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짐 지우는 사회, 그 모순과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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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 『가족과 젠더』(정영애.장화경 씀. 교문사 펴냄. 2010)


  나는 요즈음 대구에서 혼자 산다. 나의 가족들은 모두 흩어져있다. 맏아들인 내가 모셔야할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향으로 가셨고, 나의 아내와 두 아이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외로움은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요즈음 나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가끔씩 해 본다.

  내 머리 속의 가족은 전통적 확대가족이나 핵가족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한 집에 사는 것은 촌놈인 나의 꿈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 때는 부모님 아파트와 ‘국이 식지 않는 거리’에 집을 얻어 살기도 했다. 지금 그런 꿈을 이룰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내가 그리던 그런 가족의 모습이 아닌 가족의 형태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것이 대세이다. 일인가족, 무자녀가족, 한부모가족, 동거가족, 동성커플가족, 공동체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가족이라는 용어는, 조상을 함께 하는 혈연, 결혼이라는 제도 등과 사실상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닌 것 같다. 이른바 정상가족이라고 부르던 이성애 중심의 핵가족만을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이 변해서가 아니다. 가족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변해서다. 가족의 변화는 항상 그렇게 이루어져왔다. 사회는 항상 빠르게 변화하고 가족은 그에 비하면 천천히 변화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가족변화와 관련된 많은 부분이 가족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가족 밖의 사회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상황과 관련된 것이라는 설명이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족 내에서 표출되는 많은 가족갈등과 문제가 실제로는 급증하는 빈곤과 실업, 경쟁위주의 사회, 평화에 대한 위협, 공동체 의식의 감소, 고령화 등 가족 밖의 사회적 문제 상황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과 본질을 이해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가족 내의 문제뿐 아니라, 가족이 가족 밖의 사회변화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올바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이 중요하다.(『가족과 젠더』중에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는 인구학적 변동의 경향이나 생명과학의 발전 속도 등은 앞으로 가족의 모습을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도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또 가족 관계의 안정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가족과 젠더』 이 책의 필자들은 새로운 가족과 이를 지원하는 사회로의 변화를 위해 국가의 거시-미시적 정책 수립과정 및 주요 사회적 의제 설정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가족과 젠더』(정영애.장화경 | 교문사 | 2010)
『가족과 젠더』(정영애.장화경 | 교문사 | 2010)
첫째로, 우리 사회의 가족의 변화가 지향하는 기본 방향과 이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일이다. 둘째로,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복지체계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위기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가족에 부과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가족에 의한 사적 복지책임은 점차 어려워질 것이므로, 국가와 사회는 보다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등 사회복지체계의 재편 논의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셋째로, 최근 복지제공 주체가 점차 다원화되는 상황에서 복지국가와 시장, 가족 사이의 유기적 협조와 연대도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넷째로,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구조나 형태, 그리고 가족관계의 다양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에 맞는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고 맞춤형 지원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개방적이고 다원주의적 정책 수립의 자세와 함께 구체적 정책 수요자의 이해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다섯째, 세제와 사회보장 수급방식의 변화를 위한 논의가 진진되어야 한다.(『가족과 젠더』중에서)

  가족이라는 말은 사랑, 안락, 휴식과 동일시되어왔다. 그러나 현실 속의 가족은 그것만이 아니다. 사랑과 함께 투쟁이 있고, 안락과 함께 갈등이 있으며, 휴식과 함께 경쟁이 있는 곳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가족 구성원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바깥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예외가 없다.
  지난 목요일(5월 26일) 나는 이웃 사람과 함께 ‘빨래’라는 뮤지컬을 보았다. 스토리는 21세기 판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이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 여성의 동거, 새로운 사랑을 찾는 가난한 과부의 눈물겨움, 재가 장애인을 둔 할머니의 아픔이 얘기의 줄거리였다. 어느 아픔 하나 가족이 자기 내부에서 완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외부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가 지원해야 할 문제였다.

  이런 경우, 우리의 머릿속에 이성애 중심의 핵가족의 형태만 가족의 모습으로 남아있다면 그런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양한 삶의 형식은 국가와 사회 서비스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을 하고 국가에 등록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 경우 핵가족을 말한다.)에 대해 주어지는 다양한 복지 혜택과 권리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하고 있으며 이혼과 비혼의 증가로 여성가구주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여성가구주는 2000년 18.5%에서 2010년 22%로 늘어났다. 여자는 가사노동을 하고 남자는 바깥벌이를 하는 기존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분법적 구분도 약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정책 과제이다.

가족의 변화가 지향하는 기본 방향과 이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종합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며, 복지국가와 시장, 가족 사이의 유기적 협조와 연대를 강화하고, 개방적이고 다원주의적 정책 수립의 자세를 갖추는 한편, 구체적 정책 수요자의 이해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갖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성주류화 전략’, ‘돌봄과 정의의 조화’, ‘보편적 양육자-생산자 모델’과 같은 새로운 가족변화의 패러다임은 모든 사회구성원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배려 받으면서 스스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동시에 개인이나 가족이 택한 삶의 방식을 인정해 주는 사회를 지향하게 해줄 것이다. (『가족과 젠더』중에서)

  사실 궁극적 행복의 주체는 개인이다. 다만 그 개인들이 취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그 가족의 형태 때문에 차별 받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사고의 틀이 필요하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가족 역시 큰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 그 변화는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문제는 사회의 변화는 빠르고 가족의 변화는 늦고 우리의 인식의 변화는 더 느리기 때문에 적지 않은 모순이 ‘가족’에게 지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이 말하고 있다.
 
 
 





[책 속의 길] 19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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