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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열정이 숨쉬는 대구 근대 미술로의 설레는 여정
김지석 / 『근대의 아틀리에 (대구 근대미술 산책)』(김영동 저 | 한티재 | 2011.04)
2011년 07월 01일 (금) 09:27:35 평화뉴스 pnnews@pn.or.kr

미술평론가 김영동의 근간 ‘근대의 아틀리에’는 ‘대구 근대미술 산책’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대구의 여명기 미술을 살핀 책이다. 1900년대 초를 전후로 한 시점에서부터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고난과 혼란기를 거쳐 1950~6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 출신 작가들과 대구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흔히 대구 근대 미술이 한국 근대 미술의 압축판과도 같다는 말을 하는데 이 책을 보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 근대 미술의 발전기에 나타난 인상파, 야수파 등 서양 미술의 다양한 사조들과 이를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활동들이 대구에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자토사, 영과회, 향토회 등 중요한 동인 활동이 대구에서 펼쳐졌고 천재적이고 뛰어난 작가들이 대구를 발판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대구는 구한말과 일제 시대에 서문시장으로 상징되는 상업의 중심지였고 산업화 시대에는 섬유공업의 중심지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러한 이미지 한 켠에 대구는 미술의 깊은 숨결을 간직한 예술의 도시로 존재해 왔다. 예술이 발전하려면 경제적 풍요의 토대가 중요한데 대구가 바로 그러했다. 근대기에 대구의 화가들은 부유층 자제들이 많았고 이들은 일본 유학 등을 통해 세련되고 아름답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했다. 이들은 또 서양 미술 사조를 받아들이는 데만 그친 것이 아니라 향토성과 한국의 전통미를 도입하는 등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열심이었다. 한국 근대 미술의 천재 화가 이인성과 걸출한 화가 이쾌대 등이 대구를 무대로 활동했고 다른 많은 뛰어난 화가들도 대구에서 뜨거운 예술혼을 불살랐다. 오늘날 대구 미술은 이러한 역사를 발판 삼아 자연주의 계열의 구상미술 전통과 모더니즘 계열의 추상미술 이라는 두 축의 흐름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근대의 아틀리에’는 잊혀져가는 대구 근대 미술과 옛 화가들을 찾아가는 여정이면서 한국 근대 미술의 맥락을 되짚어보는 탐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시대감각의 출현’, ‘양화의 시대 개척자들’, ‘예술로 빚은 일상’, ‘근대미술 황금기의 표현’, ‘전후의 생활과 정서’, ‘모더니즘의 실천과 추상미술의 전개’ 등 6개의 장으로 구분돼 있다. 시간적 흐름과 미술 발전의 시기적 특징, 혹은 시기를 넘나드는 주제와 경향 등에 따른 구분으로 대표적인 작가들과 작품들을 통해 대구 미술을 조명하고 있다. 한 작가가 다른 장에 다시 등장하기도 하며 특정 시기와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 소개되지만 그 작가의 작품이 이후에 달라지는 과정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지은이의 날카로운 작품 분석이 눈길을 끈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전통적 수묵 방식이 남아있거나 의도적으로 이용한 점을 설명하고 한 작품 안에 다양한 기법이 혼재하거나 발전적 과정에 있는 기법들도 알려준다. 미술평론가의 예리한 시각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알기 어려운 점들이다. 작가들의 우정과 사제 관계,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뇌와 삶의 다양한 편린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함께 다루어진다. 책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 김영동 저| 한티재 | 2011.04
제 1장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시대감각의 출현’에서는 석강 곽석규, 석재 서병오, 두 서화가와 이여성, 서동진, 박명조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석강과 석재의 간결하고 활달한 서화 작품과 이를 계승한 이여성의 수묵담채화 ‘사계산수’, 박명조의 ‘겨울 풍경’ 등이다. 이여성과 박명조는 대구에서 최초로 열린 전시회의 출품 작가들로 기념비적 인물들이며 박명조의 ‘겨울 풍경’은 간결하고 단순한 채색과 묘사로 한 폭의 산수화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2장 ‘양화의 시대 개척자들’에서는 서동진과 최화수, 김호룡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1930년대 서동진의 ‘팔레트 상자 속의 자화상’과 최화수의 ‘바느질하는 여인’은 다른 많은 화가들의 수채화 작품과는 달리 당시로서는 드물게 유화로 그린 그림이며 서동진의 ‘공장’은 따스한 햇볕이 잘 표현된 인상주의 계열의 작품이다.

3장 ‘예술로 빚은 일상’에는 손일봉, 권진호, 김용조, 서진달, 배명학, 주경, 최근배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손일봉의 1935년작 ‘소녀’의 경우 유채화이지만 붓놀림은 일필휘지의 전통적 기법을 사용한 작품이고 50~6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풍경’은 산란하는 빛의 효과에서 벗어나 견고하고 영속적인 상을 얻으려고 노력했던 폴 세잔의 조형 이념에 충실한 작품이다. 배명학의 1969년 작품 ‘설경’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서 벗어나 왜곡하거나 축약함으로써 화면에 공간을 상상하거나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하는 표현주의적 작품이다. 4장 ‘근대미술 황금기의 표현’에서는 이 장의 제목에 걸맞게 1930년~40년대 이인성과 이쾌대, 김수명의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강렬한 색채와 경쾌한 필치로 수채화의 새 경향을 제시한 초기작 ‘계산동 성당’부터 향토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념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가을 어느날; ’경주의 산곡에서‘ 등 절정기의 이인성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상황‘, ’운명‘,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등을 통해 이쾌대가 서양 미술의 기법을 뛰어넘어 우리 전통서화의 의고적이고 평면적인 채색법과 선묘적 특징을 결합, 상상적인 주제를 통해 시대의 아픔과 예술가의 사명감 등을 표현한 것은 무척 인상적이다. 김수명의 ’유희‘, ’정원‘ ’오후‘ 등은 암울한 시대에서 벗어나 낙원과 평화를 꿈꾸는 작가의 풍부한 서정성을 느끼게 해준다.

5장 ‘전후의 생활과 정서’에서는 6.25 전쟁 때 대구에 정착한 강운섭의 작품들과 전선택의 다양하게 변화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란의 상흔 등을 인상 깊게 표현한 김우조의 선구적인 목판화 작품들도 이 장에서 만나게 된다. 6장 ‘모더니즘의 실천과 추상미술의 전개’는 지적이고 세련되며 마티에르를 중요시한 정점식의 추상 작품들과 격렬한 표현으로 고뇌와 열정을 드러낸 장석수의 앵포르멜 회화 등을 소개한다.

이 책을 완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작가들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데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작품들 역시 구해 보기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2009년 가을, 대구문예회관에서 성공리에 열렸던 ‘대구의 근대미술’ 전시회의 책임 큐레이터를 맡았는데 당시의 활동을 바탕으로 매일신문에 1년 넘게 비슷한 주제의 글을 연재한 것이 책 발간의 계기가 됐다. 환경적 제약이 적지 않았지만 그는 성실하게 발품을 팔아 생존 작가들과 고인이 된 작가들의 유족을 만나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작품들을 구해 보았다.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이인성의 작품들은 공개를 꺼려 구해보기 어려웠지만 미술관측을 설득해 작품 이미지를 제공 받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글솜씨도 눈길을 끈다. 그는 신문 연재 당시 자신의 글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여러 번 수정을 요청해 올 정도로 절차탁마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의 이러한 자세는 원고 담당자들을 본의 아니게 괴롭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글로 신문 지면을 빛내게 했다. 책 원고를 쓸 때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결국 ‘근대의 아틀리에’는 다양하고 정갈한 반찬이 가득한 맛깔스펀 상차림과도 같은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의 사료적인 가치도 평가받아야 한다. 대구 근대 미술사의 중요 작가들과 작품들을 다룸으로써 한국 근대 미술사를 풍부하게 복원하는 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미술계 관계자들과 미술학도들은 물론 국내 미술계 관계자들과 미술학도들이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 종사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미술에 관심 있거나 교양을 쌓기를 원하는 일반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책 속의 길] 24
김지석 / 매일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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