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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파벌'의 역사
백창욱 / 『파벌-민주노동당 정파 갈등의 기원과 종말』(정영태 저 | 이매진 | 2011)
2012년 11월 23일 (금) 11:43:10 평화뉴스 pnnews@pn.or.kr

조금은 어색하다. 목사가 예수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정당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이건 순전히 진보포럼 때문이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딛는 진보포럼이 길을 가기 전에 우선 성찰 먼저 하자는 취지에서 필자에게 "진보정당 15년 평가" 발제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난감했다. 현실정치와 의식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온 터이고, 또한 진보정당에 대해 별로 할 말도 없고 해서 사양했지만, 바로 그런 외부인사를 발제자로 정한 거라고 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진보정당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여기에는 이중성이 있다. 진보정당이 내홍에 휩싸이고 결국은 제금나서 각자 자기 살림을 차리기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내 안타가운 심정에서 근본적으로 가진 의문이 있었다. 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인데 어째서 나오는 결정은 정반대인가! 하는 점이다.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오면 인생경지를 체험한 듯 시큰둥 하기 마련이다.

하여간 급선무는 진보정당 15년을 아는 일이었다. 다행히 정영태가 쓴 『파벌』이 있었다. 부제는 '민주노동당 정파 갈등의 기원과 종말'이다. 이 책의 시작은 민주노동당을 창당한  2000년이고, 끝은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간 2008년이다. 『파벌』은 그때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상세한 전모를 밝힌다. 아마도 민주노동당 당원들도 진보정당 8년 동안에, 중요한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한 내막은 잘 모를 것이다. 파벌은 바로 그런 궁금증을 불식시켜 줄만큼 그때 그 사건들에 대해 구체적인 전말이 소상하게 나와 있다.

   
▲ 『파벌 - 민주노동당 정파 갈등의 기원과 종말』(정영태 저 | 이매진 | 2011)
또 하나, 이 책의 진가는 이론적인 분석만 한 게 아니라, 당사자의 증언을 충분히 들은 거다. 양 파벌의 리더, 브레인, 주요 당직자들과 심층면접을 했다는 것이다. 모두 17명이다. 그들과의 인터뷰 시점이 2009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이다. 즉 면접에 응한 사람들도 민주노동당 분당에 대해 반성성찰회고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점이다. 그래서인가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때의 심경이 속속들이 나온다.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은 민주노동당 내 파벌갈등의 기원과 종말, 즉 가장 치명적인 폐해인 분당에 대한 연구이다. 저자의 저술동기가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0.71로 OECD 회원국 중 4번째로 높고, 평균(0.44)를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사회 갈등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1인당 GDP의 27%에 이른다고 한다.(박준 외, 2009) 그중에서도 정치 영역의 갈등이 으뜸이란다. 말하자면 진보정당도 사회갈등에 적잖이 기여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 그 갈등이 사회개혁, 또는 썩은 밭을 갈아엎는 길로 가면 참 좋겠는데...


이 책에서 확인한 게 있다. 처음 진보정당을 추진한 주체가 평등파였다는 것. 2008년 분당할 때 평등파가 자주파가 점령한 민노당을 박차고 나간 것을 생각하면, 참,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혹시 모르시는 독자를 위해 민주노동당 창당과정에서 민중민주계열과 민족해방계열이 한 지붕 아래 모이게 된 과정을 보자.

민주노동당의 직접적인 전신은 1997년 10월에 결성한 국민승리21이다. 국민승리21의 중심 세력은 1992년 4월에 결성한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이다. 진정추의 핵심 세력은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삼민동맹), 노동계급그룹(노동해방)이다. 이 세 조직 중에서 인민노련이 합법적 대중정당 건설을 주도했다.(뉴라이트 조직인 자유주의연대를 결성한 신지호가 인민노련 출신이다.)

한편, 민중민주 계열의 다른 정파인 민중회의와 사노맹 후신인 사회당이 1993년 5월에 통합해 민중정치연합을 결성한다. 민중정치연합이 내부분화 과정을 거친 후, 사회당 계열 인사들이 진정추와 통합해 1995년 9월에 진보정치연합을 결성했다. 그러나 1990년 초반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1992년에는 최초로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 나오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자생력과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진보정치연합은 크게 약화됐다.

그러던 중 1996-97년 겨울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계기로 민주노총이 1997년 3월 진보정당(국승21) 건설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에 고무돼 전국연합(민족해방 계열)도 1997년 6월에 조직차원에서 동참하여 10월에 국민승리21이 출범한다. 정리하면 국민승리21의 주축은 평등파의 진보정치연합, 자주파의 전국연합, 민주노총이다. 그러나 1997년 대통령선거 도중 전국연합이 이탈하고, 선거 뒤에 남아 있던 두 세력, 진보정치연합과 민주노총이 2000년 1월에 민주노동당 창당 주역이 된다. 떠났던 전국연합이 조직결의에 따라 민주노동당에 최종합류하는 것은 2001년 9월이다. 이때 2012년 통진당 분당사태 때 실컷 회자됐던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 같은 지역조직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2002년 말에는 전국연합의 모든 지역 조직이 민주노동당에 참여한다. 이어서 한총련, 전농 등 민족해방계열의 주요조직들이 연달아 합류한다. 이후 당원수가 빠르게 성장하여 2008년 1월에는 11만명이나 됐고, 여기에는 민족해방 계열 파벌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한 영향이 컸다.(60-66쪽) 이렇게 수적우위를 점한 자주파는 그 뒤 각종 당내선거에서 '정파셋팅선거'로 요직을 독식하고 그것은 두고두고 평등파를 절치부심하게 만들었다.
 
민노당 안에는 각종 정파가 있다. 한번 보자. 크게 나누면 평등파, 자주파이지만, 이 안에 들어가면 복잡하다. 평등파는 전진(평등사회로전진하는활동가연대), 중앙파, 혁신네트워크, 자율과 연대, 다함께, 해방연대(노동해방실천연대) 등이 있고, 자주파는 자민통(자주와민주통일을지향하는전국모임)전국모임(인천연합,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등), 국민파 중심의 파벌연합이 있다. 여러 정파들이 경쟁과 발전을 불러왔지만, 결국 그게 사달의 원인이 됐다.

평등파와 자주파, 다른 말로 민중민주 계열과 민족해방계열, 소위 PD와 NL의 기원은 뿌리깊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무엇을 같이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로 둘 사이의 간격이 가깝지 않았다. 밖에서 볼 때는 그게 그거 같지만, 이들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이다. 그래서 일이 잘 풀릴 때는 내부발전을 불러 일으키지만, 꼬이게 되면 사생결단이 되기 쉽다. 그러니 모든 민주시민의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갈 데까지 가버리는 거다.

조직문화부터 달랐다.

자주파에 대해 평등파가 하는 말, "문화에 대한 괴리감이 제일 강하고요, 위계질서, 연공서열, 선배 앞에서는 후배는 말을 안 받는다거나 담배를 안 피운다거나 술도 돌아서 마신다거나 이런 게 굉장히 많았거든요. (중략) 그러니까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바가 굉장히 크죠."(PD계열, 40대 후반, 중앙당 정책담당, 54쪽)

반대로 자주파가 평등파 사람들에 대해 한 말, "평등파는 상당히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리고 집단주의를 굉장히 원칙적으로 싫어해요. 정확히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시당위원장 했던 사람이... 20살은 어릴 거예요. 대표 손에다 볼펜으로, 대표 나 좀 봐봐, 나 좀 봐봐, 이러고 볼펜으로 때리고. 아, 난 뚜껑이 열리더라고요... 평등파에서 자주파를 바라보는 눈은 쟤들은 무슨 우두머리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얘들이 공부는 안하고..." (NL계열, 40대 후반, 중앙당 선출직, 54쪽)

오랜 기간 경쟁과 대립으로 말미암아 상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자신의 목표가 실현되지 못한 것을 상대 탓으로 돌리는 경향도 나타났으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착됐다.(58쪽)

민중민주계열의 한 당직자가 민족해방 계열에 대해 한 말,
"전진(평등파 중 최대 파벌) 회원들은 지역에서 또 노동운동 사업장에서, 또 그냥 일반회원들은 학생운동을 통해서 (민족해방 계열 사람들을) 많이 접촉했고 싸워왔고 그래서 굉장히 부정적인 인식을 많이 갖고 있죠. 패권적이라는 얘기죠. 또 그 다음에 주체주의다. 주체사상, 민족주의, 이런 것에 경도되어 있다. 전진 멤버들 중에 다수는 학생운동을 경험한 당 활동가들인데 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학생운동 할 때는 NL하고 치열하게 대립해 왔거든요. 어쨌든 그 이전에 대단히 부정적인 인식을 이미 갖고 있었죠. 그래서 이게 뭐 당 활동을 하면서 새로 형성된 거라고 볼 수는 없죠."(PD, 40대 초반, 중앙당 최고위원, 58쪽)


다른 한편, 민족해방 계열의 한 인사가 상대 파벌에 대해 한 말,
"영남위 사건이 터지고 저는 감옥으로 갔는데, 그 영남위 사건이 터지면서 한 번의 출렁거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은 석방운동을 펼치면서 너무나도 억울하게 잡혀갔다는 것으로 인한 결집력이 엄청나게 생겨났고, 그리고 1999년도에 000이 보궐선거에서 이기면서 대단히 대중적 지지와 자신감을 갖게 된 거죠. 그게 좋은 의미의 출렁거림이라면 안 좋은 건... 석방운동에 0의원이나 이런 분이 적극적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너희들이 이념 성향을 왜 숨기냐' 그때부터 그런 얘기를 했어요. 영남위사건으로 굉장히 화가 났고 그러니까 동지들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같이 도와주지 않고 도리어 화살을 들이댔다라고 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좀 있었고, 그리고 1999년 선거를 만드는 과정에서 격렬하게 부딪쳤고..."(NL, 40대 후반, 중앙당 선출직, 59쪽)

저자는 민주노동당이 분당되기까지 모두 세 번의 파벌갈등과 처리 방식을 분석했다. 정말 바람 잘 날 없었다. 최고 절정은 분당에 이른 세 번째 갈등이다.

"오후 3시에 시작한 회의는 세 차례의 정회를 거듭하면서 그날 밤 자정 무렵까지 장장 9시간 동안 진행됐다. 전체 5개의 안건 중에서 첫 번째 안건인 '제2창당을 위한 평가혁신안 승인 건'을 다룰 때부터 끝도 없는 공방전이 벌어져, 첫 번째 안건 중 일부만 표결 처리한 뒤 의사 정족수 부족으로 산회하고 말았다. 전체 회의 시간의 절반 정도를 종북주의 논란의 핵심 이슈인 '일심회' 관련자 제명 처분 문제를 처리하는 데 소비했다. 그만큼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대선 패배 평가와 관련해서는 "민주노총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정규직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인식됐다. 당이 몇몇 편향적 친북행위에 대해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부정적 의미의 '친북정당' 이미지가 형성되는 빌미가 됐다"는 문구는 표결 끝에 완전 삭제됐고, 17대 대선에 대해 '분명한 참패'로 평가했던 것을 '실망스러운 결과'로 완화했다. 그리고 가장 논란이 됐던 최기영 전 사무부총장, 이정훈 전 중앙위원 등 '일심회' 사건 관련자 2명의 제명 안건의 경우, 자주파 대의원들이 현장에서 발의한 '폐기' 안건이 표결에서 재석 862명 중 553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돼 원안 자체가 폐기됐다. 밤 11시경 '일심회' 건을 통째로 삭제하는 수정동의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자, 여기에 반발해 일부 평등파 대의원들이 집단으로 퇴장했고 심상정 비대위원장도 당대회장을 떠났다. 그 후 50분 정도 '북핵' 문제 부분에 관한 토론이 진행됐지만 표결 직전 재석인원을 확인한 결과 과반수인 662명보다 8명이 부족해 밤 11시 55분에 산회가 선포됐다."(244-245쪽)

이 부분을 길게 인용한 이유는 이 안에 분당에 이르게 된 모든 문제가 다 담겨 있어서이다.
저자는 따로 부록(부록이라고 해서 활자는 어찌나 작은지!)에서 장장 55쪽에 걸쳐서 세 번째 시기 주요 갈등과 처리방식을 상세히 밝혀주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 읽은 소감은 무엇일까? 핵심멤버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매체인터뷰, 기고, 성명서 등을 다 읽고 난 소회는 '모르겠다'이다. 솔직히.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옳고. 아마 그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은 그 전 숱한 소소한 전쟁이 마침내 그날 전면적인 전쟁으로 촉발한 것처럼, 자주파와 평등파의 갈등도 그동안 누적돼 왔던 것이 마침내 그날 한꺼번에 폭발했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파벌』이 분당사건만을 다뤘기 때문에 다분히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아니, 이 사람들은 창당부터 분당까지 내내 싸우기만 한 거야?"라고 할 정도로. 민주노동당 8년동안 어떤 혁혁한 전과가 있었는지는 따로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이 책만 볼 때는 '싸우다가 볼 일을 다 본' 것 같다. 

진보정당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의 패악으로부터 민주공화국과 시민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강정현장에서 진보정당의 부재를 절실히 겪었다. 종교인과 지킴이, 소수의 민주시민만 공사저지를 하면서 수난을 당할 때마다, "아, 이 자리에 진보정당만 함께 해도, 백 명만 결집해도 이 공사를 막을 수 있는데..." 그러나 지킴이들이 강정현장에서 격심하게 경찰과 충돌할 때, 진보정당은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이판사판 충돌하고 있었다. 그러니, 제 코가 석자인데 따로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나는 강정현장에서, 시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존재가치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진보정당은 늘 말한다. 노동자농민서민대중의 벗이라고. 그러나 『파벌』에 나오는 정파들의 대결에서는 결코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물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렇든 저렇든 『파벌』을 통해 민주노동당을 이룬 진보세력들, 창당부터 분당까지를 확연히 알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거의 유사한 장면을 2012년에 또 한번 목도한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뭘 배우기는 배우는 것인가?

   





[책 속의 길] 87
백창욱 / 목사. '대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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