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도(道)를 실천한 여인, 장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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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 『안동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김서령. 2010)


철저한 남성 중심 사회였던 조선시대. 당시 가치관을 뛰어넘는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에겐 경서를 읽고 붓을 잡고 시를 쓰는 문재가 넘쳤다. 그는 뛰어난 여성을 백안시하는 시대의 벽 앞에 고뇌했다.

하지만 그는 그 벽을 뛰어넘었다. ‘육경의 주석이 하늘의 말씀이라면 곡식과 소채와 육고기와 물고기 안에 더 생생한 하늘의 말씀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성이 쓴 동양 최초의 요리서로 평가 받는 ‘음식디미방’을 남겼다.  ‘정부인 안동 장씨’로 알려진 장계향(1598~1680)이다.
 
김서령 | 푸른역사 | 2010.3
김서령 | 푸른역사 | 2010.3
‘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는 장계향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장계향은 재령 이씨인 이시명(1590~1674)과 혼인해 아들 여럿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학자로 키웠고, 셋째아들 이현일이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정부인 교지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시문에 능했다. 초서를 잘 써 당대의 명필인 청풍자 선생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고 ‘학발시’ ‘경신음’ ‘소소음’ ‘성인음’ 등의 시와 포효하는 호랑이를 그린 ‘맹호도’ 등을 남겼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열댓 살 이전의 것으로 이후엔 특별한 기록이 없다. 평생 글재주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셋째 아들 현일이 어머니의 행적을 기록한 ‘정부인안동장씨실기’가 전부다.

저자는 장계향의 삶을 되살리기 위해 그의 아버지와 남편, 아들 등 주변사람들의 삶을 조각조각 모았다. 그랬더니 장계향의 삶이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성의 능력이 발휘될 수 없었던 시대에 평생 배움을 실천했고, 음식을 통해 도(道)를 말하고자 했던 ‘여성군자’의 모습이었다.

책은 소설과 전기의 중간 형태를 하고 있다. 작가는 계향이 10대 시절 쓴 시를 근거로 상상력을 보태 그 탄생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심정으로 이런 음식들을 만들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통해 그의 삶 중간 중간에 음식 이야기와 사상을 집어넣었다.

장계향이 20대 초반이던 어느 날이었다. 부엌에서 두 아들의 음성을 들으며 마름을 무치던 그는 신선한 물내를 깊이 들이켜며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물에서 자란 것에는 물내가 난다. 모든 나물은 고유의 향취를 지니고 있다. 토양의 기운을 머금고 있으며 대기의 기운을 머금고 있으며 태양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 사람은 음식을 통해 이 흙과 바람과 불의 기운을 몸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 기운으로 지금 저 상일과 휘일처럼 말을 배우고 걷고 뛰고 생각을 한다.…좋은 기운을 품은 음식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좋은 기운을 품자면 길러내는 땅과 물도 좋아야 하지만 그걸 만지는 내 마음이 좋고 밝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 숱한 간난 속에서도 며느리만 보면 흡족해 하시는 사랑의 아버님에게도 이 신선한 물내를 올리리라. 봄향기에 아버님이 제발 잃었던 입맛을 되찾았으면….’

계향은 음식을 만들고 남편을 건사하고 자식을 키우는 것이 단순한 노동이나 아녀자의 숙명이 아니라 자연이 준 생명을 인간의 생명으로 전환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서서히 깨달아갔다.

당시 여자들이 하는 부엌일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가족이 먹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봉제사와 접빈객은 당시 조선 사회 예학의 핵심이었다. 그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여자의 도’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유과를 만들어 소쿠리에 담던 계향은 어린 여종에게 말을 건넨다.

“인간을 교화하는 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도학이니 심학이니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원리로 꿰뚫을 수 있다. 공맹의 가르침이나 성인들의 학문 모두가 이 큰 원리를 벗어나지 않느니라. …쇠여물을 끓이는 것과 제사에 쓸 탕을 끓이는 것은 실제로는 아주 다르지만 끓이는 원리는 한 가지다. 음식에도 똑같은 원리가 있단다. 그것은 말이다, 사람을 복되고 이롭게 만드는 것이란다. 그게 바로 인(仁)이고 도(道)이나라.”

50대 시절 계향은 아들 현일 앞에서 임금과 신하의 법도를 이야기하면서는 이런 예를 들었다.

“어촌에서 바다 것을 먹는 법과 내지의 그것은 다르다. 갯가에서는 대합을 꺼내어 초를 쳐서 날것으로 먹는다. 그러나 내지에서는 대합에 기름장을 발라 석쇠에 구워 먹느니라….”
현일은 침묵했다. 
“이것은 각기 재료의 상태에 다라 드러내는 방식이 같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요리의 근본은 같은 것 아니겠느냐. 알아듣느냐?”
“이치는 같으나 현상은 같지 않다. 혹은 현상은 달라도 이치는 한 가지다. 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 현일아. 세상 진리가 어렵고 복잡한 듯 보여도 중심이 되는 근본은 참으로 단순한 것이니라. 가장 중요한 그것을 잊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계향은 이렇게 자식을 가르치고 가족을 건사하는 일을 완벽히 해냈다. 그러나 계향이 오로지 어머니와 아내로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계향의 위대성은 평생에 걸친 실천에 있다”고 봤다.

그는 당대의 가치관을 뛰어 넘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가족이 석보로 분가해 나오면서, 계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상수리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시아버지의 구휼사업을 계승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제 한 집의 안주인이 된 계향이 맡아야 할 마님으로서의 도(道)였다. 사람마다 제각기 앉은 자리에서 도와 인(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계향은 믿었다.

뿐만 아니다. 굶주린 이들에게 적선을 할 때도 받는 사람이 마음 상하지 않게 미리 똑같은 주머니를 만들어뒀다가 정성스레 양식을 담아 건넸다. 받는 이들에게 자신이 얻어먹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귀한 대접을 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각성케 하려는 것이었다. 계집종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는 손을 따고 코를 빨았다. 귀한 자라탕을 고아 손수 숟갈로 떠먹였다. 그의 의식 속엔 종과 상전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1년 전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감동은 유난스러웠다. 어린 계향의 이야기는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음식을 조리하는 것에 빗대 풀어낸 그의 철학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했고,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했다. 수많은 어머니들의 삶에 대해서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이야기는 많은 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덧씌워져 있다. 확대해석한 부분도, 부풀려 미화된 부분도 적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듯싶다. 그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할 가치를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책 속의 길] 23
김도훈 / 대구일보 문화체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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