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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 잃어버린 우리 삶의 기억들...”

평화뉴스
  • 입력 2005.05.25 10:20
  • 수정 2025.09.24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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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 보기 21>
“너무 쉽게 사고 파는 보금자리, 삶의 기억마저 돈벌이에 쓸어버리지는 않는가?”

필자가 독일에서 귀국한 후 몇 번을 망설이다가 간 곳이 있다.
그곳은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이었다.
필자는 태어난 곳도 창신동이고 대학원까지 창신동에서 다녔다.

산동네에 집들이 빼곡하고, 암벽 벼랑 낙산아파트 아래 있던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3-5가구 이상 세든 사람들 가득한 기와집과 슬레트집이 붙어있던 동네였다.

그 마당 한가운데에는 수돗가와 공동의 세면대가 있고, 대문옆에는 공동변소가 있어, 매일 아침이면 북새통을 이루었다.

집 뒤에는 안양암이라는 천태종소속의 절이 있었다.
여름이면 안양암 절의 일주문에 그려져있는 총천연색의 부리부리한 천왕상에 몸서리치면서도 절 뒤의 암벽 사이사이 숨바꼭질하는 곳이 좋아 드나들었다.

또, 겨울이면 안양암 앞의 가파른 골목길에서 나무썰매를 타며 낄낄거리며 놀던 기억이 생생한 내 고향 동네가 바로 그곳이었다. 간혹 물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안양암 절 우물가에 온 동네 사람들이 일렬로 줄서서 주전자와 들통 가득히 물받아온 기억이 있고, 우리 동네꼬마들은 심심하면 귀신얘기를 하면서 안양암우물속의 죽은 애기 전설을 만들어내곤 했었다.

우리 집은, 언덕을 뒤로 하고 있는 기와집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숨을 수 있는 깊은 방공호가 마루밑에 있었고 마루 뒤로는 길게 뒷간이 있어, 그곳에 연탄을 가득히 들여놓으면 엄만 마음 뿌듯해 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맨날 동네 개구쟁이들이 지붕위에 공이 올라가면 기와를 깨면서 몰래 올라가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내쫒곤 했으며, 여름이면 제비가 날아와 처마밑에 제비집을 짓고 제비새끼를 키우는 모습을 보려고 우린 장독대위에 올라가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장독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던 곳이었다.

그 집은 내 정체성의 본향이며, 우리 가족의 가족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따스한 이웃들이 올망졸망 모여살던 터였다. 그런데 집을 떠나야했던 것은 소방도로계획이 잡히면서 집의 안방, 건넌방, 마루가 절반이 짤려져 나간다는 통보를 받고서였다. 우리집의 모든 식구들은 ‘해체’되어야만 했었다.

이후 엄마는 계속 몇 달을 못주무시면서 뒤척였었다.
그때 난 처음 알았다. 그집이 엄마 아버지가 상경하고, 월남해 청계천 판자촌에 살다가, 셋방살이 몇 년만에 주인눈치보는 것이 서러워 이를 악물고 두분이 산 집이라는 것을..

그 집은 보기보다 귀한 1910년에 지은 집이었다.
아파트로 이사온 이후 짐정리를 하면서 우연히 그 집의 문고리와 창문창살, 문패, 심지어 무쇠가마솥까지 들고 온 것을 발견하였다. 그 집은 어머니와 우리 가족의 삶의 터였던 것이다. 엄만 그 집을 팔고 난 후 그 집이 부서지는 현장에 가서 그 생의 흔적하나라도 잡고 싶어 집어온 것이었다.

귀국한 후 가본 그 동네는, 촌스럽지만 정겨웠던 집과 이웃들은 완전히 멸실하고,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주택들안에는 영세봉제공장의 재봉틀만이 동네를 울렸다. 고즈넉한 언덕길은 대로로 바뀌고 우리 집은 넓혀진 도로속으로 완전히 없어졌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내 기억을 보기 좋게 배반했다. 내 기억장치의 그 어떤 흔적도 그곳엔 없었다. 이후 난 서울에 대한 애착이 없어졌다. 내 삶의 기록체는 없어졌다.


우린 너무도 쉽게 허물고, 쉽게 집을 짓는다.
우리 집의 경우야 소방도로 때문이지만 아파트 건축때문에도 너무 쉽게 허문다. 땅값이 오르고 거기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야말로 왕재수라고 생각한다. 아파트나 땅이 우리에게 부가가치가 높은 불로소득의 원천이 된 것은 이미 오래이다. 정부도 아파트값과 땅값을 잡겠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땅과 집은, 우리 삶의 터전이고 뿌리이고 삶의 결정체이기 보다는 그저 자산가치가 높은 부동산일 따름이다.

어느 건축가는 말한다. 집이 허물어지는 걸 보고 기뻐하는 민족은 우리 밖에 없을거라고.
살던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간다고 현수막을 부치고 기뻐하는 이 모습은 우리 밖에 없을거라고...

열심히 벌어 얼추 10여년만에 겨우 집마련을 할 수 있는 우리 월급쟁이들의 수준에 비교해, 재건축아파트 하나 잡으면, 땅사서 운좋게 그 지역에 아파트 세워지면 떼돈 버는 현실, 이는 분명 정의롭지 못한 경제현실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일해서 벌어봐야 운좋게 아파트 한 채 걸리면, 땅 개발 소식 들리면 몇 십배가 보상되는 현실속에서 집과 땅을 사고파는 매매가치상품으로만 보는 시각을 비난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우린 집과 땅을 팔면서 우리 삶의 기록체를 사고 판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감해진 듯하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안하던가. 물질적 풍요속에 정신적 빈곤을 우린 많이 경험해 오지 않았는가.
집을 고쳐 오래쓰고, 정작 필요한 사람이 땅을 소유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 역사의 회복이기도 할 듯 싶다.

그동안 우린 오랫동안 정신문화의 자생성과 주체성을 제대로 키우거나 건사하지 못해왔다.

근대화과정에서 쓸어버려 잃어버린 많은 우리 고유한 ‘기억들’을, 국민소득 20000불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또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주상복합 아파트가격의 고공행진과 지역근교의 땅투기조짐이 보인다는 소식에 드는 생각이었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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