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참사 막자"...3년째 잠자는 '생명안전기본법', 안전은 '뒷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 입력 2023.12.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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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촉구 대구시민토론회'
민주당 2020년 발의, '행안위' 계류...상임위 문턱도 못넘어
"정부, 재난 구조적 원인 관심 없어..패러다임 변화"
"생명 존중 우선하는 정책·제도 마련, 피해자 권리 보장"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 사망자 192명, 부상자 148명.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사망자 304명, 부상자 142명.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 참사 사망자 159명, 부상자 196명.
1994년부터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망자 1,839명, 피해구제 신청자 7,883명.

잇따른 초대형 인명 참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 '생명안전기본법'이 국민들 염원에도 불구하고 3년째 국회에 잠들어 있다. 대구에서 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촉구를 위한 대구시민토론회'...(왼쪽부터) 오지원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정책위원장,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국장, 황순오 전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안갑수 전 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2023.12.18. 전교조 대구지부)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촉구를 위한 대구시민토론회'...(왼쪽부터) 오지원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정책위원장,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국장, 황순오 전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안갑수 전 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2023.12.18. 전교조 대구지부)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4.16연대'(상임대표 박신호)는 18일 오후 전교조 대구지부 강당에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촉구를 위한 대구시민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는 오지원(법률사무소 법과치유 변호사)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정책위원장이 맡았다.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국장, 황순오 전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안갑수 전 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이 패널로 나왔다.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시민 20여명이 참석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서울 노원구을) 의원이 지난 2020년 11월 13일 대표 발의했다. 안전사고로부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가가 재난과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조사하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구제하고 보호하자는  취지다.

법안은 ▲안전권과 국가의 책무 명시 ▲국가, 기업의 안전사고 정보제공·공개 ▲피해자 인권 및 권리 보장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안전영향평가제도 ▲시민참여 ▲추모와 공동체 회복 ▲피해자 모욕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한다.

현재 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계류 중이다. 발의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소관위 내에서 논의조차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검은 옷을 입고 분향소 단상에 국화꽃을 놓는 시민들(2022.10.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검은 옷을 입고 분향소 단상에 국화꽃을 놓는 시민들(2022.10.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법안이 잠들어 있는 사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해 159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만들자는 요구가 있었지만 국회는 눈을 감았다.  

때문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생명안전시민넷 등 46개 재난·참사 피해자단체와 시민단체가 모인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공동대표 김훈)은 올해 8월 29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입법청원을 넣었다. 9월 28일 시민 5만명이 청원에 동의했고, 10월 4일 행안위에 회부됐다.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자 국민들이 다시 법안 추진을 요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미동조차 없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5개월 남았다. 이번 국회는 생명안전기본법도 통과시키지 못한채 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다.
 
오지원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정책위원장'이 발제하고 있다. (2023.12.18)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오지원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정책위원장'이 발제하고 있다. (2023.12.18)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대구 토론에서 발제에 나선 오지원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정책위원장은 "정부는 재난의 구조적 원인에 관심이 없고, 피해자들의 의견을 듣는 독립조사기구가 보장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 인권 중심의 형사사법 체계의 한계가 결합된 문화가 지속돼 왔다"면서 "참사 때마다 법 조문 한두개를 바꾸는 것보다, 근본적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2023.12.18)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왼쪽부터)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2023.12.18)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은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난 뒤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진실을 가리는 데 앞장섰다"며 "국가가 스스로 잘못을 밝힌 뒤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지도 않았고,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립과 활동에 적극 협조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재난 참사를 막기 위해 정부에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의 대처 방안만 담고 있을 뿐, 생명 안전의 가치는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정부는 생명 존중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피해자들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왼쪽부터) 황순오 전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안갑수 전 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2023.12.18)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왼쪽부터) 황순오 전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안갑수 전 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2023.12.18)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생명안전기본법이 대구지하철참사 전에 제정됐다면 큰 사고를 막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안갑수 전 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은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가 일어나고 난 뒤 내장재에 불을 붙여봤는데, 숯에 불을 붙이는 것보다 빨리 붙었다"면서 "참사 발생 전에 법이 제정돼 있었다면 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해 전동차 내부 내장재를 불연재로 교체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순오 전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대구지하철참사 20년 동안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가며 싸웠지만 별 실익은 없었던 것 같다"면서 "사고 수습 과정 자체가 참사라는 이야기를 유족들끼리도 많이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되면 피해자들은 순수하게 추모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고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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