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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부메랑”

평화뉴스
  • 입력 2005.03.28 22:26
  • 수정 2025.09.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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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의 세상보기 19> “독도사태는 우리의 건망증이 낳은 부메랑이 아닐까?”


필자의 독일에서의 첫 사회학개론 수업은 독일 나찌때의 독일인들의 활동에 대한 조사와 반성으로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회학 개론시간에 첫 시간에는 사회학이란 무엇인가부터 사회학의 역사, 기본 개념, 사회학의 이론 등을 피상적으로 훑어가고, 사회학의 연구대상으로 성, 문화, 노동, 정치, 사회변동, 계층, 시민사회, 국제화 등을 개론식으로 짚어 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필자가 처음 접한 사회학개론 시간은 색다른 점이 있었다.
사회학과 원로교수 3명과 조교 3명이 함께 들어와서 강의의 개요를 언급한 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의 탈나찌화”라는 주제를 대뜸 내놓고 팀작업을 통해 “탈나찌화과정을 통해서 본 독일의 현대사회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고 하였다.

팀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각 조원은 주제별로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여앉은 뒤에 교수가 제시한 기본문헌을 중심으로 작업을 시작하였고, 이후 한학기 내내 독일나찌의 반인류적 행적과 그에 대한 반성적인 고찰을 통해 독일 현대사회사를 토론하고 구성해야 했다. 학기 말에 각 조마다 마련한 독일사회사 발표회는 왠만한 역사박물관을 뺨칠 정도로 사진과, 필름, 복사물, 플래카드 등이 전시된 반성적 역사교육장이었다.

한국의 개념과 이론 중심의 “개론”수업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이고 호기심도 발동해 시키는대로 필자보다 나이가 5-6살어린 학생들과 팀을 짜서 자료조사도 하고 조교의 지적인 자극을 받으면서 팀작업을 하였다. 필자가 맡은 영역은 “대기업”의 영역이었는데 어떻게 나찌정권에 자금 및 재정지원을 하였고, 군사물자 및 기계를 생산하면서 부를 축적하였으며, 종전이후 치룬 역사적 사회적 댓가는 정당하였는지 등등에 대한 보고서 작성이었다.

근 20여년전의 수업시간이야기니만큼 기억은 매우 희미하다. 그러나 현재 독일의 기간산업의 중심에 자리한 자동체업체 벤츠(Merchedes Benz)와 폭스바겐(VW), 철강업체 크룹(Krupp), 전자업체 지멘스(Siemens) 등의 대기업들은 직간접적으로 나찌통치에 기여하였으며 사후에 상당한 정도의 자산헌납과 인적청산으로 역사적 배상을 감당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당시의 리포트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탄탄한 자본축적을 가능하게 한 나찌협력의 댓가로 해당기업들이 감당해야 하는 과거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몫은 기업이 존재하는 동안의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필자가 독일에 갈 때 마다 자주가는 다카우(Dachau)라는 곳에도 자생 독일기업들의 나찌협력에 대한 자료들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관되어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다카우는 뮌헨에서 버스와 전철로 50여분이면 가는 곳이다. 아우슈비츠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독일 곳곳에 있었던 강제수용소로는 규모가 꽤 큰 편으로 독일내에서는 독일영욕의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 곳에는 아직도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주조된 철문이 있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드넓은 운동장 같은 곳에 당시 끌려온 노역자들의 감금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설이 처연하게 보존되어 있다.
영화 “피아니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잘 묘사된 숙소와 식당, 가스실, 가스실 옆의 화장터, 화장재 분류실, 도망가는 사람들을 쥐잡듯이 발견해 죽였던 전망대, 전기철장, 그리고 또하나의 벽을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발을 담가야 하는 중간에 흐르는 물- 이는 전기감염이 잘되라고 만들어놓은 덫이다- 등등이 그 어떤 첨삭도 없이 비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제대로 정직하게 기술하고 평가해왔는가”
...“과거의 치명적 실패에서 지혜롭게 배워내지 못할 때, 역사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유럽의 멋진 전원과 웅장하고 정교한 건축물과 낭만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한국인들은 거의 들리지 않는 곳이지만, 또 설사 방문한다고 해도 그 발품파는 것에, 또 보잘것없는 장소에 실망만하고 투덜대면서 돌아가지만 그 곳은 독일인의 반인륜적 범죄의 흔적과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인간이 얼마나 야만적일 수 있는가를 가감없이 드러내보이는 치욕의 교육장이다.
가스실에 가면 가스실 기계와 화장장 기계제조사가 어느 기업인지, 그리고 해당기업의 가격제안 공문서 및 로비활동, 대중매체에의 홍보지면들, 나찌책임자와의 납품계약서 등이 액자에 끼워져있어 당시의 반인륜적 범죄에 동참한 대기업들이 도망갈 구멍이 그 어디에도 없다. 자본축적을 위해, 만들지 말았어야 한 기계를 만든 업체들의 부끄러운 과거행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시간이 가더라고 그 역사적 성찰의 사회적 요구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역사적 흔적을 지금도 그대로 드러내고, 자신민족의 우익화를 가장 비판하는 독일내부의 성찰은 지금도 계속된다. 독일내의 신나찌주의자들을 그들 스스로 경계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처신이 얼마나 진실하지 못하고 얄팍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이야기를 우리 자신에게 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의 잘하든, 잘못한 역사이든 비싼 댓가를 치루고 얻은 “소중한 그 경험들을” 얼마나 제대로 정직하게 기술하고 평가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앞에 우리 모두 벌거벗은 존재여야 함을 얼마나 제대로 의식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역사를 두려워해야 함은 인간의 존엄과 자긍심을 거기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의식해야 할 사명감을 일깨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우리의 주체가 명확히 세워지고 이런 바탕위에서만이 국제적 흐름과 현실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정직하지 못할 때, 또 그 과거의 치명적 실패에서 지혜롭게 배워내지 못할 때 역사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독도사태도 어쩌면 우리의 “탁월한 건망증”이 낳은 부메랑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그나마 소수의 뜻있는 사람들 덕택에 그 부메랑을 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자비를 털어서 독도의용대를 만들어 싸운 50년대의 민초들, 일본사람들이 만든지도에 독도가 한국땅임을 명시한 것을 찾아내 사비를 털어 필생의 사업으로 모아온 고 이종학 관장같은 소수의 “별종” 민초들 덕택에 오늘날 우린 그나마 목소리를 높여 대일항의를 해도 덜 부끄러운 것일 것이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 지난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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