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활비 오·남용, "세금 도둑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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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국민 혈세 사용은 투명성과 책임성이 필수


조직체에 근무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금은 공돈’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 조직체 중에서도 기업과 달리 주인이 따로 없는 정부는 더 심하다. 정부 수입은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므로 정부예산은 꼭 필요한 용처에만 써야 한다. 관리도 자기 돈처럼, 아니 자기 돈보다 더, 엄격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쓰는 사람이 임자다.

박근혜도 홍준표도 특활비 오·남용

정부예산 중에서도 1993년까지 ‘판공비’라고 부르던 돈은 가장 ‘눈먼 돈’이었는데, 비판이 많아지자 요즘에는 특활비(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직무수행경비로 구분하고 각 비용의 사용 방식과 증빙자료 요건을 다르게 정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외교, 안보, 경호 등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다. 대통령실, 대법원을 비롯한 많은 정부 기관에 배정되지만 특히 국정원(국가정보원),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에 많이 배정된다.

특활비 사용 내역에 관한 증빙은, 일반 예산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업무추진비와 직무수행경비에 비해서도 허술하다.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 지침'에 따르면, 지급한 상대방에게 영수증의 교부를 요구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사유와 내역을 명시한 관계 공무원의 영수증서로 대신할 수 있으며, 현금으로 미리 지급한 뒤 나중에 집행내용 확인서만 붙일 수도 있고, 특수한 경우에는 이마저도 생략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오·남용이 많다.
 
사진 출처. KBS 뉴스 <[사사건건 플러스] 검찰 특수활동비…문제점?(2023.10.23)>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 뉴스 <[사사건건 플러스] 검찰 특수활동비…문제점?(2023.10.23)> 방송 캡처

특활비 오·남용은 여러 차례 문제가 되었지만 특히 2015년에 국회 특활비 문제가 주목을 끌었다.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가 국회 운영위원장 때 받은 돈을 모아 정치자금으로 썼다거나, 신계륜 새정치연합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때 받은 돈을 자녀 유학비로 쓴 사실 등이 알려지자 국민 여론이 급격히 악화했다. 이를 계기로 국회와 감사원에서는 특활비 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일시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시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비리가 탄핵 국면에서 드러나 관련자가 처벌받기도 했다.

“흥청망청, 엉망진창” 검찰 특활비

<세금도둑잡아라> 등 3개 시민단체와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검찰 특활비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2020년에 제기했다. 검찰 측은 이런저런 구실을 대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3년 5개월 만인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도 검찰은 일부 자료는 아예 내놓지도 않았고, 내놓은 자료조차도 복사가 희미하거나 먹칠을 해서 용처를 못 알아보게 했다. 법을 다루는 부서가 법을 무시하고 있다. 공개 대상 자료에 윤석열 대통령 관련 내용도 들어 있어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의심도 있다. 윤 대통령이 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17년 5월 22일부터 2019년 7월 24일까지 사용된 특활비 총액은 38억 6,300만 원으로 하루 약 480만 원꼴이다.

검찰 전체의 특활비는 연간 약 80억 원에 달한다. 시민단체와 <뉴스타파> 측에서 분석한 결과, 내놓은 자료 중에서 그나마 1~2% 정도는 내용을 추정할 수 있었는데 특활비를 부적절하게 쓴 경우가 수두룩했다고 한다. 공기청정기 임차료나 기념사진 비용으로 사용한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거액을 회식비나 격려금으로 쓰기도 했고, 연말이나 퇴임 전에 몰아서 지출하기도 했으며, 수사와 무관한 부서에 지급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청와대, 국회 등 권력기관의 특활비 문제를 추적해온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검찰의 특활비 지출을 “흥청망청, 엉망진창”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출처. KBS 뉴스 <[사사건건 플러스] 검찰 특수활동비…문제점?(2023.10.23)>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 뉴스 <[사사건건 플러스] 검찰 특수활동비…문제점?(2023.10.23)> 방송 캡처

이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글씨가 잘 안 보이는 증빙서류는 잉크가 “휘발”한 것이라고 하여 빈축을 샀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10월 23일 국정감사에서 “검사는 시간외수당도, 야근수당도, 휴일수당도 없이 밤새워 일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한다.”고 변명했다. 그렇다면 검사의 근무 방식에 맞는 보상제도를 만들어야지, 국민의 범죄를 감시하는 검사들이 어째서 특활비를 오·남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Quis custodiet ipsos custodes?) 고대 로마 풍자시인 유베날리스(Decimus Junius Juvenalis)의 명언이 생각난다.

사용 내역 공개와 오·남용 처벌 장치 마련해야
 
특활비 ‘세금 도둑’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 하승수 대표는 국정조사와 특검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당연히 이를 철저히 수사해서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 비리의 조사와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비리가 생기지 못하도록 예방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가장 좋기로는 특활비 같은 눈먼 예산을 아예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기밀’을 위해 특활비의 존치가 불가피하다면, 그리고 사용 내역을 즉시 공개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분명한 장치를 두어야 한다. 특활비를 인정하더라도 ‘기밀’이라는 포장을 씌워 진실을 어둠 속에 묻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공개와 처벌 가능성이다. 아무리 ‘기밀’이 필요한 자료라고 해도 언젠가는 내역이 소상히 밝혀지고 처벌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직자가 분명히 의식하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이런 제도를 제안하고 싶다.

- 모든 경우에 구체적인 용도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
- 기밀의 성질에 따라 비공개 기간을 두더라도 그 기간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 비공개 기간이 지나면 일반에게 공개해야 하며, 기간 경과 전이라도 특활비 감시를 담당하는 기관이 언제라도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 비리에 대한 공소시효는, 지출 시점이 아니라 공개 또는 열람 등을 통해 확인된 시점부터 기산해야 한다.


 
 
 





[김윤상 칼럼 133]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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