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맞은 여든 성주 할머니와 칼갈이 아저씨의 사드 투쟁기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7.01.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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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면 도경임(78) 할머니·'칼갈이' 최영철(60) 아저씨 "촛불 주민들은 이제 가족...안 가면 더 허전"


2016년 7월 13일. 경북 성주군 주민들은 성주읍 성산포대가 사드배치 최적지로 발표된 이 날을 기억하고 있다. 오는 28일은 올해 첫 명절이자, 성주 촛불 200일째 되는 날로 200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계절이 변하고 해가 바뀌어도 성주 촛불은 계속돼 왔다. 

초전면 소성리 '사드반대' 집회에 참석한 성주, 김천 주민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초전면 소성리 '사드반대' 집회에 참석한 성주, 김천 주민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국방부 발표 직후, 수 천여명의 성밖숲 집회부터 한 여름 밤을 달궜던 군청 앞 촛불집회, 900여명의 삭발, 인간띠잇기와 새누리당 장례식 등 주민들이 있었기에 모든 것들이 가능했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25일, 20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과 함께 한 이들을 만났다.

성주 촛불과 함께 해 온 도경임(78) 할머니(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성주 촛불과 함께 해 온 도경임(78) 할머니(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초전면 소성리의 도경임(78) 할머니는 사드 철회를 위해 일상을 포기했다. 집 앞 대문에는 '사드 철회', '사드 없는 성주 땅을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집 안에는 손주들에게 주려고 모아 놓은 사드반대 배지와 파란 리본, 머리밴드가 지퍼팩에 담겨 있었다.

지난해 여름, 손주들 용돈을 위해 낮에는 롯데골프장에서 잡초를 뽑는 일을 했던 할머니는 저녁도 거른 채 매일같이 군청 앞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골프장은 우리 집과 차로 5분 거리다. 집 바로 앞에 사드라는 무서운 무기가 들어온다는데 초전면 누가 찬성할 수 있겠는가"라며 "모르는 사람들은 이미 결정났으니 그만하라고 하더라. 그럴 때마다 속이 터진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소성리 집회를 위해 집을 나서는 도경임 할머니와 '사드반대' 현수막(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소성리 집회를 위해 집을 나서는 도경임 할머니와 '사드반대' 현수막(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또 "회관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같이 화투 한번 치지 못했다. 평생 데모라고는 모르고 살았는데 사드반대 머리띠를 하고, 서울에 두 번이나 갔다 왔다"며 "자식들이 전생에 독립투사였냐고 하지만 그래도 집회 갈 때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옷도 사줬다"고 분홍색 조끼를 보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일이 있어서 군청 집회에 못가는 날에는 밤이 지겹다. 설에도 전 부쳐놓고 집회 나갈 것"이라며 "할매들 추울까봐 장작 패서 불 피워주는 청년들이 고맙다. 그런데 오히려 와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사드만 막으면 없는 소, 돼지도 잡아 잔치를 하겠다"고 웃음 지었다. 그러나 "머리 깎고 혈서 쓰면서 같이 사드반대 하던 군수가 3부지를 요청했다. 자기도 초전 사람이면서 너무한다"며 김항곤 군수에 대한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롯데골프장 이정표와 집회 참석을 위해 소성리 마을회관으로 가는 할머니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롯데골프장 이정표와 집회 참석을 위해 소성리 마을회관으로 가는 할머니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할머니는 이웃에 사는 여모(80) 할머니와 50년 지기 짝꿍이다. 벽진면에서 초전면으로 시집 온 인연으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집회에 가거나 일을 할 때, 밥을 먹을 때도 늘 함께 한다. 이날 오후 집회 참석을 위해 마을회관에 가는 동안에도 "사드반대 현수막을 문 앞에 하나 더 달아야 겠다", "문 거기 말고 담벼락 쪽에 달아라"며 주고받았다.

여 할머니는 "사드부터 군공항, 폐기물매립장 더럽고 위험한 것은 성주에 다 들어온다"며 "첫째 아들이 성주군 공무원이다. 아들은 자기 일 하고, 나는 내 집 앞에 사드 오는걸 막기 위해 매일 집회에 나간다"고 말했다. 두 할머니는 짝꿍 답게 올 한해 소원으로 '자식 건강'과 '사드 철회'를 꼽았다.

'칼갈이 아저씨' 최영철(60)씨가 사드배치 결사반대 현수막을 들고 있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칼갈이 아저씨' 최영철(60)씨가 사드배치 결사반대 현수막을 들고 있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칼갈이 아저씨'로 알려진 최영철(60)씨도 성주 촛불을 지킨 이들 중 한 명이다. 지난 여름부터 옷과 오토바이에 '사드배치 결사반대' 손피켓을 붙이고 매일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점퍼와 털모자에 '성주 사드반대' 문구를 새겼다.

최영철씨는 시간이 날때마다 집회에 쓰일 촛불을 분류한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최영철씨는 시간이 날때마다 집회에 쓰일 촛불을 분류한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대구에서 40여년을 살다 2005년부터 어머니 고향인 성주에 들어온 그는 "주민들한테 아무 말 없이 사드를 배치한다고 해 어찌나 화가 나던지 황교안 총리가 왔을 때 물병을 두 개 던졌다"며 "최적지가 초전 롯데골프장이 됐지만 그 곳도 성주다. 이 땅에서 물러날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오래 전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살고 있는 최씨는 성주 촛불로 수 많은 가족을 얻게 됐다. "매번 보이는 사람이 안 보이면 걱정하게 되고, 나도 못가게 되는 날이 있으면 혹시 날 찾는 사람이 있나 싶어 마음이 쓰인다. 늦게라도 들러야 잠이 잘 온다"며 "한솥밥을 먹지 않아도 전부 얼굴을 익혀 이제는 형제지간 같다"고 덧붙였다.

최영철씨의 오토바이에는 200일째 '사드배치 결사반대' 손피켓이 붙어있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최영철씨의 오토바이에는 200일째 '사드배치 결사반대' 손피켓이 붙어있다(2017.1.2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지난 8월, 미국에서 성주 촛불 생중계 영상을 보던 한 주민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며 최씨에게 티셔츠를 보냈다. 그는 "여름에 옷을 보내준 이가 얼마 전 겨울용 점퍼도 보내왔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며 "성주 땅과 후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젊은 엄마들도 대단하다. 그들이 있어서 성주 촛불이 지금까지 계속된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특히 그는 백악관 10만서명 달성을 위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전국을 누볐다. 생업을 위한 오토바이에는 서명방법과 사드 무용성을 알리는 전단지를 싣고, 대구경북 곳곳을 다니며 주민들에게 서명 참여를 호소했다. 그를 비롯한 5만의 성주군민이 힘을 모아 10만이 넘는 이들의 서명을 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사드는 북핵 방어에 필요하다"는 답변이었다. 그는 "한국정부의 답과 똑같았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고 했다.

성주 주민 1,500여명의 사드철회 촛불집회(2016.8.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성주 주민 1,500여명의 사드철회 촛불집회(2016.8.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지면서 성주 사드배치는 어느덧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이들을 비롯한 성주 주민들의 촛불은 사드가 철회될 때까지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성주읍내 풍물패 길놀이를 시작으로 200번째 사드반대 촛불집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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