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축제의 놀이판을 벌여보자”

평화뉴스
  • 입력 2006.09.1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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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보기 27]...
"꽉 막힌 사회, 할매.아지매 사는 얘기를 시작하자"

근간에 지역에서 진행되는 토론회의 사회를 왕왕 보곤 한다.
이것은 흔히 생각하듯, 필자가 매끄럽고 공정하게 잘해서라기 보다는 필자가 시민단체활동과 방송을 하면서 넘나든 곳이 많아 엮어놓은 인맥으로 이리 저리 엮다보니까 맡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논쟁거리가 되는 사안의 사회를 보다보면 항시 팽팽하게 자기들만의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주장만이 합리적이며 타인들이 무관심하다고 호소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엔 일방적 주장만 하고, 설득하기 보단 큰소리를 치면서 자기얘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얘기의 골간은 “나는 옳고 너희는 틀리다” 이다. 그러다가 결론을 맺기가 어려워지면 결국 세미나의 말미에 하는 얘기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서로의 대화의 끈을 놓치말고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고민을 해나가면서 합의의 길을 찾아 나갑시다” 이렇게 원론적인 수준에서 정리된다. 그런대 사실 이렇게 어렵게 끼워진 첫단추가 언제 그 다음의 합의단계인 두 번째 단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만큼 의견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보단 양극단의 주장만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합의와 대화가 안된다는 얘기이다.

흔히 일반고등학교에 가보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되는 학생이 몇 명밖에 안되도 교육을 그 중상위층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이 진행한다.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은 졸거나 딴 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학교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면서 타인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원하는 뭔가를 할 수 있는 딴 짓은 “자는 것”이거나 “폰가지고 문자 때리는 것”밖에 없다. 매일 만나지만 대화가 실종된 현장이다..

필자가 작년에 가본 모여고의 급훈 하나는 “이 성적에 잠이 오냐?”였다. 한 학년내내 학교에 드나들면서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이 이 정도라면 학교교육이 얼마나 대학입시만에 올인하는지 알만하지 않는가.. 모든 학생들을 일렬 종대로 성적순위대로만 줄세워 학습시키고 그 이외의 것들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 사회의 다원적인 지배가치를 체계적으로 학습하는 장에서도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고 인간적인 대화가 사라진 것이다.


"갈수록 왜소해지는 사람들이 무한적으로 생산되는 사회"

어쩌다 유럽에 가보면, 같은 유럽의 기독교 문명권이라고 해도, 가는 곳마다 도시의 성격이나 특징, 분위기가 다르다. 건축이나 음악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도시는 너무나 똑같다. 같아져서 비교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듯 각 도시의 고유한 특성은 “몰특성”이 특성임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이라는 건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역의 고유한 문화들이 잡종화하기가 일쑤이고, 서울이나 대도시의 지배적인 문화양식에 압도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의 시각은, 마치 학생들이 입시에 고정되어 있듯이, 이미 “서울에, 미국에, 최고에” 고정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언어를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지배적인 한두 기준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온 사회가 초등학교 이전부터 영어에 몰두하고, 선행학습이나 영재학습에 몰두하고, 일찌감치 경쟁해야 될 타자를 의식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타인을 향한 무한경쟁에 나설 것을 부추키고, 삶의 기대치는 높아지면서, 매중매체에서는 늘 성공한 사람들의 자신만만한 모습만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이면 이렇다하게 내 놀 장점이 없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조그마한 공동체에서는 비교할 것도 그다지 많지 않고 비교할 대상도 많지 않아 별다른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생긴대로 살아나갈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초대형으로 통합된 사회에서는 연일 멋지고 키크고 능력있고 돈잘버는 재주꾼들이 TV나 신문에 등장하다보니 이리저리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는 공부를 잘하는 여성들은 못난 여성들이라고 선입견을 갖곤 했지만 요즘은 예쁜데다가 능력도 있고 몸매도 죽이는 여성들이 많다는 거다. 그러니 필자같은 사람은 사방에서 주어지는 이런 직간접 압박에서 초월할 능력이 없으면, 평생 열등감을 내면에 품고 사는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의 초대형 경쟁사회는 많은 수의 낙오자와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을 생산해 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갈수록 왜소해지는 사람들이 무한적으로 생산되는 사회, 소수의 유능한 사람과 다수의 무능력한 사람들을 생산하는 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그 잣대를 다양화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허나 여전히 우리 사회의 잣대는 일률적인 한두가지 기준으로 “표준화”하고 있고, 그 수준 역시 계속 “높아지고 있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사회는 생물학적으로 보이도 매주 취약한 사회이고, 사회적으로 보아도 불안정하고 문화적으로도 풍부하지 못한 사회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한 방향으로 돌주하고 있다.

이런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내는 사회에서는 다수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판이 벌어져야 한다. 스스로 못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뒤쳐져야 하는 사회, 돈되면 말도 안되는 일이 풀리고 돈안되면 똥(좀 극단적이지만 사실아닌가!)으로 생각하는 사회, 당장 시장에 내다팔 것만 생각하는 사회, 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못벌면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사회, 끊임없이 비교되어야 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든 마음속 응어리가 이만저만이 아닐거다.


“이웃과 소통을 통한 공동체의 복원 만한 답이 없다”

그 응어리를 제도적으로 풀어주는 건강한 놀이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놀이판 속에서 내가 뭔가 새로이 태어나는 느낌, 살맛나는 느낌, 그래도 내가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붉은 악마의 응원이 바로 그런게 아니었나 싶다. 다양한 존재가 똑같이 필요한 존재로서 인정되고, 그 관계속에 응원의 함성이 터져나오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생산해냈던 것이다. 필자는 붉은 악마가 주도해 보여준 2002년의 응원의 힘을 우리사회의 신명나는 축제문화의 부재에서 찾는다.

이벤트성의 돈 뿌리는 낭비성 축제나, 외지인이 와서 보고 지자체수입을 올려주기 위해 하는 축제가 아니라, 살고 있는 동네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신나서 노는 한마당 판으로서의 동네축제. 거기선 누구든 주인이고 껴안고 싶은 이웃이고 어깨동무하면서 춤추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축제..

이 축제의 놀이판을 벌여 우리사회의 불균형을 느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바로 잡는 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한 집마다 잘하는 음식을 가지고 나와서 골목따라 일렬로 전시해놓고 먹고 얘기하고, 인사하면서 서로간의 앙금이 된 주차문제도 풀고 골목길의 가로등 문제도 생각해보고, 놀이터에서 늦게까지 집에 안가고 헤매는 동네청소년들 문제도 얘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

이러한 경험이 쌓여 두텁고 강렬한 경험이 만들어질 때, 서로다른 이웃들과의 공생의 가치가 체득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와 다른 내 이웃의 각각의 사정을 알고, 내 이웃이 개성있고 괜찮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현대사회의 갈등이나 양극화가 낳은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의 제 1핵심은 불균형관리기술이다. 여러 가지 제안되고 있는 복지망의 확충이나, CCTV의 설치나 감시망의 조직화, 전문가의 진단과 상담 등도 필요하지만, 필자는 아직도 이웃과의 소통을 통한 공동체의 복원 만한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경제적 지원 이상의 매우 중요한 안전망의 회복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런 경우 경제가 아닌, 다양한 소통의 계기와 느낌을 주는 문화가 좋을 듯 싶다. 축제같은 놀이판이 말이다.

요즘은 사시사철 축제가 많아 축제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축제가 더 많아져야 할 것 같다. 건강하게 놀 판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개성있고 재미있는 축제가 계속 생겨나고, 변화를 거치면서 자그마한 동네부락제같은 축제가 여기저기서 생겨났으면 좋겠다. 참여하는 동네 할매, 할아버지, 또 아지매, 아저씨 그리고 애들이 주인되는 축제를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겠다. 자식이야기에서부터 사는 얘기들을..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kgklan@kornet.net)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6년 9월 4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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