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의 선거 카르텔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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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04 10:50
  • 수정 2024.02.2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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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위성정당' 방지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해야


선거제도 개혁에 시민참여단 등장

정치, 경제, 환경, 외교, 안보 등 각 분야에서 국운이 휘청대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느낌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싹을 찾아보고 싶다. 우선, ‘시민참여단’이 작은 희망을 준다. 내년 4월 10일 제22대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출범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권역별·성별·연령별로 비례 배분해 모집한 500명으로 시민참여단을 구성하였다. 시민참여단은 지난 5월 6일과 13일 양일간 숙의를 거쳤는데,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에 대한 찬성 비율이 숙의 전 27%에서 숙의 후 70%로 증가하였다. 또 ‘국회의원 수는 지금 이대로 또는 늘리는 것이 좋다’에 대해서도 숙의 전 31%에서 숙의 후 62%로 높아졌다. 숙의 과정은 KBS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국회의원 구성이 국민의 정당 지지율과 비례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회의원 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양대 정당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상식을 거부해왔다. 상당수 국민 역시 익숙한 기존 제도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민이 숙의를 거치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상식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출에도 국민참여 확대

또 하나의 작은 희망은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관한 ‘방송 3법’ 개정안이다. 현재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KBS 이사회 (이사 11명, 여·야 추천 7대4), 방송문화진흥회(MBC 경영 관리·감독) 이사회 (이사 9명, 여·야 추천 6대3), EBS 이사회 (이사 9명, 여·야 추천 7대2)로 되어 있다. 정치적 독립이 생명인 언론기관의 지배구조를 이렇게 정치권, 특히 여권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당이 방송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이없는 모습이 반복됐다.

개정안은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후 11월 9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국회를 통과하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수를 각각 21명으로 늘리고, 이사는 국회가 5명, 시청자위원회가 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가 6명, 직능단체가 6명(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각 2인)을 추천한다. 또 공영방송 사장 선임의 경우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한 일반시민 100명이 직접 사장 후보를 추천하는 ‘사장 후보 국민추천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이사회가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대로 시행되면 공영방송 인사에 정치권의 영향력이 대폭 줄어든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개정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두 사례는 정치권의 독점을 줄이고 국민의 상식을 더 반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선거와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관해 기득권을 지키고 국민 참여 확대에 반대해온 국민의힘에는 물론 기대를 걸 수 없는 데다가, 더불어민주당 역시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작년 대선 직전에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을 결의했고 이재명 대선 후보도 약속했었지만, 최근에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KBS뉴스 <예비 등록 코앞인데 선거제 ‘깜깜’…병립형·준연동형 입장 엇갈려>(2023.11.28)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뉴스 <예비 등록 코앞인데 선거제 ‘깜깜’…병립형·준연동형 입장 엇갈려>(2023.11.28)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뉴스 <예비 등록 코앞인데 선거제 ‘깜깜’…병립형·준연동형 입장 엇갈려>(2023.11.28)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뉴스 <예비 등록 코앞인데 선거제 ‘깜깜’…병립형·준연동형 입장 엇갈려>(2023.11.28) 방송 캡처


엎치락뒤치락, 뉴질랜드 선거제도 개혁 사례

그래도 필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국민참여 확대라는 상식이 자주 언급되다 보면 그 방향의 개혁이 점진적으로, 때로는 급속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뉴질랜드 선거제도 개혁이 하나의 사례다. 뉴질랜드는 오랫동안 소선구제를 유지해오면서 양대 정당인 국민당과 노동당이 권력을 나눠 먹고 있었다. 그런데도 양대 정당의 기득권에 반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1993년에 도입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78년과 1981년의 선거에서 두 차례 모두 국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여 집권했는데, 정당 득표율은 노동당이 오히려 더 높았다. 속이 상했던지, 노동당은 1984년 선거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공약하고 승리하였고, 공약에 따라 개혁특위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개혁특위가 독일식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하자 노동당은 반대했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양대 정당이 나눠 먹는 복점 구도가 깨질 것으로 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1987년 선거에서,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직면한 노동당은, 재집권하면 이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동당이 다시 승리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국민투표를 뭉갰다.

그러자 1990년 선거에서는 국민당이 이런 노동당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공략하여 선거에서 승리했다. 국민당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되니 마지못해 1992년에 비례대표제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국민투표 결과 84.5%가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고 64.9%가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지지하였다. 양대 정당은 모두 개혁에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이 1993년 의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하여 다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고,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53.9% 찬성으로 채택되었다. 양대 정당 체제에서도 선거제도 개혁의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도 뉴질랜드 같은 극적인 변화를

다시 우리 문제로 돌아가자. 제22대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아직 선거제도에 대한 합의가 없다. 물론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최선이다. 현실적으로 그렇게까지는 못한다면 적어도 두 가지는 지켜야 한다. 첫째로,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지금과 같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위성정당이라도 금지해야 한다.

최근 정계에서는 '이준석 신당', ‘비명계 신당’, ‘금태섭 신당’, '개혁연합 신당', ‘선거연합 정당’, ‘비례연합’ 등 여러 설이 나온다. 새로 생기는 정당 또는 연합은 위성정당에 반대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지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 민주당은 약속을 지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동시에, 선거제도 개혁이 절실한 소규모 정당 및 새로 생길 정당과 연합하여, 뉴질랜드와는 달리 시원하게 변화를 이루어내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
이 칼럼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권이 해내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필자는 근본적으로 선거 개혁을 이해당사자인 정치권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졸문 <국회의원 선거 방식을 왜 국회가 정하나?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평화뉴스. 2020.1.6)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김윤상 칼럼 134]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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