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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소설, 임꺽정
정재형 / 『임꺽정』(벽초 홍명희. 사계절)
2011년 04월 15일 (금) 10:35:51 평화뉴스 pnnews@pn.or.kr

마치 요술처럼, 원고청탁을 받자마자 무지하게 바빠졌다. 몇 년 동안 연락 없이 멀리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찾아오고 지방 재판도 가야하고 팔자에도 없는 선생 노릇하느라 시간을 쪼갰지만 책을 읽을 시간도 원고를 쓸 여유도 없었다. 한 번 어긴 약속을 다시 어길 수는 없어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약속을 지키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오후 4시 30분으로 잡힌 재판은 3시간을 넘게 기다려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증인신문을 마치고 불 꺼진 법정을 돌아 나오니 이미 밤중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9시 뉴스까지 챙기고 나니 막막하다. 뭘 쓸까? 청탁자는 법률과 관계된 책으로 해달라고 했지만 소개할 만한 것이 없다. 최근에 읽은 책을 꼽아보니 전부 식상한 것들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닐 때 그리고 대학생일 때는 이문열의 소설을 좋아했다. 그의 복고주의적인 소설들을 열심히 찾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다가 조정래의 소설을 읽으니 이문열은 '영 아니올시다'였고 급히 조정래에 쏠렸지만 <장길산>을 읽고는 나의 최고의 작가의 반열에는 황석영이 올라 앉았다. 꽤 오랫동안 황석영의 광팬임을 자처했고 황석영을 모르는 국문과 다니는 친구에게 '책 좀 읽어라'고 힐난하는 무식한 짓거리를 한 것까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 양반이 쓴 책은 대충 다 본 것 같다. 그렇지만 황석영 찬가는 내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만나기 전까지만 불려졌다.

   
▲ 홍명희 | 사계절 | 2008.1(개정판)
어줍잖게 얕은 독서이력을 밝히는 건 <임꺽정>이 얼마나 재미있는 소설인가를 강조하기 위함임을 독자들은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고 이 책을 읽은 분들은 전적으로 공감하리라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임꺽정>을 읽고 나서 더 이상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지 못했다. <임꺽정>을 읽은 후, 그간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모든 것들은 모두 <임꺽정>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위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더 거칠게 말하자면 더 재미 있는 소설이 있을 것이라고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작가인 벽초 홍명희(碧初 洪命熹)는 1880년부터 1968년까지 살았던 사람으로 일제하에서 작가, 독립운동가, 정치가로 활동했고, 1948년 월북하여 북한의 현실정치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위대한 책 <임꺽정>은 1928년부터 10여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된 소설인데 조선 명종 때의 백정 출신의 도적 임꺽정을 영웅으로 묘사한 이야기이다. 문학의 관점에서는 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를 무대로 천민을 주인공으로, 양반을 모순적 존재로 대비시켜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봉건시대의 모순을 지적한 탁월한 역사인식을 보여준 가치가 있다고 하나, 내가 <임꺽정>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그런 복잡한 것이 아니라 책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극히 자명하게 체험케 하는, 황홀한 '읽는 재미'에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미완성 소설'이라는 점이다. 점입가경의 경지에 빠져 한 호흡으로 독파하고 있는 독자는 느닷없이 "(이하 미완)"이라는 황당한 결말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때쯤 미완성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독서욕구로 인해 무책임한 저자에 대한 적개심까지 생기게 된다. 그렇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은 더없이 훌륭하다. 아무리 불친절한 식당이라 하더라도 맛만 있으면 용서할 수 있듯이 미완성의 소설 한 편이 현대문학전집보다 더 많은 위안을 줄 수 있으니 양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장담하건대 <임꺽정>을 읽으면 내가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를 알게 될지니 얼른 서점으로 가시라.

   





[책 속의 길] 13
정재형 / 변호사 hanalaw@naver.com


   참고 자료
(한겨레 2010.11.20)
   
▲ <한겨레> 2010년 11월 20일자 26면(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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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
(121.XXX.XXX.243)
2011-04-15 23:23:38
무릎을 치며
정 변호사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꽤 여러 사람이 다양항 맥락에서 벽초와 <임꺽정>을 논하고 그 대부분은 이 위대한 작가와 작품을 칭송하였지만, 정 변호사님의 이런 방식도 호탕하면서도 왠지 설득력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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