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건 오직 자연...2012, 환경은 최악이었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12.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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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대구환경운동연합) / "현장에는 늘 문제가 있다. 언론은 외면하고 있다"


4대강 사업,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청도 송전탑 공사, 영주댐과 영양댐 건설, 대구4차순환도로(앞산터널) 공사 등 올 한 해 동안 대구경북에서 일어난 환경 분쟁 현장에는 언제나 정수근(41)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이 있었다.

대부분 '현장'에서 활동하는 그는 만날 때마다 등산복 차림에 야구 모자와 장화를 신고 있다. 한쪽 어깨에 메가폰을 메고 기자들에게 문제점을 설명하며 몇 시간이고 현장을 다닌다. 오히려 기자들이 "힘들다. 피곤하다"고 할 정도다. 덕분에, '김에 여사'라는 별명도 생겼다. "여기 온 김에 다른 곳도 가보자"는 말을 자주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 국장은 환경 분쟁과 관련해 많은 시간을 현장에서 보낸다. 새벽 4-5시에도 전화가 오면 현장으로 달려 나간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2012.12.27.중구 삼덕동 한 카페)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2012.12.27.중구 삼덕동 한 카페)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 해의 끝에서 정 국장은 "2012년은 환경적으로 최악의 한 해였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녹조대란과 물고기 떼죽음, 홍수피해, 죽어간 동.식물들, 여기에 불산사고로 인한 노동자 사망과 송전탑 공사로 삶이 망가진 청도 각북면 삼평리 주민들"이 그 이유였다. "이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새해가 시작되면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며 "정말 많이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정 국장은 27일 오후 대구 중구 삼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이 같이 말하며 2012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현장에는 늘 문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라며 "4대강 사업 하나만 봐도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늘 생기더라"고 했다. "덕분에 욕도 먹고 맞기도 하고 죽을 고비도 넘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특히,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욕은 "빨갱이"라며 "청도 송전탑 공사에 동원된 용역직원들은 욕설은 기본이고 무력까지 행사해 잠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색깔론은 정치뿐만 아니라 환경 분야에서도 이용하더라"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빨갱이'라 낙인찍어 반대자를 잠재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폭력은 무섭지 않다"며 "오직 두려운 것은 자연"이라고 했다. 

청도 송전탑 용역직원에 밀려 실신한 정수근 국장(2012.7.13.청도대남병원)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청도 송전탑 용역직원에 밀려 실신한 정수근 국장(2012.7.13.청도대남병원)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는 지난 11월, 4대강 사업 현장 조사 중 물에 빠졌던 아찔한 순간도 털어놨다. 당시 정 국장은 창녕함안보 주변 남지 대교에 '골재채취선이 박혀 있다'는 제보를 듣고 조사를 나갔다. "제방 주변이 많이 침식돼 해안선처럼 변해 있었다"며 "물가를 따라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땅이 허물어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늪에 빠진 것처럼 물에서 나갈 수 없었다"며 "일행도 멀리 있어 구조를 요청하지 못했다. 죽는 줄 알아 정말 아찔했다"고 말했다.

또, 가장 무서웠던 장면으로는 "낙동강 녹조대란 당시 강바닥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던 녹조"를 꼽았다. "녹조는 아침에 보이지 않다가 햇볕이 뜨거워지면 늘어난다"며 "물에서 끈적한 초록색 녹조가 기하급수로 증식하는 장면은 공포영화 한 장면"이라고 털어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얼굴도 있다. 영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내성천 주변 '두월슈퍼' 주인 할머니다. "곧 수몰될 위치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셨다"며 "수몰될 것을 알면서도 국가가 하는 일이라고 화도 내시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시는 순박한 시골노인 모습이 너무 슬펐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삼평리 주민들에게 응원의 말을 하고 있는 정 국장 (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삼평리 주민들에게 응원의 말을 하고 있는 정 국장 (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때문에, 그는 "언론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은 문제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언론이 현장에 와 보도를 하고 해석을 해야 한다"며 "시민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기억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 따른 피해는 해마다 심각해지고, 불산, 원전 같은 국가적 환경 문제까지 제기돼도 수많은 언론들은 외면하고 있다"며 "문제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환경 분야 0점 이명박 정부는 언론까지 통제해 시민들이 정보를 얻을 길목까지 차단했다"며 "녹조, 물고기 떼죽음, 불산사고는 공중파에서 잘 다뤄지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문제는 시청자들과 독자들의 '피로도'를 이유로 잘 보도하지도 않고, 심지어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를 해도 방송 여부를 놓고 데스크와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며 "취재한 내용대로 나오지 않거나 일주일, 열흘 뒤 보도되기도 했다"고 허탈해 했다.

유속을 이기지 못해 무너진 달성보 제방을 뛰어가는 정수근 국장(2012.8.28)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속을 이기지 못해 무너진 달성보 제방을 뛰어가는 정수근 국장(2012.8.28)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어, "과거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심해졌다"며 "언론이 중요한 사안을 외면할 때는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게다가, "과거에는 내가 말한 그대로 보도가 됐었는데 이제는 기자들이 발언 수위 조절까지 요구하더라"며 "속상하지만 순화해서 말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보도가 된다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자들을 탓하지는 않는다"며 "'취재해봐야 보도도 못할 건데'라는 패배의식과 데스크를 향한 자기검열 때문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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