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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향한 긴 여정, 촛불·탄핵에서 정권교체까지
국정농단 사태→태블릿PC 보도→대통령 첫 사과→촛불집회·시국선언
국회 탄핵안 가결→헌재 '박근혜 파면'→조기대선→10년만에 권력교체
2017년 05월 10일 (수) 03:16:28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ovie@pn.or.kr

   
▲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당선인(2017.5.5.포항 중앙상가길)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촛불에서 장미대선까지. 국정농단 사태로 시작된 탄핵 열차는 이변 없이 조기대선 종착지에 도착했다. 촛불혁명은 투표혁명으로 완성됐다. MB에서 박근혜까지. 국민촛불은 10년만에 '정권교체'에 마침표를 찍었다. 2백여일 어지러운 시간을 지나 새 시대를 향한 긴 여정이 다시 시작됐다. 

국정농단 서막, 태블릿PC 보도와 대통령의 첫 사과


서막은 박 대통령 최측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로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중순이었다. 비선실세가 대통령 연설문뿐 아니라 국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비선실세가 미르·K스포츠재단 등을 운영하며 대통령과 함께 재계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보도가 앞다퉈 터져나왔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부는 코너에 몰렸다. 2016년 10월 24일 <JTBC>의 역사에 남을 태블릿PC 보도였다. 최씨 태블릿PC는 의혹을 사실로 못박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었다. 다음날 대통령의 첫 사과. 모든 것을 인정하며 '순수한 마음'에서 그랬다는 대통령의 성급한 변명은 국민을 아연실색케했다.

   
▲ 국정농단 사태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 자료 출처.리얼미터

게이트는 정권 전방위로 번졌다. 문고리 3인방,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 장관 등 실세들의 비선 묵인과 삼성을 포함한 재벌기업들의 뇌물수수 의혹, 문화계 블랙리스트, 세월호 7시간 행방 비밀, 언론 탄압, 비선실세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인사 개입 등 비리의 고리는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왔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후 처음으로 20%대로 추락했다.

광장의 촛불...봇물터진 '하야' 시국선언 "이게 나라냐"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쏟아져나왔다. 고교와 대학가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는 시국선언 봇물이 터졌다. 지난해 10월말 무도한 정권을 비판하기 위한 촛불정국의 시작이었다. 박근혜 일가가 장악했던 경북 경산시 영남대에서도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온 국민은 만추를 거리에서 보냈다. 어둠이 내리면 전국의 길거리는 촛불로 빛났다. 2008년 광우병 사태와 2011년 한미 FTA 반대 집회에 이은 최대 촛불이 전국에서 타올랐다. '이게 나라냐' 국민들의 성토는 박근혜 하야로 모아졌다.

   
▲ 1차 대구시국대회(2016.11.5.대구 동성로 2.28공원 옆)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박근혜 퇴진 6차 대구시국대회(2016.12.10.국채보상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영남대 교수들과 학생들의 박근혜 퇴진 시국선언(2016.11.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근혜의 정치적 고향이자 보수여당 안방, 보수의 텃밭인 대구 시민들도 국정농단에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대구지역에서는 지난해 11월5일 동성로 2.28공원 옆에서 처음으로 촛불이 켜졌다. 첫 참석자는 3천여명, 2차는 5천여명, 3차는 2만여명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숫자는 늘었다. 촛불은 갈수록 빛을 더했다. 물러나지 않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국민들은 긴 싸움에 들어갔다. 가을, 겨울을 지나 연말 송박영신(送朴迎新)에 새해도 거리에서 촛불을 든 이들은 오직 정의와 진실을 원했다.

대통령은 거듭 사과했고 최순실은 구속됐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국정농단의 새 전모가 밝혀졌고 정부는 변명에 급급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대통령 지지율 5%. 추락에는 날개가 없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이어 촛불은 청와대로 향했다. 11월 초였다.

비선실세 대리처방, 청와대 비아그라 약물 구입, 미용시술 등 소문으로만 여겨진 의혹이 속속 사실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100만 촛불에 둘러싸였다. 대구에서도 5만 최대 촛불이 타올랐다. 사면초가. 정부와 국회는 특검에 동의했다. 정권 실세들과 재계총수들을 겨눈 수사가 시작됐다. 박근혜는 현직 대통령으로 첫 '피의자' 신분의 수모를 겪었다. 흔들림 없는 촛불 열기는 국가원수를 겨냥했다. 박 대통령은 3번째 사과에 나섰지만 무고함만 주장했다. 촛불은 200만에 육박. 청와대는 고립됐다.

국정조사·특검과 국회 탄핵, 구속되는 실세와 궤변

   
▲ '정의'를 외치며 새해에도 타오른 12차 대구 촛불(2017.1.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가 본격화됐다. 대통령 퇴진을 놓고 여야 공방이 오갔다. 새누리당은 분열됐고 지난해 12월9일 결국 국회는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234명의 압도적 찬성이었다. 박 대통령은 검찰의 현장조사를 거부했다.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12월22일부터 탄핵 심문기일이 시작됐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쪼개졌다. 탄핵에 찬성한 30여명이 탈당했다. 구치소·감방청문회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 변호인단의 막말과 궤변에 가까운 언사가 종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도 촛불은 꺼질줄 몰랐다. 박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국민 목소리가 전국을 뒤덮었다.

   
▲ 탄핵안 가결 후 대구 촛불집회에서 '하야장미'를 든 시민들(2016.12.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해를 넘겨 탄핵정국은 계속됐다. 촛불 국민은 세월호 1,000일을 기렸다. 박근혜는 내려가고 진실을 인양하라는 원성이 빗발쳤다. 1월 중순. 유신(維新)의 상징 '왕 실장' 김기춘과 '대통령 여자'로 불린 조윤선이 구속됐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영장 기각은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1월25일. 박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다 한 보수 인터넷매체와 단독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랫동안 기획되고 관리돼 온 것 같다'는 대통령의 황당한 주장이 나왔고 곧 태극기를 든 친박집회가 촛불에 맞불을 놨다.

   
▲ 탄핵정국 당시 서문시장 화재현장을 찾은 박근혜 전 대통령(2016.12.1)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태극기.성조기를 들고 대통령 파면에 불복하는 친박들(2017.3.17.대구)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월 탄핵 심판이 10차례 진행됐다. 정치권은 조기대선 채비에 나섰다. 이 가운데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른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민심과 어긋나는 행보로 비난을 사다 출마포기 선언을 했다. 설 명절이 지나고 박 대통령은 다시 검찰 대면조사를 거부했다. 증인들도 출석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국정농단 사태로 재계1위 삼성 총수가 구속되는 첫 사례였다. 2월28일 특검 수사가 종료됐다. 대통령 변호인단의 '무죄' 변호는 계속됐다.

헌재, 전원일치 "박근혜 파면"...촛불의 승리 "적폐청산"
 
   
▲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대통령 박근혜 파면 / 사진 출처.JTBC 화면 캡쳐
   
▲ 헌재 박근혜 파면 후 '국민이 이긴다' 피켓을 든 대구 시민들(2017.3.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두 번째 탄핵소추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는 국민주권, 법치주의 위반, 권한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위반, 뇌물 각종 형사법 위반 등 모두 13가지. 3월10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 후 81일만에 헌재는 8명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파면'을 결정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 헌법의 명령 앞에선 박 대통령은 결국 국정농단사태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겨울을 견딘 촛불의 승리. 광장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봄을 맞았다.

박 대통령 정치적 고향 대구에서도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민주주의를 수복한 시민들은 눈물을 쏟았다. 3월11일 동성로 마지막 촛불집회에서는 민주주의 축제가 열렸다. 주말 촛불집회는 끝났다. 하지만 촛불동력은 촛불혁명에 이은 새로운 숙제를 정치권에 던져줬다. '적폐청산'이었다. 4대강, 사드, 한일 위안부 합의, 원전, 블랙리스트, 국정교과서, 개성공단 등 '이명박근혜' 10년간 쌓인 이슈들이었다.

   
▲ 탄핵 인용을 기뻐하는 대구 시민들(2017.3.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축 탄핵 국민승리' 마지막 촛불집회에 참석한 부녀(2017.3.11.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청와대 떠난 '박근혜' 구속...4.12재보선과 조기대선


탄핵 인용 이틀만에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비웠다. 곧 검찰에 소환돼 첫 조사를 받았다. 구속을 외치며 촛불이 다시 광장에 등장했다. 3월31일 파면된 전 대통령은 결국 구속됐다. 감옥에 갇힌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었다. 사필귀정. 시대정신에 의해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청와대 권력교체 고삐가 당겨졌다. 5월9일. 제19대 대통령선거 날짜가 확정되며 조기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대선 전 민심 바로미터인 4.12 재보선 막이 올랐다. TK에선 친박 핵심인 김재원 전 의원이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에서 당선돼 다시 금배지를 달았다. 새누리당에서 이름만 바꾼 자유한국당은 30개 선거구 중 모두 11곳에서 당선돼 재개의 발판을 마련했다. 촛불혁명에 적신호가 켜졌다.

   
▲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문·홍·안·유·심, 5자구도의 대선


정당들은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국민의당은 안철수, 바른정당은 유승민, 정의당은 심상정 후보로 대권주자를 확정했다. 4월17일부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됐다. 22일간 5자구도는 깨지지 않고 유지됐다. 여론조사에서문재인과 안철수가 양강구도를 이루다 곧 문 후보의 1강 홍-안 후보의 2중, 유-심 후보의 2약 체제로 굳어졌다.

적폐청산과 국가대개혁을 내건 문 후보는 '촛불 적자'를 내세우며 전국을 누볐다. 선거운동 첫날과 마지막날에는 보수의 텃밭, 박근혜의 고향 대구를 찾았다. 민주당 역사상 처음이었다. 30여년만에 대구에서 정통야당 신분으로 금배지를 단 김부겸 국회의원을 필두로 무소속에서 복당한 홍의락 의원, 조응천, 이재정 의원 등 대구출신들과 대학가, 공단, 민주화 성지를 돌며 대구경북 변화에 호소했다.

홍준표ㆍ안철수ㆍ유승민 후보는 보수표를 놓고 경쟁했다. 한 집에서 갈라진 홍ㆍ유 두 후보는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자신이 '보수의 적자'라며 쟁탈전을 벌였다. 홍 후보는 색깔론, 반(反)노동 공약에 막말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보수표심을 파고 들었다. 유 후보는 '보수의 품격'이 떨어진다며 홍 후보와 각을 세웠다. 안 후보는 문 후보를 '패권'이라고 규정하며 자신이 미래의 정치를 열 주인이라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노동이 당당한 나라라는 슬로건으로 진보정치의 부활을 꾀했다.

   
▲ 포항 문재인 후보 유세에 몰린 지지자 3천여명(2017.5.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꽃다발을 든 문 후보(2017.5.5.포항 중앙상가길)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촛불의 선택은 '10년만에 정권교체'...새 시대 향한 긴 여정

5월4~5일 1천1백만여명의 국민들이 사전투표를 하고 9일 본 투표가 시작됐다. 결과는 10년만에 정권교체. 3기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정농단 사태의 신호탄은 200여일만에 국가권력을 바꿨다. 촛불민심은 문 후보를 택했다. 광화문 대통령을 선언한 문 후보는 '나라다운 나라', '원칙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겠다며 청산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어둠을 밝힌 촛불, 새 시대를 향한 긴 여정이 투표혁명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열었다. '문재인 정권'의 시작이다.

   
▲ 1~17차 대구시국대회 / 사진.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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