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람’에 부모를 빼앗긴 조선족 아이들의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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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 르포집 『만주의 아이들』(박영희. 문학동네. 2011)


지난 주 물레책방에선 작가 박영희의 근작 『만주의 아이들』 출판기념회가 소박하게 열렸다. 책방은 평소 물레책방을 즐겨 찾는 책손들 뿐 아니라 올해 초 박 작가와 함께 겨울 만주를 다녀온 이들, 박 작가가 회원으로 있는 대구작가회의 소속 문인들, 책을 펴낸 문학동네 출판사 직원들로 오랜만에 북적거렸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통일운동에 몸담아온 류근삼 시인의 축사에 이어 만주 관련 영상물 상영이 끝나자 곧 박 작가가 준비된 작은 무대에 올라 독자들에게 책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박 작가는 한국이 조선족에게 작은 빚을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일제 식민지 치하에 만주로 건너간 200만 동포들 중 60%는 먹고 살기 위해, 30%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7%는 상업에, 3%는 일제의 ‘앞잡이’였는데, 60%와 7%가 독립운동을 도왔고 조선족은 말하자면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사 내내 만주를 열세 차례나 다녀왔다는 박 작가가 발로 뛰어다니며 기록한 만주 이야기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생생하게 펼쳐졌다.

행사가 끝나고 이어진 뒷자리에서 고맙게도 박 작가에게 서명이 담긴 『만주의 아이들』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동네 서점에서 주문해 읽고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르포작가 박영희’의 애독자였던 셈이다.
 
『만주의 아이들』(박영희/문학동네/2011)
『만주의 아이들』(박영희/문학동네/2011)
박 작가는 르포작가로 활동하기 이전에 시인으로 먼저 알려진 이다. 1985년 문학무크 《민의》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모두 네 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러다 2004년 2월부터 2005년 7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에 소설가 오수연·전성태와 함께 ‘길에서 만난 세상’이란 꼭지를 연재하게 된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최소한의 인권 보장에서 차별받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사연을 인터뷰한 이 꼭지는, 이후 박 작가의 문학적 관심이 시에서 르포로 이동하는 계기가 된다.

연재된 꼭지와 같은 제목으로 2006년 펴낸 르포집에 이어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2007),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2007), 『보이지 않는 사람들』(2009)의 연이은 출간으로 박 작가는 약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소외된 곳을 조명하며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한 화두를 끊임없이 던져왔다.

“(…) 인생사 기렇잖습네까. 고루 고른 것 같아도 열 명 모두 만점을 받을 수 없고, 살다 보면 누구라도 한두 번씩 실수를 한단 말임다. 하지만도 용서라는 말이 어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답네까. 나그네(남편)한테 지은 죄는 나중에 차차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자식한테 지은 죄는 절대 기렇지 않단 말임다.” (167쪽)

1978년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이 ‘개혁·개방 정책’을 내세우며 중국 인민들에게 ‘각자도생’을 선포한 뒤, 소수민족인 조선족들은 먹고살 궁리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중 1992년 한중수교가 맺어지고, 조선족 동포를 위한 취업방문제가 실시되면서 ‘한국 취업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뼈 빠지게 농사지어 연간 1만 위안을 벌래, 아니면 한국에 가서 월 4000위안을 벌래?’라는 브로커의 달콤한 유혹에 끌려, 자녀 교육만큼은 제대로 시키겠다는 생각에, 수많은 조선족 부모들은 기회의 땅을 찾아 할아버지의 나라로 건너온다. 불과 100년 전 살 길을 찾아 동(한국)에서 서(중국)로 압록강을 건넜는데, 이제 그 자손들 역시 살 길을 찾아 서에서 동으로 넘어오기 위해 밀입국이나 위장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출입국관리소에 집계되지 않는 행방불명된 조선족만 해도 수백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바람’이 불러온 변화 중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만주에 남은 아이들이다. 심양시 조선족의 경우 전체 가정 중 결손가정이 총 가구의 65%에 이를 정도로 현재 조선족 내에는 이혼 가정이나 모부자 가정, 조부모 가정이 많다. 부모와 친척, 그리고 몇 명의 교원들의 노력으로 아슬아슬한 성장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만주의 아이들’의 생활상이 조선족들의 생생한 언어로 살아 우리의 일독을 요구한다.

“엄마는 있지만 이제 우리 엄마는 없어요”라고 적힌 표지의 문구처럼 책 속에는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의 아픈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아빠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보았다는 아이,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부모를 그리워할 감정이 메말라버린 아이, 가족도 친척도 없이 만주에 홀로 남겨진 아이…. 읽는 내내 최근 국내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족 이야기를 다룬 두 편의 영화-<푸른 강은 흘러라>(강미자 감독)와 <황해>(나홍진 감독)-도 함께 떠올랐다. 열악한 환경과 턱없이 부족한 급여에도 숙사(기숙사)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원들의 모습에선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김명준 감독)가, ‘한국 바람’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가는 조선족 공동체의 안타까운 모습에선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도 겹쳐 읽혔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로 아이를 만주에 남겨두고 한국으로 떠난 부모들이 남은 아이들에게 보내는 금전적 보상들은 아이들에겐 ‘딸라배(100달러 지폐로 만든 배, 13쪽)’에 불과할 것이다. 자신을 버리게 만든 부모, 그 부모를 그렇게 만든 한국을 아이들은 얼마나 원망할 것인가. 그러나 남은 아이들은 TV와 인터넷을 통해 한국을 또 선망하고 있다. 선망과 원망 사이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단기간 초고속 성장의 신화로 전세계 저개발국의 성장 모델’ 대한민국이 있다.

단언컨대, 기행 산문집 『만주를 가다』를 시작으로 『만주의 아이들』로 이어지는 르포작가 박영희의 ‘만주 연작’은, 21세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패악이 인민들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했는지를 다룬 탁월한 보고 문학의 한 전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끝으로 ‘취재 후기’에 박 작가가 조선족 학교 학생들이 쓴 글 모음집에서 인용한 소학교 6학년 여학생의 글에 오래 머물렀음을 밝힌다.

“(…) 우리 조선족은 지금 허망 들떠 있다. 신생 사물에 대한 접수는 좋은데 눈앞의 리익만 따지면서 무조건 ‘간다 바람’을 따르는 것도 문제다. 명절이어서 집에 온 후 다시는 안 가겠다고 하고는 비행기를 타고 또다시 돈 벌러 간다. 고향 땅엔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고 어린애들은 부모님에게 실망하고……. 우리 민족의 래일이 근심된다.” (68쪽)
 
 
 





[책 속의 길] 11
장우석 /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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