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절절이 그들의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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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규 / 소외된 삶의 현장...『길에서 만난 세상』


대학시절, 그나마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신청했던 사회학 수업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공부할 생각보단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기에 따로 공부를 더 하지 않고도 평소에 즐겨 보던 자료들과 접목해서 과제도 시험도 잘 치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수업을 듣던 어느 날, 발표수업 할 과제가 자유주제로 주어졌습니다. 저와 같은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한총련 이적규정”, “국가보안법”과 같은 주제로 몰리더군요. 당장 주변에 한총련 이적규정으로 인한 수배자들이 있었고, 그 경험이 있었던 사람도 그 수업을 듣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각자 나름의 생각으로 과제를 작성했고, 그 결과물들을 돌아가며 발표하는 시간. 한 학생이 준비해 온 과제물 앞에선 편하게 숙제할 생각만했던 스스로가 좀 부끄러워지더군요. 폐품을 팔아 생활을 꾸려 가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으셨는데, 직접 그분들을 따라 다녀보기도 하고, 집에도 찾아가보고 하면서 실제로 생활은 어떻게 하시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정리를 했더군요.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평소에 마주치기는 매한가지였을텐데. 자주,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며 더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정작 “사회문제”라는 화두 앞에 내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소외된 이웃”은 없었던 스스로의 모습이 비교되더군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다랄까요. 좀 더 고민을 넓혀보니, 여느 연대집회에서도 비슷한 마음가짐이었지 않나 싶더군요. 그 사람의 처지를 가슴 절절히 이해하려는 애정과 관심보다는 그저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더군요.
 
박영희, 김윤섭 저| 우리교육 | 2006
박영희, 김윤섭 저| 우리교육 | 2006
대학을 졸업하고, 뒤늦게 책에 대한 욕심이 생겨 논어, 맹자부터 소설까지 가리지 않고 책을 읽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회과학분야 도서들은 손에 잡히는대로 읽어버리다 우연히 집어들게 되었던 <아파서 우는게 아닙니다>, <길에서 만난 세상>은 대학시절 그 느낌에 더한 많은 것을 느끼게해주더군요.

그래서 일까요. 원래 선물을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이 책들을 접하고 난 뒤엔 선물할 일이 생기면 먼저 찾게 되더군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든지 간에 소외된 삶의 현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길에서 만난 세상은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라는 부제로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어린 엄마들, 노인 등 총 17편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알고 있었던 이야기라 하더라도 절절하게 느껴보진 못했던 이야기. 혹은 잘 몰랐었고, 관심이 없었을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손가락이 없고 발가락이 없다 뿐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닳아지고 없을까. 아무려면 나병이 암보다 더 무서울까. 암은 유전될 수 있지만 나병은 그렇지 않거든. 감염만 해도 그래. 아주 극소수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의사, 어느 간호사가, 그것도 몇 십 년씩 붙어 있겠어?"
  - 어느 한센인


이 책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도 분명 대한민국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임에도 법과 관심의 울타리에 들어있지 못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세상의 진보란 것도 이런 사람들이 약자라서 소수라서 불이익을 받는 현실을 극복해야 가능한 것일테죠.
최근 홍대 청소아주머니들의 값진 승리도 약자에 불과했을 그들의 “편”에 함께 설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동구청에서는 청소아주머니 휴게공간이 개선되었습니다. 담배 한 대 피우러 옥상으로 가던 길에 계단을 닦고 계셨던 아주머니, 사무실 청소를 하러 왔다 갔다 하셨던 아주머니. 매일같이 마주치면서도 “고생하십니다.”라는 말 한마디 정도만 건넬 뿐이었는데. 어느 날, “지하 1층에 휴게공간이라고 있던데, 어때요? 쉴만하세요?”라고 여쭤봤습니다. 이 짧은 질문에 하소연에 가까운 대답은 참 길게 돌아왔습니다만 요지는 “쉴만한 곳이었으면 좋겠다.”였습니다. 담당 부서에 개선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니, 그전부터 환경개선 계획이 있었다며 일사천리로 진척이 되더군요. 3명, 4명 청소아주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편”에서 이야기를 했기에 가능한 변화였겠죠.

개인적으로는 월간 인권에 연재되고 있는 “길에서 만난 세상” 꼭지는 꾸준히 챙겨봅니다. 최근 평화뉴스에서 기획 연재되고 있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직 ‘관심’의 영역에도 끼워두지 못한 ‘소외된 삶의 현장’이 많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기도 합니다. 모쪼록 따뜻한 가슴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길에서 만난 세상” 여는 글 중에서>
 
앞만 보고 가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은 앞만 보고 가야 무궁한 발전이 있고, 무너지지 않을 탑을 쌓을 수 있고, 국가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서,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승용차라도 탄 듯 뒤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했다. 주변과 이웃들을 조금만 살펴가며 전진했더라도 이웃들이 눈물을 흘리는 데 그쳤을 텐데, 녀석은 이웃들이 피눈물을 쏟아내도록 안하무인으로 앞만 보고 내달렸다.
녀석을 일컬어 사람들은 자본주의라고 했다. 자본주의가 지나간 곳은 불도저가 지나간 것처럼 골도 깊고 상처도 깊었다. 그것은 전쟁이 남긴 상흔과도 같았다.
… 소망 하나를 적어 넣으라면 부디 이웃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이 덜 아팠으면 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본주의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가정들이 자본의 노예가 되어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경제 성장에 힘입어 약육강식의 빈부를 낳았다. 그런 점에서 복지와 인권의 속도는 자본의 속도보다 더 빨라야 한다. 적어도 이 두 녀석은 아픈 이웃들을 모른 체하는 자본주의의 피를 물려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속의 길] ⑦
황순규 / 대구시 동구의원(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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