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가 생계를 위해 일을 나가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나마 지자체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긴급생계비' 제도가 있어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지자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긴급생계비 지원을 끊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세사기를 당한데 이어 긴급생계비마저 지원받지 못하는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 대구 북구 침산동 전세사기 피해자인 정태운(32) 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 대구대책위원장'은 15일 오후 북구 한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지난 1월 17일 오후 일용직 노동을 하기 위해 출근했다가 불법 유턴 차량에 치여타고 있던 오토바이는 심하게 파손돼 폐차했다.
흉추 골절 등 전치 12주 판정을 받았다. 두달 뒤인 오는 4월 16일이 돼야 퇴원할 수 있다. 지금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허리 보호대를 차고 있다.
정씨는 1년 넘게 임대인으로부터 전세금 1억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 건물은 '신탁 사기' 건물로, 2021년 8월 임대인이 소유권을 가진 신탁회사의 동의 없이 불법으로 계약을 맺었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지난해 3월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자비로 서울, 부산 등 전국 곳곳을 다니며 전세사기 피해를 알렸다.
퇴사 후 교통비, 숙박비, 식비로 가진 돈이 바닥나 일용직 노동을 택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피해자들 마음처럼 나서지 않으니 당사자가 발품을 팔았다. 사고 당일도 대책위 회의를 마치고 일을 하러 가던 길이었다.
◎ 사고 이후 그는 당연히 긴급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받았고, 10월 대구 북구청에 '긴급생계비 지원'을 신청했다. 긴급생계비 지원 기준은 1인 가구 월 155만8,419원 이하 소득자면 월 62만3,300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정씨는 지난해 11월부터 긴급생계비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3개월 뒤 연장 신청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교통사고가 난 사흘 뒤인 지난 1월 20일 입원을 하면서 일을 하지 못해 다시 긴급생계비 연장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구청은 "14일 이상 병원 입원자는 긴급생계비 지급 제외 대상"이라고 답변했다.
긴급생계지원이 식료품비, 의복비 등 생계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기 때문에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 사람에게는 지원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6개월 뒤에 다시 신청하라"고 정 위원장에게 통보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은 뒤 다른 사유가 발생하면 6개월 동안 신청 제한 기간을 둔 탓이다.
의료비 지원이라도 받기 위해 다른 부서에도 문의했지만 "교통사고 가해자가 있는 의료 지원 신청은 각 사안별 보상 처리의 문제로 긴급지원이 불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합의금이나 보험금 등으로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전세사기 피해자 긴급생계비도, 의료비 지원도 둘 다 '지급 불가'라는 게 북구청 입장이다.
정 위원장은 "허리를 다쳐 한동안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긴급생계지원까지 취소되니 막막하다"면서 "힘들 때 도와줘야 하는 역할을 북구청이 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답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한탄했다.
◎ 대구 북구청은 "지침에 따라 지원 불가를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북구청 희망복지과 관계자는 "긴급 생계 지원 대상 관련 지침에 따르면, 생계유지에 필요한 비용 또는 현물 지원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장기간 입원하는 사람은 지원할 수 없다고 돼 있다"면서 "교통사고를 당하면 가해자 측 합의금이나 보험금으로 의료비 지원을 받기 때문에 지원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복지부에도 확인해 긴급생계비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도 받았다"면서 "전세사기 피해자 모두를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금융재산, 일반재산 소유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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