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혼자 가꿔진 정원, 산수유 아래서.."

평화뉴스
  • 입력 2007.06.1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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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보기]...
"삽과 호미로 일구며 한 자락 쉬어갈 수 있다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스위스, 불란서 등에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달리는 기차안에서 바깥 풍경에 무심코 시선을 던지다 보면, 숲이 많은 곳이나 기찻길을 따라 한 10평 남짓의 작은 정원들이 사각성냥갑을 옆으로 붙인 모양으로 일렬로 쭉 앙증맞게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조금 눈길을 멈추면, 일반 성인의 허리보다 낮은 나무로 어슷어슷 연결해 만든 담장으로 경계를 지은 알록달록한 정원에, 사람들이 그 속에서 편안히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잔디를 다듬는 모습, 아이들이 발가벗고 물놀이 하는 모습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잘 꾸민 곳은 정원의 한켠에는 소박한 오두막이 있고, 자그마한 연못이 그 앞에 자리하고, 앉거나 쉴 수 있는 벤치의자와 나무와 나무사이에 걸린 보자기그네,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기구와 물놀이 튜브 등이 너브러져 있는 놀이터도 있다. 보통은 바닥에 푸른 잔디가 깔려있고 주인의 예쁜 마음을 반영하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유실수들이 울창하다. 가끔은 빨강 파랑의 바람개비가 정원 한가운데서 돌기도 하고 아이들 키만한 난장이 인형이 세워져 있기도 해 동화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독일의 주말농장 ‘슈레버가르텐’

이 곳은 ‘슈레버가르텐’이라고 하는 곳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유지를 시민들에게 빌려주면 -우리의 주말농장과 비슷한 형태이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계획으로 임의로 꾸밀 수 있는 정원이다. 다니엘 고트롭 슈레버 (Daniel Gottlob Monitz Schreber, 1808~1861) 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곳으로, 1860년대에 시민운동인 슈레버가르텐운동으로 확산되어 독일전역의 아이들에게 푸른 녹지공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운동이었다.

슈레버는 자연의학과 청소년층에 대해 관심이 남달랐던 의사였는데, 당시에 어린이들의 현실에 대해 매우 안타까운 생각을 가졌던 의사였다고 한다. 당시는 산업화초기로 어린이들조차 무려 하루에 14시간 이상을 주말도 없이 일해야하는 잔인한 시절이었다. 이 때 아이들에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미로 시작된 이 운동은 이후, 정원을 가질 수 없었던 계층에게도 자연의 녹지공간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확대되어 갔다. 자연 속에 뛰어 놀게함으로써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가 배려해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이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운동이 동력을 받기 시작했고, 이미 1860년에 100여개의 슈레버가르텐 단지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슈레버가르텐은 독일전역에 퍼져있고 독일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임대주택을 계약하듯 저렴하게 임대계약을 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 슈레버가르텐을 개인이 임대해 운영하는데는 몇가지의 원칙이 있다.
이 곳에서 살면 안되며, 정원을 절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화초와 나무를 임의로 심어 가꿀 수 있지만 유실수가 삼분의 일을 차지해야 한다. 오두막 등의 시설의 설치는 일정한 한도의 액수내에서 임의로 할 수 있으며, 정원설계시 설계계획 및 비용 등을 신고를 하면 설치이후에 그 비용을 자치단체에서 연말에 돌려받을 수 있다. 단 일단 설치한 것을 임의로 파손하거나 변경하면 안되며, 계약만료시 그 시설에 대한 점검을 맡아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슈레버가르텐 단지의 임차인 공동체가 구성되어 있어 서로간에 경작기술 등의 정보를 주고, 변동사항을 고지하며 관리내역을 공동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필자 같은 사람들도 주말이나 휴가때는 독일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 곳에 가서, 같이 책도 읽고 토론하고 산책하면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었다.

당시에 부러웠던 것은 이러한 슈레버가르텐을 누구든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든 원하면 있으나 없으나, 주말이나 휴가기간이면 가서 쉴 수 있는 비슷한 크기의 그럴듯하게 조성된 자기만의 녹지 공간이 있고, 자신의 계획하에 정원을 꾸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현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쉬면서 자신의 일상을 정리하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며, 공적으로는 시민들의 자발성을 토대로 거대한 녹지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고 공해오염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날아온 홀씨 뿌리내리고 담쟁이 담을 따라 줄기 뻗은 정원...

사실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과 가까워져서 잘된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요즘에 필자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우리 집의 작은 마당의 흙에서, 아무도 기르지 않았는데 어디서 감나무씨가 심어져 감나무가 커가고 담쟁이도 담을 따라 열심히 줄기를 뻗고 있다. 또 때가 되면 어디선가 날아온 민들레홀씨가 시멘트 마당 사이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그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냥 놔두었는데 저 혼자 저리도 예쁘게 풍성하게 크고 있음에 감탄이 연일 나온다.

이사 와서 처음엔 방치된 산수유나무에 엄청난 번데기가 매달려 이파리가 마르는 것을 안타깝게 봤어야 했는데, 이제 몇 년을 지내다보니 자생적으로 생긴 저항력으로 초여름의 그늘을 멋지게 만들고 있다. 신기하고 경이롭다. 저 혼자 저리 제각각의 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이젠 주말에 그 나무 밑에서 돗나물을 뜯고 상추를 찢어 고추장에 밥 비벼 먹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밑에서 책보는 재미와 지인들과 사는 얘기하는 것도...필자와 같은 재미없고 심미적 안목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이 작은 저 혼자 가꿔진 정원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감동적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마음에 던져주는 여유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태여 정부의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회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침마다 보이는 굽은 등의 유모차 할머니들과 박스와 전단지쓰레기 모으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이제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일을 가진 사람들은 가진 사람대로, 일이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대로,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이런 삭막한 사회에서, 필자는 혹여 삽과 호미로 땅과 정원을 수고롭게 일구면서 한 자락 쉬어간다면 적어도 정신적인 여유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 은퇴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
예전에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말이 근사하게 느껴졌는데 당신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짓다보니 ‘자연이 존재하니까 나도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그 분 역시 땅을 통해 자연과 하나되는 방법을 터득한 듯 보인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흙과의 화해와 교섭을 통해 자연의 순리도 배우고, 그러면서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슈레버 가르텐 같은 조치를 더 세련되게 만들면 어떨까, 삶의 심미적 차원이 강화될수록 삶에 대한 해석력이나 관조력이 더 커질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자기존중과 자긍심이 더 단단하게 자리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는 자연 속에서 삶의 여유를 찾게끔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 이 역시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재경의 세상보기 31]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kgklan@kornet.net)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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