). 그 곳에 병자호란 다음 해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이 사는 마을 고려보가 있었다. 그 마을을 두고 사람들은 풍속이 안 좋다고 떠들어대지만, 연암은 생각이 다르다. 조선 사신들의 행패는 무시하고 고려보 사람들만 손가락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연암은 적어도 원인을 찾고자 노력한다.

만주로 돌아가보자. 만주에 조선인 마을은 많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이들이 만주에 자의로 강제로 갔다. 연길에서 더 북쪽으로 가다보면, 왕청이란 곳의 태양촌. 거긴 아예 경상도 마을이다. 겨울이면 마을회관 땔감 같이 구하고, 같이 김장도 담는 오래 전 경상도가 지금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 목단강에도 경상도 사람들이 많았다. 한반도 지도를 압록강과 두만강을 기준으로 중국쪽으로 딱 접으면 마주치는 중국 지점과 한반도 지점. 그 두 곳 중 한반도가 출신지, 중국이 종착지라고들 한다. 지금은 많은 조선인들이 ‘한국바람’으로 한국 나갔지만 아직도 만주에는 조선인 마을들이 많이 남아있다.

   
▲ 중국 왕청현 천교령진 태양촌...경상도 출신자들이 많아 경상도 마을이라 불린다 / 사진. 이경숙

또 다시 열하. “의주의 말몰이꾼들은 태반이 흉악한 놈들” 사신 따라가는 일이 생계이지만, 의주부에서는 한 사람당 백지 60권만 주니, “말몰이꾼들이 길을 가며 좀도적질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북경을 다녀올 수 없는 노릇”이다. “만일에 병자호란 같은 환란이 다시 생긴다면 이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연암은 경고한다. 그렇지, 연암도 양반인 것을!

그렇지, 또 만주. 한 노인이 비밀스레 말한다. 나 사실은 국적이 한국이요. 예? 여기 중국서 살고 혜택도 보지만, 국적은 이미 한참 전에 바꿨소. 그런데 한국에 잠시 있어보니, 그 곳에서 못 살겠더라고, 내가 평생 산 곳에서 살아야지. 그래 다시 중국 들어와서 살고 있소. 여기 다른 친구들에게는 말 안 했소. 자식들은 전부 한국 나갔소. 국적이란 것은 연암이 살았을 때도 어쩌면 허상이었고, 오늘날에도 허상일지 모른다. 국적이 사람과 의식을 붙들어 맬 것 같지만, 국적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들이 다만 국적에 속해있을 뿐이다.

이번엔 『열하일기』. 일기는 ‘연호’문제로 시작한다. 명이 망하고도 14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여전히 조선은 명나라 연호를 사용한다. 연암은 내가 지금 청나라에 들어가는데 명나라 연호를 쓸 수는 없지 않냐고 꼬장을 부린다. 감히 명나라 연호를 버리다니, 배알이 뒤틀리는 양반이 많았다. 연암이 그렇다고 명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청을 버린 것도 아니다. 청의 지배력을 인정하면서도 청을 경계한다.

돌아서 다시 만주. 영화 ‘놈놈놈’처럼 온갖 놈들이 뒤섞인 만주. 조선과 중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있는가하면, 박정희도 신경군관학교를 나와 일본군으로 있었다. 이상적 군국주의 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일본의 만주. 일본에 침략당한 중국의 만주. 만주를 읽는 눈은 제국주의 세력과 식민지, 국가와 차별화된 국민을 해독하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만주의 나. 만주를 다녀온 나는 정리해야 할 사진들을 잔뜩 껴안은 채 있다. 다행히 만주여행으로 동아시아를 몸에 쌓고 왔다고 해야 할까, 시각이 더 넓어졌달까, 뭐 그런 기분이다.

   
▲ 중국 길림성 연길...연길시내 장(왼쪽)과 설이 가까워져서 등불을 달아놓은 모습 / 사진. 이경숙

이젠 마지막 연암 이야기. 연암, 그도 어쩔 수 없는 양반이지만, 그래도 이런 양반이 있었을까. 기와 이는 법, 구들 놓는 법, 벽돌 만들고 쌓는 법, 성 쌓는 법, 가마 만드는 법, 수레 만드는 법, 장사하는 법에 일일이 관심을 기울인다. 어느 양반이 구들짝을 궁리하고, 수레바퀴간격을 재보고 걱정하겠는가. 연암은 제도를 만들어 이용해야 삶이 두터워지고(이용후생), 그 곳에서 도덕이 나온다고 말한다.

사실 『열하일기』는 연암의 관찰력, 표현력, 기록정신 등이 놀라운 책이다. 연암의 유쾌발랄함에 ‘어, 이게 양반이었나’ 하는 반전의 매력이 있다. 그러나 언제든 내팽겨 치고 싶도록 지루한 책이다. 이래서 언제 북경까지 가나? 워낙 대단한 사람이니 그렇지, 이 글의 많은 부분이 장광설이 아니면 무엇이랴.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2013년 새해. 새해이기 때문이다. 2012년의 상실감을 툴툴 털고 일어서는데, 여행만한 것이 있으랴. 툭 트인 벌판을 만나자,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 말했던 연암. 그는 억눌리고 막히고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빠져나오면, 마음과 생각이 확 트이면서 울음이 나온다고 하였다. 요동벌판에서, 한바탕 통곡하고 싶다던 박지원. 그의 『열하일기』는 사진에 갇혀 버린 요즘 기행문들과 달리, 여행에서 사고의 벌판을 만나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이 책을 고른 또 하나의 이유. 언젠가 모든 국민이 여행 가능한 세상에 대한 소원 때문이다. 부유할수록, 회사에서 학교에서 국가에서 ‘전문성 신장’이라는 미명으로 여행을 공짜로 보내주고, 없을수록 죽을 때까지 노동만 하고 한 푼이라도 혹시 그들에게가면 ‘퍼주기’라고 욕해대는 세상의 변혁을 소원한다. 똑같은 복지를 부자들에게는 ‘전문성 신장’이라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퍼주기’라고 부르는 이 모욕적 사회가 언젠가 바뀌기를 소원해본다. 이 소원은 너무 머니까, 우선 2013년에는 시민단체 상근자들 여행 보내주기부터 해보자. 그리고 마침내 여행 선택이 모든 사람들의 권리가 되는 세상을 희망한다.

   





[책 속의 길] 89
이경숙 / (사)지역문화연구 <사람대사람> 연구원. 경북대학교 강사.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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